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를 보내며
여름 휴가를 받았다.
이제는 여름 휴가도 설렘이 없다. 나이 탓인지 아니면 여행을 가지 않아서인지 정확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 어차피 두 딸과도 휴가 일정이 맞지 않았다. 큰딸은 교사 연수가 있어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작은딸은 회사가 바빠서 여름 휴가를 낼 수 없다고 한다. 아내와 둘이 있으니 심심하기도 하지만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이 편했다. 그동안 회사 일로 지쳐 있던 터라 맘껏 휴식을 취했다.
# 빈둥거리기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다.
아침은 아내가 준비해준 채소볶음과 빵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버섯, 파프리카, 브로콜리, 방울토마토에 들기름을 두르고,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볶는다. 빵은 버터를 사용하여 구워 주었다. 밥을 먹고 나서 에어컨을 틀고, 드라마 삼매경에 빠져든다. 중간중간 간식으로 과일을 먹었다. 얼마만의 편안한 휴식인지 모르겠다. 때로는 머리도 식혀야 줘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피곤하면 꿀 같은 낮잠을 잤다.
# 아버지 제사
아버지는 5년 전 휴가 전날 돌아가셨다.
그래서 매년 휴가 시즌에 아버지 제사가 돌아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는 제사를 간소하게 지내라고 하셨다. 손자가 힘들까 봐 어머니께서 미리 손을 쓰신 것이다. 집안의 모든 제사는 산소에 가서 성묘하듯이 간소하게 지낸다. 아내와 나는 아버지가 평소에 좋아하시던 커피와 거봉 포도를 준비했고, 증조부님, 조부님 조상님들께는 주스를 준비해서 올려드렸다. 형님, 조카들과 함께 간소하게 아버지 제사를 지냈다. 가끔 아버지 또래의 어르신들을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리고 아버지가 보고 싶어진다. 아버지는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그리운 분으로 남아 계신다.
# 장모님의 치매
장모님은 치매를 앓고 계신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치매가 심하지는 않았다. 일상생활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휴가 기간에 더 심해지셨다. 아내에게 폭언하고, 수시로 전화를 하신다. 아내가 너무 힘들어한다. 치매라는 것을 알면서도 폭언을 들으면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장모님이 젊은 시절 억눌렸던 삶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서 아내에게 분풀이하는 것 같았다. 아내가 안쓰럽다. 한 집안의 장녀로 힘들게 살아왔는데, 장모님은 아직도 부족한가 보다. 스트레스로 아내가 아플까 봐 걱정된다.
# 매미 울음소리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있다.
매미가 울면 찌는 듯한 더위가 왔다는 공식이 성립된다. 매미가 울 때는 항상 여름의 절정이다. 아파트 조경수마다 매미가 많이 붙어 있다. 여러 종류의 매미들이 서로 경쟁하듯 울고 있다. 매미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고향 생각이 난다. 특히 어린 시절 여름 방학이 생각난다. 그리고 고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귀의 감각 속에 새겨진 기억도 옛 추억을 불러오는 것 같다. 그리고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아마도 고향을 떠올려서 그런 것 같다.
# 하얀 뭉게구름
하얀 뭉게구름을 좋아한다.
여름의 한가운데 발생하는 뭉게구름 말이다.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뭉게구름이 좋다. 하얀색이 저리도 아름다울 수 있는가? 구름을 보고 있노라면 신비로운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여름 방학이 되면 구름을 보면서 자랐다. 매미와 마찬가지로 구름을 보면 고향 생각이 난다. 눈으로 기억하는 고향의 추억이다. 흘러가는 새하얀 뭉게구름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마도 추억의 한 조각이기 때문인 것 같다.
# 주식 폭락
휴가 기간에 주식이 폭락했다.
하루 하락 중에 역대 최고급이다. 주식은 공포에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보유했던 현금으로 주식을 매수했다. 주식 계좌가 녹아내렸다. 그러나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경제 위기가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프로그램 매매를 많이 한다고 한다. 경제 지표 입력값에 따라 매도와 매수를 하므로 갑자기 매도 주문이 폭주하면 변동성이 커지면서 하락 폭도 커진다고 한다. 프로그램 매매도 정확할 것 같지만 때로는 맞지 않는 때도 있는 것 같다. 좋은 회사의 주식을 쌀 때 사서 묵혀두는 것이 가장 좋은 주식 투자 방법이다. 주식 계좌가 녹아내렸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다. 노후 준비로 하는 주식이라 나중에 내가 일을 할 수 없을 때 주가가 많이 올라 있기를 기대해 본다.
휴가가 끝났다.
여러 가지 일을 겪다가 보니 휴가가 끝났다.
그래도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는 것에 만족한다. 비록 여행은 하지 못했어도 아쉬움은 없다. 그냥 집에 있는 것도 나름 괜찮게 휴가를 보내는 한 가지 방법이다. 충분히 쉬고 재충전을 했으니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