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사촌동생 미순이

행복한 까시 2005. 4. 30. 07:38

 미순이는 첫째 작은아버지의 장녀인 내 사촌 여동생이다. 미순이는 올해 서른 여섯 살이나 되었다. 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말과 웃음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 점을 이상히 여기셨다. 아이들은 어릴 때 말하기 전에 웃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는데 그 아이는 이상하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커가면서도 계속 말이 별로 없었고, 지금도 물론 말수가  매우 적다. 그런 이유로 친척 어른들로부터도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죽 지켜보았지만 미운 오리새끼처럼 구박받는 그 동생을 항상 측은하고, 가엾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금도 이 광경은 마찬가지이며, 변함이 없다.

 그 동생은 상고까지 다녔지만 한글을 제대로 해독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한글을 아는지에 대해 물어 본적도 없고, 테스트를 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숫자는 읽고 해독하는 것 같다. 언젠가 한번 저금통장에 돈이 얼마가 저축되어 있는지 알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던 동생이 문제가 된 것은 상고 졸업 후 취업을 하면서부터였다. 동생의 성격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작은어머니는 취직을 했다고 동네에 엄청나게 자랑을 하고 다녔다. 나는 내심 속으로 걱정을 했다. 과연 그 동생이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 걱정은 취직한지 한 달도 안되어 현실로 나타났다. 그 당시 내가 대학생이었고, 아마 여름방학 기간이었을 것이다. 여름방학 때는 시골에 가서 농사를 거들었다. 하루는 밭으로 어머니와 함께 가는데, 웬 승용차 한 대가 서서 길을 물어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차안에 동생 미순이가 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생 네 집을 알려주고, 돌아서서 가는데,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동생이 차에 탔는데, 동생 네 집을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고 여러 가지가 이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생이 취업을 해서 일을 하는데,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적응을 못하고, 정신적으로 충격을 많이 받은 것이었다. 그 후로 동생은 병원에도 가고, 약도 많이 먹었다. 그렇게 말이 없던 동생이 말이 많아지고 가끔가다가 헛소리도 많이 했다. 그 후로는 집에 계속 있는데, 일도 안하고, 먹기만 하고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미순이가 스물 여섯 되던 해에 중매로 결혼을 했다. 친척들과 가족들은 너무 기뻐했고, 나도 누구보다 너무 좋았다. 이제야 미순이가 사람답게 사는구나 하고 내심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걱정이 되었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어머니는 동네방네 자랑하며 난리를 쳤다. 안타깝게도 내 걱정은 현실로 또 돌아왔다. 결혼 후 얼마 안되어 친정으로 돌아왔다. 하긴 밥도 잘 안하고 집안 일도 잘 못하는 동생 미순이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 후로 미순이는 지금까지 친정 집에서 살고 있다.

 

 고향에 일이 있어 다니러 가면 미순이를 자주 본다. 항상 측은하고 마음이 아프다. 작은아버지에게는 커다란 짐이다. 미순이 걱정 때문인지 몰라도 작은아버지는 늘 수심이 가득하다. 얼마 전에는 위암 수술도 했다. 나도 그런 미순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마음속으로만 가슴아파하고, 다른 친척들로부터 무시당하는 미순이가 가엾다는 생각만 마음속으로 하고 있다. 요즘도 미순이는 집에서 하는 일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다. 도대체 미순이의 머리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