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마다 이야기하고 싶지 않거나 감추고 싶은 일이 있게 마련이다. 늘 다른 사람에게 멋지게 보이고,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사람의 본심일 것이다. 나도 가끔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만 안 좋은 것은 되도록 감추고 행복했던 기억이나 즐거웠던 일만 골라서 올리는 일이 많다. 좋지 않은 일이나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올리면 청승맞다는 생각도 들고, 읽는 사람들도 덩달아서 기분이 가라앉을 것 같아서 잘 올리지 않았다. 오늘 이야기도 며칠 동안 쓸까 말까 고민 하다가 쓰게 되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나보다 더 우울한 사람들에게는 별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번 연휴는 길었다. 대체근무까지 하고 나니 휴일이 6일이나 되었다. 그래도 집안 일을 하다가 보니 금방 6일이 지나갔다. 연휴 첫날부터 이틀 동안은 그 동안 밀린 집안 일을 하였다. 은행일, 장보기 등 밀린 집안 일을 처리하니 하루가 짧았다.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추석 전날 시골집으로 향하였다. 다른 때 같았으면 고향으로 가는 길이 기분이 좋았을 텐데, 이번에는 가면서도 기분이 우울하고 울적했다.
그 이유는 어머니가 한달 전에 복숭아 과수원에서 일을 하시다가 넘어져서 허리를 다치셨기 때문이다. 정확히 한달 반이나 병원 신세를 지고 계신 것이다. 처음 보름 동안은 아주 허리를 못쓸까봐 걱정이 되어서 어머니 자신도 우울증이 걸리셨던 것 같다. 아버지에게 짜증만 내고 신경질을 많이 부리셨던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많이 좋아지셔서 다행이다. 그래도 아직도 한달 이상은 병원에 계셔야 한단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어머니의 큰며느리인 형수님은 치질 수술을 하였다. 둘째 며느리인 우리 집사람은 작년에 수술을 한 이후로 오른쪽 팔을 잘 못쓴다. 무거운 것도 못 들고, 팔을 조금만 써도 팔이 무척 아프다고 한다. 셋째 며느리인 제수씨는 올 봄에 출산하여 갓난아기를 달고 있다. 아무리 계산을 해보아도 추석을 지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가는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외출증을 끊어 가지고 집으로 가니 병원에 들르지 말고 집으로 곧장 오라는 연락이다.
집에 도착해서 형수님께 이번 추석 차례는 어머니도 편찮으시고 하니 생략하는 것이 어떠냐고 집사람이 물어 보았다. 사람들도 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차례를 지내지 않는 것이라고 해서 그냥 단순히 물어본 것이었다. 그랬더니 여자가 넷씩이나 되는데 왜 차례를 지내지 않느냐고, 다짜고짜 막무가내로 난리를 친다. 그렇게 화를 내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러지 않아도 우울했던 기분이 더 아래로 추락했다. 사실 차례를 지내지 않더라도 간단한 음식을 싸 가지고 가서 산소에다 차리고 성묘를 생각한 것이었다. 화가 나는 것을 참고 곰곰히 생각하니 더욱 열이 났다. 차례를 지낼 생각이라면 왜 하필이면 추석 밑에 치질 수술을 하였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차례를 지내기로 하니 집사람과 제수씨가 음식 장만에 들어갔다. 다행이 조카가 음식 하는 것을 도와서 겨우겨우 음식 장만을 한 것 같다. 형수는 수술한 곳이 아프다며 왔다갔다하기만 하는 것 같다. 시골이라 남자들은 음식을 하지도 못하게 해서 도와주지도 못했다. 내가 도와준 것이라고는 아이들 보는 일, 마늘 까는 일이 전부였다. 아픈 팔을 이끌고 집사람이 주관하여 음식장만을 하였다. 음식을 할 줄도 모르고, 도와줄 형편도 안되고, 보고 있자니 속만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 와중에도 형수는 옆 마을에 와 계신 작은어머니가 와서 음식 하는 것 도와주지 않는다고 또 짜증을 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추석 당일 날도 아프다고 짜증, 여러 가지 사소한 일로 짜증을 많이 내었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당장 우리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아파서 누워 계신 어머니 때문에 참고 또 참았다. 사실 이 일은 아버지, 어머니, 형도 잘 모른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셔봤자 속만 상할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나와 집사람, 제수씨, 형수님의 딸인 조카만 이 사실을 처절히 겪었다. 형수 때문에 형수의 딸인 조카가 고생을 많이 하고, 일도 많이 거들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사연이 많은데 세세하게 일일이 열거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 이 글은 순전히 나의 입장에서 썼으므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형수님의 입장에서는 명절 때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우리들이 별로 달갑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도 많이 속상하다. 추석 때 일한 후유증으로 집사람은 팔이 아파 밥먹는 것도 힘겨워 한다. 겉은 멀쩡하니까 사람들은 작년에 수술한 것이 다 치유 되었는 줄 안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두 번 아프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도 좋은 소리도 못 듣고 했다는 것도 나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였다.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추석 같은 명절이 나의 마음을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절 때는 웃음꽃이 피는 집이었는데, 왜이리 집안 분위기가 변했는지 모르겠다. 이번 추석에는 명절 증후군을 제대로 경험한 것 같다. 말로만 듣던 명절 증후군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남자들도 여자들 못지 않게 명절 증후군이 있다. 대신 일을 해주지 못하고 바라보아야만 하는 심정, 이런 기분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이번 추석은 이렇게 요란하게 보냈다. 추석의 날씨는 청명하고, 포근했으나 내 마음의 날씨는 잔뜩 흐리고, 바람이 쌩쌩 불어오는 황량한 벌판에 서있는 느낌이었다.
'까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수록 초라해지는 연말 풍경 (0) | 2006.12.25 |
---|---|
치아 콤플렉스 (0) | 2006.10.15 |
단골가게로 보는 정겨운 이웃 (0) | 2006.09.24 |
시험 보는 날 (0) | 2006.09.15 |
휴가와 휴식(1) (0) | 2006.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