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누군가가 내 옷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면

행복한 까시 2009. 10. 30. 12:54

 얼마 전에 누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똑같은 옷 때문에 겪었던 재미있고 황당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었을 때 참으로 민망하고 당황스럽지요. 그 얼굴 화끈거리는 이야기를 풀어 볼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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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한 후 집 장만에 아이들 키우느라 옷 한 벌 변변하게 사 입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입을 만한 외출복 한 벌이 없었습니다. 때 마침 친구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워낙 옷이 없다 보니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지요. 이번에 결혼하는 그 친구는 40이 훨씬 넘은 늦은 결혼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웃기는 건 중학교 동창끼리 하는 결혼이었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결혼이라 결혼식장에 가면 분명 친구들이 많이 올 텐데, 옷이 초라하면 좀 그렇잖아요. 솔직히 친구들에게 기죽기 싫었어요. 이왕이면 멋진 옷을 사 입고 우아하게 뽐내고도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한참 고민 끝에 남편 몰래 옷을 사 입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남편한테 이야기 하면 사 입으라고 하겠지만 괜히 내 옷만 사 입는 것 같아 미안해서 이야기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동네에서 언니 언니하며 따르는 동생과 함께 옷을 사러 갔습니다.


 옷가게에 가서 옷을 고르다가 보니 맘에 드는 옷이 있었습니다. 검은 계통의 체크무늬 바지가 마음에 들어 고르고 나니 바쳐 입을 폴라 티가 또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쑥색의 티를 골라 입으니 바지와 잘 어울렸습니다. 골라놓은 옷을 입으니 동생이

“ 야 언니 근사하다. 결혼식에 가서 신부보다 더 예쁘면 어떡하지?”

하며 놀려 댔습니다.


 실제로 거울로 내가 보아도 너무 근사했습니다. 모처럼 옷을 사 입으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옷을 계산하고 나서 보니 매장에 모델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회사의 모델이 내가 산 옷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속으로 얼마나 흡족했던지,

‘역시 나는 보는 눈이 있어. 패션을 보는 감각이 있다고. 암 내가 누군데, 안목은 나를 따를 자가 없지’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자만심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날았지요.


 그리고 집에 와서 딸들 앞에서도 패션쇼를 했습니다.

“엄마 예쁘지. 그래도 내가 왕년에는 한 몸매 했다. 지금은 이렇게 아줌마가 되었지만, 매력 포인트 24였어. 그 때는 옷가게 가면 작은 옷이 없어서 옷을 사 입을 수 없을 정도였어. 웃지 마. 진짜라니까. 너 거짓말 같으면 너희 외삼촌한테 물어봐”

하며 옷을 몇 번이고 입었다 벗었다 하였지요. 정말 오랜 만에 옷을 사서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좋던 기분과 자만심은 친구 결혼식 날 버려진 휴지 조각처럼 처절히 구겨졌습니다. 결혼식 전날은 친구들 만날 기쁨에, 결혼식 날 옷 자랑에 들떠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일찌감치 일어나 화장도 하고, 머리도 한 시간 이상 손질하고, 며칠 전에 산 옷에 무엇을 바쳐 입을 까 고민 했습니다.

 ‘검은 외투를 바쳐 입을까? 아니면 체크무늬 옷을 바쳐 입을까? 결혼식 날 검은색 옷을 입고 가면 이상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검은 색이 나을 것 같아 검은색 옷을 골랐습니다.


 체크 바지에 쑥색 폴 라티 검은색 반코트를 입고 결혼식장으로 갔습니다. 기분 좋게 결혼식장에 도착해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나도 잘 모르는 신부 친구 중에 글쎄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친구가 있는 게 아니에요. 정말 맞추어 입은 것과 같이 옷이 똑같았습니다. 체크무늬 바지에 쑥색 폴라 티, 검은색 외투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허벅지도 꼬집어보았습니다. 아픈 걸 보니 꿈은 아니더군요. 그 순간 얼굴이 빨개지면서 바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 친구를 피해 다니며 결혼식을 보고 있는데 그 친구는 자꾸 내 옆으로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긴 그 쪽도 신부 친구이다 보니 신부 옆에 있고 싶겠지요. 신부와 이야기 좀 나누려고 하면 자꾸 내 옆으로 와서 내 신경을 건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옷을 똑같이 입고도 아무렇지도 않은지 자꾸 내 옆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결혼사진을 찍을 때도 자꾸 내 옆으로 왔습니다. 그 친구가 맨 앞줄로 가면 나는 피해서 옷이 나오지 않게 맨 뒷줄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사진사 아저씨가

“ 어이 거기 맨 앞줄에 체크 바지에 검은 외투 입은 분 뒤로 가세요. 키 크신 분이 앞을 막으면 안 되잖아요.”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 친구가 맨 뒷줄로 가자 나는 또 맨 앞줄로 나와 숨박꼭지 하듯 피해 다녔습니다. 만약에 똑같은 옷을 입고 나란히 섰다고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웃기는지. 그 뿐만이 아닙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점심을 먹을 때도 나는 그 친구를 피해 다녔습니다. 그 친구가 밥을 다 먹고 난 뒤에 혼자 밥을 먹었습니다. 정말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피로연을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도저히 이 커플룩으로는 피로연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가겠다고 하니까 또 그 똑같은 옷을 입은 친구가 와서 길을 알려주겠다고 쫓아 나왔습니다. 정말 싫은데 왜 따라 다니는지 말도 못하고 속만 부글부글 끓였습니다.


 그런데 또 신부를 보니 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글쎄 신부의 외투가 아침에 내가 입으려고 고민하던 체크무늬 외투와 똑같은 게 아니겠습니다. 저 그날 졸도하는 줄 알았습니다. 어찌 이리 오늘은 가혹한 일만 있는지, 정말이지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날 결혼식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네요. 옷에 신경 쓰랴, 그 똑같은 옷 입은 친구 피해 다니느라 진짜 피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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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의 이야기를 듣는데, 웃음이 나와서 혼났습니다. 누나는 당황스러웠지만 듣는 사람은 웃기기만 합니다. 여러분들도 결혼식에 가실 때에는 모델이 입고 입는 옷 절대로 사 입지 마세요. 모델이 입은 옷은 다른 사람들이 입을 확률이 높잖아요. 이렇게 해서 결혼식 옷 사건을 일단락되었어요. 누나는 지금도 체크무늬 바지, 쑥색 폴라, 검은 외투만 생각하면 멀미가 난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발견한 경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