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인지 모른다. 내 마음을 짓누르는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것 같다. 일을 해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구석에는 무거운 무언가가 있는 느낌이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오늘부터는 마음잡고 일을 해야지 하고 몇 번을 다짐하고 출근 하지만 사무실에 들어오면 또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동료들은 나의 이런 마음을 잘 모를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마음을 꼭꼭 숨기고 생활을 하니 말이다.
요즈음은 글도 잘 써지지 않는다. 쓰기 싫으면 그냥 쓰지 않으면 되지만, 그만큼 마음이 산만하다는 증거이다. 글감이 있어도 몇 줄 쓰다가 보면 글이 나가지 않아 지워 버린 것이 무척이나 많다. 그리고 억지로 글을 써 봐도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늘은 이런 마음의 정리를 위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횡설수설 끄적여 본다.
그렇다고 집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도 건강하게 어린이집과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그리고 공부도 그런대로 해주니 문제가 없고, 집사람도 아픈 상처를 잘 치유해 가고 있어 집안도 어느 정도 안정화 되었는데, 왜 나의 마음만 이렇게 방황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회사일도 잠재적인 불안 요소는 있지만 어느 정도 회복되어 안정화 되어가고 있는데, 왜 이리 혼란스러운지 모르겠다. 그동안 집안일과 회사일로 너무 힘들었던 것이 하나 둘씩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어 긴장이 풀린 탓일까?
음악을 들어도 잘 들리지 않는다. 지금도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지만 아무 생각이 없다. 책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단지 눈으로는 책의 활자를 보고 있고, 머릿속은 딴 곳에 가서 헤매고 있다. 그래서 컴퓨터를 켜서 마우스를 눌러 보지만 공연히 마우스만 괴롭히고 있다. 마치 집에서 TV 채널을 괴롭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마우스를 눌러봐도 늘 그렇고 그런 뉴스거리, 신물나는 연애인들의 사생활 이야기, 넘쳐나는 광고들뿐이다. 그리고 블로그의 글들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래도 블로그는 나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것 같다. 내가 피곤하고 지칠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주말에는 집을 옮기려고 부동산 중개소 몇 곳을 둘러보았다. 작년부터 이사를 가려고 하다가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못가게 되었다. 요즈음은 아파트 값이 일주일에 몇 천 만원 씩 오른다. 서울은 억씩 오른다고 하는데 아파트 값이 날개를 달았나 보다. 일주일 사이에도 값이 천정부지로 뛰니 실수요자인 나는 화만 난다. 부동산 중개소 몇 군데 다니고 나니 마음이 더 허탈하다. 아무 생각 없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 대가가 고작 이것인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 울적해 진다. 물론 회사에서 크나큰 것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자고 나면 오르는 부동산을 보면서 솔직히 의욕이 상실되는 것은 사실이다. 몸이 안 좋은 집사람을 위해서 좀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하여튼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고 짜증만 난다. 밖에 나가 돌아다녀도 재미가 하나도 없고, 집에 있어도 그저 그렇다. 회사에 와서도 의욕이 하나도 없다. 괜히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앞선다. 많이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 말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감추기 위에 밝은 모습을 보이며, 어색한 농담을 건네지만 내 마음속은 늘 겉도는 모양새이다.
지금도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의문을 던져 본다. 오랜 회사생활에서 오는 지루함 때문일까? 아니면 매일 반복되는 회사의 일상에 슬럼프가 온 것일까? 아니면 집안일이 어느 정도 해결되어 가고 있어 긴장이 풀어진 탓일까? 아니면 남들이 말하는 중년의 고독감 또는 중년에 찾아오는 제2의 사춘기 때문인가? 아니면 봄을 타는 것일까?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지금도 무언가에 짓눌려 마음과 어깨와 머리가 많이 무겁다. 예전 같으면 봄이 오면 좀 가벼워 졌는데, 전혀 차도가 안 보인다. 대신 감수성만 예민해 지는 것 같다. 오늘따라 오광수씨가 지은 “아름다운 중년”이란 시가 가슴에 구구절절이 내 마음을 파고든다.
중년은 많은 색깔을 갖고 있는 나이이다
하얀 눈이 내리는 가운데서도 분홍 추억이 생각나고
초록이 싱그러운 계절에도 회색이 고독을 그릴수있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만 보는것이아니라 가슴으로 본다
중년은 많은 눈물을 가지고 있는 나이이다
어느 가슴아픈 사연이라도 모두 내사연이 되어버리고
훈훈한 정이오가는 감동 어린 현장엔 함께하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만 우는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운다
중년은 새로운 꿈들을 꾸고 사는 나이이다
나자신의 소중했던 꿈들은 뿌연 안개처럼 사라져가고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꿈들로 가득해 진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 꿈을 꾸고 가슴으로 잊어가며 산다
중년은 여자는 남자가 되고 남자는 여자가 되는 나이이다
마주보며 살아온 사이 상대방의 성격은 내성격이 되었고
서로 자리를 비우면 불편하고 불안한또 다른 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 흘기면서 가슴으로 이해한다
중년은 진정한 사랑을 가꾸어 갈줄 안다
중년은 아름답게 포기를 할줄도 안다
중년은 자기주위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
그래서 중년은 앞섬보다
한발 뒤에서 챙겨가는 나이이다
'까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곡예단 관람 뒤의 쓸쓸함 (0) | 2006.05.15 |
---|---|
너 닮은 자식 낳아 봐라 (0) | 2006.05.08 |
주말부부 (0) | 2006.03.18 |
응급실에서 (0) | 2006.02.04 |
이중성에 대하여 (0) | 2006.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