딸들 이야기

썰매도 돈으로 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행복한 까시 2009. 1. 4. 11:42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돈이 빠져 나간다. 우선 거리를 이동하려면 돈이 들어간다. 자가용을 이용하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교통비가 들어간다. 게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면 솔솔 하게 돈이 든다. 나중에는 공기를 마시는데도 돈이 들어가는 세상이 올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데리고 외출을 했다. 시내로는 가끔 외출을 하지만, 교외는 정말 오랜만이다. 날씨가 추워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까봐 겨울이 되면 외출을 자제한다. 그리고 추운 것을 싫어하는 아내와 나도 겨울 외출을 꺼리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날씨가 풀려 외출하기 좋은 날씨이다. 집에서 조금만 나와도 평화롭고 한적한 산과 들이 우리들을 반긴다.


 산성으로 차를 몰았다. 산은 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마도 긴 겨울잠을 자는 것 같다. 우리들이 잠을 청할 때 옷을 벗어 던지는 것처럼 말이다. 겨울이 있어 나무도 휴식을 취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사계절이 있는 자연의 법칙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열대지방에 사는 식물들은 쉬지 않고 성장해야 하니까 그것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보니 차는 벌써 산성의 동문을 통과하고 있다. 자연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산성은 북적이고 있다.


 천천히 산을 올랐다. 쌀쌀한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코를 자극한다. 차가운 공기이지만,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도심 속의 탁한 공기와 비교된다. 몸속에서는 이 차가운 공기가 좋다는 신호를 본능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길가 논에는 얼음판을 만들어 놓았다. 몇 명의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있다. 우리 딸들도 썰매를 타고 싶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참지 못하고 보채기 시작한다. 못들은 척 하고 계속해서 산에 올랐다. 미리 약속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주기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아이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왜 기대하지 않던 것을 받으면 더 행복해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도 자주 써 먹으면 들킬 것이다. 아이들도 제법 컸기 때문이다.


 산에 오르니 저번에 온 눈이 남아 있다. 눈을 보자마자 행복해 하는 이이들이다. 눈을 만지고 뭉치느라 바쁘다. 눈을 보고도 행복해 하는 아이들이다. 올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귀하다. 아마도 기후 변화가 눈 구경하기 힘들게 만드는 모양이다. 눈을 가지고 노느라 정신이 팔려있다. 벌써 장갑은 다 젖고, 엉망이 되어 있다. 손이 시린지도 모르고 눈 장난에 빠져 있다.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는 아이들이다.


 정상에 오르니 시원하게 시야가 펼쳐진다. 멀리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시내의 풍경이라고 해봐야 전국이 똑같은 풍경이다. 아파트 숲만 보인다. 나도 아파트에 살지만 정말 볼품없는 집이다. 살아가는 편리한 점만 빼고 나면 그 이상의 가치는 없는 집이다. 사람을 폐쇄적인 공간에 담아두는 그런 집이다. 자연에 나와서 또 도시 생각을 하고 있다. 자연을 보면서 도시 생각을 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자연은 아름답다. 어떤 계절이 와도 자연은 아름답다. 봄이면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아름다운 것이 자연이다. 산에 오면 이렇게 좋은데, 집밖을 한번 나오는 것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정상에서 한참을 보내고 내려 왔다. 올라 올 때 보았던 얼음판이 멀리 보인다. 많이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있다. 아이들이 썰매 태워 달라고 또 조른다. 못이기는 척 하며 태워주겠다고 하니 환호성을 지른다. ‘아빠 최고’라며 매달리고 있다. 이러다가도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세 ‘아빠 미워’라며 토라지는 아이들이다. 썰매를 대여해 주는데, 3000원을 받는다. 입장료 겸 대여료를 받는 것이다.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만 썰매를 타는데 돈이 든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이 무제한이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공짜로 타던 썰매를 돈 내고 타야 한다는 것이 요즘 세상인 것이다. 이런 마음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행복해 한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썰매 타느라 정신이 없다.

 

 

 


 얼음판에 들어가 걸어본다. 어린 시절 얼음판 느낌 그대로다. 세월은 흘렀어도 자연은 그대로인 것이다. 얼음 밑에는 벼를 베어낸 밑동이 그대로 보인다. 어린시절의 얼음판과 똑같은 얼음판이다. 멀리 까치집이 보인다. 그 옛날에도 그랬다. 얼음판 옆에 가치집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이 든다. 까치는 길조라고 여겨서 좋아했던 새이다. 반면에 까마귀는 흉조라고 여겨서 보기만 하면 침을 뱉곤 했다. 까치집을 보니 까치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어린 시절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나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했는데, 까치집을 보았으니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우리 세대에는 공짜로 누렸던 삶의 방식을 지금은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썰매를 타는 것도 그렇고, 썰매를 타기 위해 이동하는데도 돈이 들어간다. 까치집 하나를 보기 위해서도 돈이 드는 것이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여름에는 수영장도 돈을 내야하고, 농촌 체험을 하기 위해서도 돈이 들어간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여주고, 즐기기 위해서는 적잖은 돈이 들어가는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나중에 크면 이런 것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돈이 들어가야 한다고 인식할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돈으로 사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이기 때문에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저축하기도 힘들고, 힘겨운 세상이 계속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점점 돈의 굴레에 빠져들어 가고 있다. 이 굴레에 점점 깊숙이 빠져들어 가는 우리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공기 좋은 자연도 점점 돈의 영향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아마도 다음 세대에는 흙을 밟고, 좋은 공기를 마시는데도 돈이 들 것 같다는 끔찍한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