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시 이야기

이중성에 대하여

행복한 까시 2006. 1. 31. 15:15
 

 이중성, 듣기에 따라서는 그리 좋아 보이는 단어는 아니다. 먼저 이중인격자가 떠올려진다. 이중인격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기피대상이다. 그도 그러할 것이 앞에서 하는 말 다르고,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르니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을 턱이 없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이런 이중인격자가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이중적인 태도, 아니 이중을 넘어선 삼중, 사중 아니 다중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그냥 애교로 보아줄 만한, 시트콤에 나올법한 그런 나의 이중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먼저 음악에 대한 다중성이다. 이른 아침에 홀로 깨어나 있을 때, 한밤중에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에는 잔잔한 클래식을 듣고 싶다. 클래식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듣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설, 추석 등의 명절날이나 회갑, 고희연 등의 잔치 집에서는 국악인이 부르는 창부타령, 춘향가, 흥보가 등의 판소리, 구성지게 불러대는 회심곡, 경쾌한 가락의 경기민요 등의 우리가락이 가슴에 와 닿고, 흥을 돋우는 국악이 좋다. 이렇게 국악에 빠져들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린다. 또한 어떤 때는 통기타 선율이 흐르는 포크송을 듣고 싶다. 강물이 바라다 보이는 어느 한적한 카페에 가면 발라드나 째즈를 듣고 싶고, 분위기 있는 팝송도 듣고 싶다. 또한 나이트 장에 가면 빠른 템포의 랩송이나, 디스코 음악을 듣고 싶은 것이 음악에 대한 나의 다중성이다.     


 책에 대해서는 기분이 좋고 여유로운 시간에는 시(詩)가 좋은 것 같기도 하다가, 너무 심오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냥 짜투리 시간에는 수필을 즐겨 읽기도 하고, 이유 없이 시간이 지루하고, 아무 개념 없이 며칠을 보낼 때에는 소설을 읽는다. 소설을 읽으면 힘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살아가는 이유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회사 생활이 고달프고 힘들 때에는 경영서를 많이 읽는다. 경영서가 재미없고 따분하기도 하지만, 회사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의 의미를 해석해 주고, 스트레스를 중화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어쩌다가 아주 심심할 때에는 동화책으로도 손이 간다. 동화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회상도 하고,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동화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기도 한다. 이처럼 책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다중성을 갖는 것이 또한 나의 마음이다.


 옷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다. 어떤 때는 아름다운 천연 색깔이 염색된 한복이 입고 싶어진다. 아주 노랑, 빨강, 파랑의 화려하게 채색된 한복이나, 아니면 청색, 갈색, 곤색 등의 어둡게 채색된 한복이 입고 싶기도 하다. 또 고급 음식점이나 파티에 갈 때에는 화려한 넥타이에, 화려한 셔츠 양복을 입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나이트 장에 갈 때는 보기에도 민망한 연예인이 입는 반짝이 옷에 머리에도 빨간 물이나 노란 물을 들인 그런 복장을 하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나들이 갈 때에는 청바지에 허름한 면 티셔츠를 입고 싶기도 하다. 


 그림은 또한 어떠한가? 한옥으로 운치 있게 지은 집에 가면 동양화가 그렇게 멋지게 보일 수 없다. 색깔을 아껴서 튀지도 않으며, 여백이 많아 편안하고 여유로움을 주어 그림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시멘트로 지은 양옥집으로 가면 서양화가  좋다. 자연 풍경을 담은 유화에서 정물화 등등이 좋다. 그리고 아무리 보아도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알 길이 없는 추상화도 좋을 때가 있다.


 음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다. 내 입맛의 근본은 한식이지만, 다른 나라 음식들도 좋아한다. 한식을 두말할 필요 없이 좋다. 특히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조선시대 음식이 좋다. 이뿐만이 아니다. 탕수육, 팔보채, 깐풍기 이름도 잘 모르는 중국 요리에서부터, 미국을 대표하는 햄버거에서 양식을 대표하는 스테이크까지 모두 좋아한다. 이태리가 원조라고 하는 피자에서 스파게티까지 분위기와 때에 따라서 다양한 음식을 좋아한다. 또한 일식의 회나 초밥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음식뿐만이 아니라 날씨도 마찬가지이다. 햇빛이 쨍쨍 비치는 날은 말고 청명해서 좋고, 비가 오는 날은 우울하지만 상념에 젖을 수 있어서 좋고, 눈이 오는 날은 눈이 오는 대로 눈 풍경에 취해서 좋다. 흐린 날은 흐린 날 대로, 바람 부는 날은 바람 소리가 좋아서, 안개 낀 날은 안개가 좋아서, 서리가 내린 날은 서리꽃이 좋아서 좋다. 그러다 보니 계절도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특징이 있어서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변화가 좋다. 계절의 변화가 없었더라면 무척이나 심심하고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텔레비전을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때는 지루하고 따분한 다큐멘터리가 좋을 때가 있는가 싶으면 아무 생각 없이 보는 시트콤이나 쇼프로가 좋기도 하고, 눈물 콧물 다 짜내는 진지한 드라마가 좋은 때도 있다. 이처럼 나의 마음은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떤 때는 이것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가도, 또 어떤 때는 저것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는 등 너무도 변화무쌍해서 알 수가 없다. 이것이 아마 인간의 이중성 아니 다중성이 아닌가 한다. 그래도 나는 이런 다중성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왜냐하면 늘 지루하지 않게 삶을 살아가게 해 주니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마음속에 항상 자리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이중성이 아니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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