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여자 셋과 같이 사는 한 남자 이야기

행복한 까시 2007. 6. 1. 09:17
 

 결혼 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일 년 정도 혼자 살았다. 혼자 사는 삶은 늘 쓸쓸함 그 자체였다. 작은 평수이지만 혼자 사는 집이라 집안 살림이 별로 없어 무척 넓어 보였다. 저녁에 퇴근해서 돌아오면 늘 불 꺼져 있는 텅비어있는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와도 별로 할일도 없고, 피곤해서 일하기도 싫고 해서 늘 텔레비전만 보게 되었다.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있으면 그래도 사람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쓸쓸하고 외롭던 집이 이제는 가족들로 가득 차 있다.


 가족들이 늘면서 내가 거쳐하던 공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내와 아이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안방은 아내가 안주인 이라는 명분으로 차지해 버렸고, 중간 방은 책상이 놓여 있으니 공부를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큰 딸이 차지하고, 작은방은 작은 방이라서 작은 딸이 써야한다는 그럴듯한 이유로 차지해버렸다. 거실은 혼자 차지해야할 명분이 없으므로 가족 모두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안방에 나의 몫이 약간은 있지만, 그래도 그간 아내가 행동해온 것으로 볼 때 아내 쪽에 더 많은 지분이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결혼 전에 쓰던 책상도 큰딸이 점령해 버렸고, 컴퓨터를 쓰려고 해도 딸들과 협상을 해서 써야한다. 컴퓨터를 하다가도 큰딸이 영어 녹음 한다고 하면 하던 것 중지하고 내주어야 한다. 가정에서 그만큼 아이들의 공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내주면서도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그저 아이들이 공부한다는 것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이런 것을 보고 자식에게 눈이 멀었다고 하는가 보다.


 아내와 딸 둘 이렇게 여자 셋과 사는 남자는 본의 아니기에 피해를 많이 본다. 특히 욕실에서 목욕하고 나올 때 우리 집 여자들은 욕실밖에 나와서 옷을 입는다. 집안에 여자들이 많으므로 여인천하가 된 것이다. 반대로 나는 혼자만 남자이므로 욕실 안에서 옷을 입고 나온다. 딸들이 어느 정도 커서 조심스럽기 때문이지만 이점에 대해 불만이 많다. 하지만 불만이 많아도 별다른 해결 방법도 없다. 


 그리고 아내와 의견 대립이 되었을 때 두 딸들은 거의 아내의 편을 든다. 하루 종일 같이 붙어 있어서 그런 면도 있지만, 같은 여성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아내와 딸 둘을 포함해서 셋이서 의기투합하여 대립하면 질 수밖에 없다. 아니 져줄 수밖에 없다. 계속 우겨봤자 입만 아프고, 권위만 더 추락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져주는 방법이 더 편하고 현명하다. 그리고 아내의 잔소리와 그 잔소리를 흉내 내는 아이들 둘의 잔소리는 거의 앵무새 수준이다. 텔레비전의 어떤 보험회사 광고에서처럼 아내의 잔소리를 두 딸들이 거의 동일하게 재연해 낸다. 그런 것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밖에 안나온다. 


 그러나 여자 셋과 사는 한 남자가 늘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대접을 받을 때도 많다. 왜 남자들만 있는 집단에 여자가 한명 있으면 대접받는 것처럼 나도 대접받을 때가 많다. 과일이나 간식을 먹을 때 딸들이 서로 먹여주겠다고 할 때, 딸들이 개인기를 서로 보여주며 예쁘게 보아달라고 할 때도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여자 셋이서 서로 자기에게 사랑을 달라도 경쟁할 때도 남자의 희소성이 유감없이 발휘되며 배짱을 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배짱의 수위가 높아지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적절한 선에서 처신을 해야 여자 셋 틈에서 살아 갈수 있는 것이다.


 여자 셋과 사는 한 남자 항상 불리한 것 같으면서도 유리함이 있는 생활이다. 아마도 이와 반대되는 여자들도 많을 것이다. 남편과 아들을 두 명둔 아내들이다. 아마도 내 입장과 비슷하리라 본다. 어떤 때는 대접도 받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집안일에 무관심한 남자들 챙기느라 허리가 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또 이런 집들은 남자들이 집안일을 잘하는 집도 많은 것 같다. 하여튼 여자 셋과 사는 삶은 늘 아기자기하고 잔잔한 행복이 함께하는 것 같다. 이것은 아마도 남자들 보다는 여자들이 더 자상한 면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다. 오늘도 여자들의 집안 가득한 웃음소리로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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