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탔을 때 지갑을 놓고 왔거나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을 때 당황하게 된다. 택시에서 내려야 하나 그냥 타고 가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소심한 사람이라면 그냥 내릴 수도 있고, 좀 여유로운 성격의 소유자라면 끝까지 타고 가서 해결을 본다. 집에 도달해서 지갑을 가지고 나와 계산을 하거나 회사라면 동료에게 빌려 택시비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가다가 보면 다들 이런 경험들은 한두 번쯤 있게 마련이다.
택시 이야기가 나오니 자존심이 강했던 젊은 시절의 오래전 추억이 떠오른다. 회사에 갓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누구나 마찬가지 이지만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퇴근 후에 학교 선배들과 자주 만났다. 시간도 많고 해서 학창시절 친했던 선배들과 자주 만났던 것이다. 저녁을 먹고 술을 먹었다. 선배가 저녁을 샀으니 2차로 술은 내가 샀다. 이렇게 저녁을 먹고 술을 먹으니 열두시가 넘었다.
버스도 모두 끊긴 시각이었다. 술값을 계산하고 나니 지갑에는 동전 몇 개만 남았다. 선배를 먼저 택시 태워 보내고, 나 혼자만 남았다. 택시를 타야 하는데, 돈이 없어 고민을 했다. 한참 고민을 하다가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를 타고 가는 중에도 마음은 불안했다. 집에 다 도착해서 택시비가 없다고 운전기사에게 고백을 했다. 택시기사는 짜증을 내었다. 가방을 맡기고 택시비를 가지러 집으로 갔다. 죄인처럼 미안하단 말을 몇 번 하고 택시비를 지불 했다.
지금 같으면 선배에게 택시비를 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 당시는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같으면 휴대폰이 있어 가족에게 돈을 가지고 집 앞으로 나오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어제 아내에게 일어났다. 어제 퇴근을 하니 작은 딸이 옷도 벗기 전에 낮에 있었던 일을 브리핑했다. 아내와 두 아이들이 운동을 나갔다고 한다. 가볍게 운동을 나갔으니 지갑을 가지고 갈 이유가 없던 것이었다. 운동을 나간 것 까지는 좋았는데, 이웃집 아줌마를 따라 아주 멀리까지 걸어갔다고 한다. 집에서 6Km 되는 거리까지 갔다고 한다. 운동을 하고 집으로 오는데,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다고 한다.
소나기가 내리고, 천둥과 번개가 쳐서 걸어 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아내는 아이들이 무서워 할까봐 택시를 탔다고 했다. 아이들도 무서웠겠지만, 사실 아이들 보다 아내가 더 무서웠을 것이다. 아내가 은근히 겁이 많기 때문이다. 택시비가 없이 택시를 탄 것이다. 택시를 아파트 안에까지 타고 와서 택시비를 지불 했다고 한다. 작은 딸은 이 사건이 신기한지 숨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아내는 쑥스러운지 작은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내의 아이들 사랑은 끔찍하다. 모성애는 자존심도 창피함도 모두 감싸 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무서워 할까봐 택시비도 없이 용감하게 택시를 탄 것이다. 작은딸의 이야기를 들으니 소나기가 내리고 천둥치는 거리에서 우왕좌왕 했을 세 가족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재치 있게 택시를 탄 아내의 모습에서 모성애를 엿볼 수 있다. 그 상황에서 내가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본다. 그냥 비를 맞고 걸 왔을까 아니면 아내처럼 택시를 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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