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중년 남자를 울게 만든 영화 <댄싱퀸>

행복한 까시 2012. 2. 8. 07:30

 

 

 일요일 오전 가족들과 영화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영화 한편으로도 행복해 하는 가족들이다. 관람료를 아끼기 위해 조조표를 미리 예매해 놓았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저렴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번에 본 영화는 <댄싱퀸>이다.

가족과 가볍고 경쾌하게 보기 위해 선택한 영화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보려고 시작했던 영화가 진지해졌다. 나중에는 눈물까지 흘렸다. 영화평을 한마디로 하자면 음악이 있어 경쾌하고, 우리들의 삶이 녹아 있어 진지하고, 감동이 있어 눈물까지 짜게 만드는 영화였다.

 

 

         

 


 먼저 <댄싱퀸>에는 노래와 춤이 있었다.

흥겨운 노래가 있어 즐거움을 주었다. ‘Harlem Desire’를 듣는데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엄정화가 직접 부른 ‘콜 마이 네임’ 등과 같은 노래가 귀를 즐겁게 했다.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신나는 노래가 영화의 지루함을 달래 주었다. 또한 엄정화의 현란한 춤은 눈을 즐겁게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과 귀가 즐거웠다.


 두 번째 중년 부부의 삶이 녹아 있었다.

늘 사소한 일로 다투는 부부의 일상이 우리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더 공감하기가 쉬웠는지 몰랐다. 아이들 키우는 문제, 돈 문제, 중년의 힘겨운 삶이 영화에 고스란히 그려졌다. 우리 이웃집 이야기를 듣는 듯 했다. 아니 나의 이야기와 같이 마음속에 다가 왔다. 


 세 번째는 꿈을 찾는 이야기가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중년이 되면 대부분의 모두 꿈을 잊고 살아간다. 꿈을 이루고 사는 이는 몇 안 된다. 꿈이 있더라도 포기하고 살아간다. 아이들 키우느라 꿈을 잊고, 직장에서 일하느라 꿈을 잊고 살아간다. 꿈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마음속에 잊고 있던 꿈을 되 살아 나게 해 주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아내도 꿈이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 계기가 된 것 같다.


 네 번째는 정치 풍자가 있었다.

정치에 대해 시원하게 한방 때리는 그런 영화였다. 평상시에 중년들이 정치에 대해 말해 주고 싶은 것을 그대로 대변해 주었다. 속이 다 후련했다. 정치에 대해 말을 하고 싶어도 말 할 곳이 없었다. 들어 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에 대해 간지러운 부분을 이 영화가 시원하게 긁어 주었다.


 다섯 번째는 눈물이 있었다.

황정민이 계란 세례를 받으며 연설을 할 때 눈물이 나왔다. 우정으로 뭉쳐진 친구와 함께 울음을 터뜨릴 때 내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려던 중년이 사다리에서 떨어진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 사람들이 하이에나처럼 황정민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순간 연민의 정이 흘러 나왔다. 친구와의 진한 우정에서도 눈물이 났고, 황정민의 사연이 내 모습인 것 같아 눈물이 났다.


 가족에게는 눈물을 숨겼다.

눈물을 보이면 딸들이 놀려 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처럼 영화를 보고 울었다. 경쾌한 영화라 울지 않을 것 같았는데 눈물샘 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아무튼 영화를 보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여러 가지가 만족스러워서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우리 영화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도 기분이 좋아지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