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어머니가 커피를 마시는 이유

행복한 까시 2009. 10. 12. 12:45

 커피 한잔을 마신다. 혀끝으로 쌉쌀하고 쓴맛이 스며들어 온다. 프리마의 부드러운 맛과 설탕의 단맛도 그 뒤를 이어 혀끝을 자극하고 있다. 언제부터 커피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입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조용히 나의 삶 일부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다. 하루라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무엇인가를 빼먹은 것처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허전하기만 하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지루하기 그지없고, 고문 그 자체이다. 가끔 한약을 먹을 때 커피를 먹지 말라고 하면, 그 커피의 유혹을 견디기가 참 힘들다.


 커피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때의 일이다. 아버지가 어디서 커피를 구해 오셨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아물거리기는 하지만 아마도 시장에서 사 오신 것 같다. 유리병에 든 갈색의 가루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나머지 유리병 한 개에는 프리마라고 하는 분유 비슷한 것이 들어 있었다. 커피가 도착하자마자 우리 가족은 시식을 하기로 했다. 양은 냄비에 물을 담아 화롯불에 올려졌다. 한참을 있으니 화로에서 열기가 전해져 양은 냄비 가장자리에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양은 냄비는 열 전달이 잘 되어 음식물을 넣어 가열하면 금방 끓는다. 이래서 성질이 급한 사람은 양은 냄비라고 하는가 보다. 변변한 커피 잔이 없던 시절 스테인리스 공기에 커피를 담아 마셨다. 그 스테인리스 공기는 때로는 술잔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음료를 마시는 잔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아버지부터 어머니 그리고 우리들 차례대로 한잔씩 마셨다. 그런데 어머니는 커피 맛이 쓰다며 입에도 대시지 않았다.


 쓴맛과 달콤한 맛이 조화된 그때의 커피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처음 마시는 것이라 기억에 더 오래 남은 것 같다. 커피는 맛있게 먹었으나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저녁나절에 먹은 커피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커피가 조금 진하기도 했고, 처음 커피를 마신 것이라 카페인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된 것 이었다. 밤이 되어 자리에 누웠으나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처음에는 잠이 오지 않는 이유도 몰랐다. 잠이 오지 않아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보니 잠이 오지 않는 것이 바로 커피 때문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제야 커피란 놈이 무서운 놈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은 것도 있지만, 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어른들의 말 때문에 커피를 마실 수가 없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 커피에 대한 유혹은 여전히 존재했다.



 대학 생활과 동시에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하던 시절 대학은 모든 것에 대한 해방이었다. 술, 담배, 옷차림, 시간, 헤어스타일 등등 고등학교 때 억압되었던 것이 한순간에 풀리는 순간 모든 질서가 파괴되는 느낌이었다. 이 때부터 자판기 커피는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도서관에서 공부나 리포트를 쓰다가 지루하면 맑은 공기를 쏘이며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곤 했다. 그 때의 커피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젊음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마시는 커피가 오래 기억이 남는 듯하다. 술을 못하는 나는 친구나 선배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서서히 친분을 쌓아나갔다. 이것이 커피가 주는 부수적인 혜택이었다.


 커피 생각만 해도 따스함과 행복감이 밀려온다. 회사에 출근해서 아침에 한잔 마시는 커피야말로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는 에너지이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커피 한잔을 마셔야 직성이 풀리고 일도 잘 된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무언가를 빼먹은 것처럼 허전하다. 이것은 분명 중독임에 틀림이 없다. 중독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을 보면 커피에는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마력이 숨어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커피를 좋아하셨다. 커피를 좋아하셔서 기회만 있다면 하루에 열 잔이라도 드시는 분이다. 반면에 어머니는 커피라면 입에도 대시지 않는다. 한번은 시골집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 내 커피도 한 잔 타다오.”

 “ 어머니도 커피를 드세요?”

하며 의아하게 여쭈었다.

 “ 며칠 전에 날이 하도 추워서 따끈한 커피 한잔 마셔 보았단다.”

 “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허리가 아프지 않더구나.”

 “ 그래서 요즘은 매일 마신단다. 꼭 커피가 약 같구나.”

하시며 커피를 드셨다.


 고향집에 가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 마음이 포근해 진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무겁기만 하다. 커피가 좋아져서 드시는 것이 아니라 허리의 통증을 잊기 위해 커피를 드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가라앉는 것이다. 커피가 어머니에게는 약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면 신기하게도 허리의 통증이 줄어든다고 하셨다. 아마도 커피가 신경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통증을 잠시 잊게 해 주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아파온다. 우리는 입이 즐겁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데, 어머니는 아픔을 잊기 위해 드신다고 하니 우울하기만 하다.


 요즘은 커피를 마시면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머니의 아픈 허리를 생각나는 것이다. 우리 형제들을 키우기 위해 너무 일을 많이 하셔서 생긴 병이다.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 뒤에는 어머니 꼬부라진 허리가 떠오른다. 오늘도 아침에 어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을 드셨을 것이다. 잠시 허리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내 마음의 통증은 왜 더해만 가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