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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과 겨울 추억

행복한 까시 2015. 12. 29. 07:30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후식으로 숭늉이 나왔다.

작은 그릇에 담긴 갈색의 누룽지가 들어 있는 숭늉이 맛깔스럽게 느껴졌다. 누룽지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누룽지를 보니 반사적으로 고향 추억이 생각났다. 특히 겨울에 먹던 따끈따끈하고 구수한 숭늉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우리 고향집에서는 주택을 양옥으로 짓기 전인 1990년 까지는 옛날식 부엌에서 불을 지펴 밥을 지어 먹었다. 주로 큰일이 있거나 동네의 행사가 있을 때에는 가마솥에 밥을 하였고, 가족끼리 밥을 먹을 때에는 노고솥(표준말은 노구솥)에 밥을 하였다. 이렇게 무쇠 솥에 밥을 하면 밥이 기름이 자르르 흐르면서 고소한 밥맛이 무척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또한 밥맛뿐만 아니라 솥 밑에 눌어붙은 누룽지는 그 맛이 일품이다. 누룽지가 많이 눌으면 어머니는 바삭한 상태로 긁어서 우리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내가 어리다는 이유와 입이 짧아서 아무거나 많이 먹지 않아서 특히 나에게 많은 분량의 누룽지가 돌아왔다.


 누룽지를 약간 남겨서 물을 부으면 숭늉이 된다.

데워진 솥의 열기와 아궁이에 남은 불이 더해져 솥을 데우면 누룽지가 불어서 숭늉이 되는 것이다. 숭늉의 맛은 밥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흰쌀밥을 할 때는 숭늉의 맛이 단순하면서 깔끔하지만 잡곡밥은 여러 가지 숭늉 맛이 난다. 콩을 넣은 밥을 할 때의 숭늉은 고소한 맛이 더하며, 팥을 넣은 밥의 숭늉은 담백한 맛을 준다. 수수밥이나 찰밥을 했을 때는 잡곡이 많이 들어가서 숭늉이 더욱 맛있었다. 약간 간간하면서도 고소하고, 여러 가지 잡곡의 맛이 어우러져 희한한 맛을 만들어 내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숭늉 생각을 하니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숭늉은 특히 할머니와 같은 어르신들이 참으로 좋아하셨다.



 요즈음도 고급 음식점에 가면 숭늉과 누룽지가 나온다.

어느 정도 맛은 있지만 무쇠 솥의 숭늉보다는 맛이 덜하다. 숭늉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요즘 고급 음식점의 반찬들이 모두 옛날 시골에서 먹던 시골밥상의 반찬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세상은 돌고 돈다고 하나 보다. 고추튀각, 콩잎장아치, 돌나물, 달래, 시래기 된장무침, 게장 등이 모두 서민들이 먹던 반찬들 이다. 하지만 이런 반찬의 공통점은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롭다는 것이다. 예전의 어머니들이 음식을 하는데 많은 정성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이런 먹거리를 고급 음식점에서 사먹어야 한다는 것이 좀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다. 이런 것 먹고 싶다고 하면 우리나라 여인네들은 모두 반기를 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고리타분한 조선시대 사람이라고 비웃음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고상한척, 세련된 척 하는 사람이라도 우리 전통 음식을 보면 맛있다고 잘 먹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고급 음식점에서 이런 음식들을 만들어 파는 것만 보아도 이러한 현상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


 어린시절에 여러 가지 전통 먹거리를 다양하게 먹었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사춘기에 들어서 서양식 먹거리를 동경하고, 전통 먹거리를 촌스럽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철없던 시절의 행동이었다. 무쇠 솥에 밥을 지어먹고, 자연에서 바로 채취한 다양하고 싱싱한 먹거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던 유년시절이 가난한 삶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행복한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글을 쓰면서 노구솥 안에 어머니가 퍼 담아 놓은 숭늉을 생각한다.

그 안에는 점심에 먹을 밥과 숭늉이 항상 들어 있었다. 솥뚜껑을 열면 숭늉냄새가 구수하게 풍겨 나온다. 가끔 떡 같은 별식도 들어 있었다. 그러면 그날 솥뚜껑은 불이 났다. 계속 드나들며 떡을 꺼내 먹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때의 숭늉을 맛 볼 수가 없다. 무쇠 솥도 없어지고, 불을 지펴 밥을 하는 곳도 없으니 말이다. 요즘 압력 밥솥에서 얻어지는 숭늉은 깊은 맛이 없다. 그냥 밋밋한 맛뿐이다. 그렇다고 옛날로 돌아가서 숭늉을 만들어 먹을 수는 없으며, 숭늉 때문에 예전의 어머니들이 겪었던 수고를 다시 재현하기는 더더욱 싫다. 단지 어렸을 때 많이 먹어 보았던 숭늉을 추억으로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