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 콤플렉스
사람들마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한두 가지쯤 있게 마련이다. 외모가 잘 생겼든 아니면 못생겼든 간에 상관 없이 말이다. 그런데 이 외모는 순전히 상대적인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도 내가 보이에는 아주 심각하거나 중대한 일일 수도 있고, 남들은 외모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데도 본인은 하나도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에게도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두 가지나 있다. 그 중 하나가 치아에 대한 것이며, 다음은 아주 마른 가냘픈 몸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콤플렉스는 사춘기 시절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나를 지독히 괴롭혔다. 남들은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순전히 나 자신만의 고민이었을지도 모른다.
먼저 치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깊은 사연이 있었다. 아랫니는 그런 대로 가지런한 이를 가지고 있지만 윗니는 제멋대로 나 있다. 내가 한 여섯 살쯤으로 기억이 된다. 우리 동네 유일한 이발소가 한군데 있었는데. 그 집앞 봉당(마루를 놓을 자리에 마루를 놓지 않고 흙바닥 그대로 있는 곳)은 그 당시 귀한 콘크리트로 발려져 있었다. 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뛰고 장난치다가 그 봉당에서 넘어진 것이다. 넘어지는 순간 번갯불이 튄 것 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멍한 감각이 머리 속에 전해졌다. 일어나 보니 입에서 피가 줄줄 흘렀고, 너무 아파서 울 수도 없었다. 아니 너무 아파서 아픔을 느끼게 하는 감각들이 다 어디로 도망간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앞니가 부러져 있었다. 부러져서 뿌리만 아주 조금 남아 있었다. 그 때 부모님이 그 이빨의 뿌리를 뽑아주셨다면 이렇게 자유분방한 이빨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빨 뿌리를 자그만치 5년 넘게 달고 다녔다. 그렇다 보니 새로 나올 이빨들이 그 자리를 피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남해안의 해안선처럼 자리를 틀고 앉은 것이었다. 그 이빨 뿌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저절로 빠졌다. 그 이빨 뿌리가 빠지던 날 속은 시원했으나, 다른 이빨은 다 자라서 아주 이상한 치아의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이 부러진 이빨 때문에 아버지는 이가 흔들리자마자 열심히 뽑아주셨는데도 아버지의 정성이 무색할 정도로 이가 마치 남해안의 해안선처럼 난 것이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이 이빨을 보고 리아스식해안 이라고 불렀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치아에 대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아마 어려서 외모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시골에서 외모란 늘 햇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하고, 손톱에는 때가 끼어 늘 시커멓고, 옷은 늘 흙투성이였으므로 그까지 이빨은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를 가고 점점 커가면서 치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입을 벌리고, 크게 웃지도 못하고, 남 앞에서 발표하는 것도 싫고 하다가 보니 성격도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신학기가 되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 은근히 무시하는 것을 동물적 감각을 통해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러한 무시를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지금은 별것이 아니지만 학교 성적을 통해서 이겨낼 수 있었다. 은근히 무시하던 아이들도 자기들보다 성적이 높게 나오니 은근 슬적 꼬리를 내렸다. 그래서 나중에 학교를 졸업하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치아를 교정하는 일이라고 늘 마음속으로 이를 갈았다. 놀림도 많이 받고, 은근히 무시하던 녀석들에게 보란 듯이 멋지게 나타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치아교정은 지금까지도 하지 못했다.
또한 집에서도 걱정이었다. 나이가 드니 결혼을 시켜야하는데 치아에 문제가 있으니 결혼하는데 걸림돌이 될까봐 은근히 걱정을 하였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나중에 선보러 갈 때 크게 웃지 말라고 어렸을 때부터 신신 당부를 하였다. 그러나 이빨 때문이었는지 선도 그렇게 많이 보지 않고 결혼하게 되었다. 진짜로 선을 보고 결혼을 하려고 하였다면 결혼을 못하고 아직까지도 총각으로 남아있을 지도 모르겠다. 다행이 나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지금의 집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다. 따라서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콤플렉스를 원망하지 말고 다른 방향으로 더 노력을 하거나, 연애를 하여 결혼을 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즉 진실하고, 성실한 마음을 상대방에게 보여주어 호감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선을 보면 첫인상 호감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결혼으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기 좋은 떡이 꼭 맛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사설이 길어졌는데, 결혼사진을 찍을 때에도 입을 꾹 다물고 찍었다. 결혼사진 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사진에는 치아를 드러내고 멋지게 찍은 사진은 하나도 없다.
다음은 체격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덩치가 작으면 얕보는 경향이 있다. 자신보다 체구가 작으면 은근히 무시하고 들어간다. 아마 그래서 체구가 큰 사람은 오히려 순하고, 반대로 체구가 작은 사람들이 성깔을 많이 나타내는 것 같다. 체구가 작은 사람들은 이런 무시를 견뎌내기 위한 일종의 방어 수단으로 성질이 더러운 것처럼 보여주어 체구가 큰 사람들이 함부로 할 수 없도록 방어막을 치는 것 같다. 나도 그런 방법을 가끔은 써먹는데, 그 방법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특히 회사에서 이런 것을 많이 느낀다. 이점 또한 사람이 자각하는 일종의 감각이나 느낌을 통해 감지할 수 있다. 외소하고 갸냘픈 신체구조 때문에 사춘기 시절 고민도 많이 했다. 체중이 많이 나가서 고민하는 친구와는 반대로 체중이 적게 나가서 고민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오죽하면 입사할 때 신체검사 할 때 체중을 늘려 달라고 사정사정 한 적도 있다. 까시라는 블로그 별명도 외모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학창시절 너무 깡말랐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인데, 지금은 블로그에서 잘 써먹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콤플렉스도 초월 할 만큼 세월이 많이 흐른 것 같다. 이제는 누가 외모 때문에 무시를 해도 전혀 개의치 않을 만큼 성숙해진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외모가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모 고민보다도 생각해야 할 일들이 많기도 하고, 중요한 가치들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치아든 가냘픈 몸매든 그것들이 나 자신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굳어졌기 때문에 그런 콤플렉스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내 외모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괜히 그런 것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가끔 아이들이 아빠는 왜 이빨이 그렇게 났냐고 나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곤 한다. 그러면 어른들 말을 안 들어서 그리되었다고 엄포를 준다. 어른들 말 안 듣고 까불면 아빠같이 되니까 조심하라고 메시지를 던져 준다. 아이들이 커가니까 점점 아빠 외모에도 관심이 많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모에 대해 고마워야 해야할 사람이 있다. 바로 집사람이다. 내 외모가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와서 예쁜 딸 낳아주고 살아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마 집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아직도 총각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