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제 때문에 올해는 휴가가 좀 길었다. 그러나 휴가가 길다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다. 회사가 잘 나가고 있다면 긴 휴가가 기분 좋은 일이지만 회사의 일감이 적어서 휴가가 길다는 것은 마음 한구석을 쓸쓸하게 할 뿐이다. 그래도 오랜만의 휴식이라 이런 마음을 뒤로 하고 휴가에 들어갔다.
휴식이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간인 것 같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여러 사람들을 보며, 부대끼고, 같이 호흡한다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휴가라고 해서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바다나 계곡을 찾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래 사람들이 많이 모여 북적거리는 휴가지를 싫어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거의 휴가는 조용하게 지내는 편이다. 조용하게 지낸 휴가가 나에게는 나름대로 의미가 더 많았다. 휴가가 끝나고 첫 출근하는 날은 어김없이 질문들이 쏟아진다. “휴가는 잘 보내셨나요? 어디 다녀오셨어요? ”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그러면 나는 “그냥 조용히 보냈어”라며 건성으로 대답해 버리고 만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별 볼일 없이 휴가를 보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밀린 책을 읽고, 부모님을 찾아뵙기도 하고, 전시회도 등도 가고, 아이들과 놀아주며 나름대로 의미 있는 휴가를 보냈다.
휴가 첫째 날도 막바지 장맛비가 많이 내렸다. 비가 조금 내리기에 고향집으로 출발했더니 가는 도중에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운전하기도 힘들었다. 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운행을 하였다. 겨우 고향집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집 앞에 나와 기다리신다. 작년부터 악화된 건강이 다행이 많이 호전되어 마음이 가볍다. 고향집은 여름철이라 여전히 바쁘다. 형은 장맛비에 무너진 논둑을 복구하러 나갔다고 한다. 아이들과 밭에 나가 보니 어머니는 콩밭의 새를 쫒고 계셨다. 수해로 콩밭이 물에 잠겨 콩이 많이 죽어서 다시 심었는데, 비둘기, 꿩 같은 날짐승들이 와서 새로 심은 콩을 파먹는다고 한다. 멀리서 밭을 내다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우산을 쓰고 날짐승들을 쫒고 계셨다. 아이들을 데리고 어머니가 계신 밭으로 나가니 어머니는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르신다. 저번 주에도 일이 있어서 잠깐 다녀갔는데 또 좋아하신다. 그래서 요즘은 부모님을 더 자주 찾아뵈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다음날은 복숭아 수확이 있어서 거들었다. 새벽 다섯시 반부터 복숭아밭으로 가서 복숭아 따는 일을 도와드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따놓은 복숭아를 나르는 일 뿐이다. 비가 많이 와서 밭이 미끄러워 몇 번 넘어질 뻔 했다. 한번은 복숭아 상자를 들고 넘어져서 옷을 버리기도 했다. 복숭아를 다 따고 나서는 출하를 위한 포장 작업을 하였다. 복숭아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중량에 맞추어 비슷한 크기로 골라 상자에 담아 포장하는 일이다. 엷은 핑크색 복숭아를 상자에 담아서 포장을 하니 색도 예쁘고,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아마 이것이 포장의 가치인가 보다. 복숭아 작업을 마치니 피부는 복숭아털가루가 묻어 가렵고 빨갛게 부풀어 오른다. 그래도 바쁘니 어쩔 수가 없다.
복숭아 작업을 끝내고 저녁나절 무렵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에 사는 동생집으로 이동했다. 동생이 딸을 낳았는데 그동안 가보지 못했다. 벌써 백일이 되어 아기도 보고 백일도 축하해주려고 가는 것이다. 어머니도 농사일이 바빠서 가실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우리가 간다고 하니 따라 나서신 것이다. 저녁때는 서울에 사는 누나, 남동생, 우리 가족 등 세 가족이 어머니를 모시고 외식을 하였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서 저녁을 먹으니 기분이 좋다. 피붙이들과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가족들을 만나는 것도 휴가가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다음날은 동생도 출근하고, 누나도 출근해서 집에 없으므로 일찌감치 누나네 집을 나왔다. 어머니가 백일된 조카를 한 번 더 보고 싶어 하셔서 동생집에 잠시 들렀다. 그리고 어머니를 버스터미널에 가서 고향 동네로 가는 버스를 태워드렸다. 그 후 우리는 또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집사람의 음식조절 때문에 가장 지내기 편한 처제네 집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이들을 위한 일정이 남아 있어 며칠간 처제네 집에서 머물렀다.
여러 집을 둘러 본 결과 모두 바쁜 삶들이었다. 모두들 새벽같이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는 일상들, 나의 평상시 모습과 거의 같은 일상이었다. 모두들 건강하게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잠시 업무에서 벗어나 이런 저런 생각도 하고, 나 자신을 한 번 더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부모님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불평했던 일들이 별것이 아니라는 생각들 내가 발버둥치며 했던 업무들 또한 내 삶을 채워주는 일부분이라는 것, 내가 하는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동안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부분을 채워 주었다는 것에 이번 휴가의 의미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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