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추석 때 아들 노릇하시는 어머니

행복한 까시 2009. 10. 4. 18:45

 

 나에게는 외갓집이란 것이 없었다. 외갓집이 없어서 어린시절 외가에 갈 일도 없었다. 외갓집이 없다는 것이 나에게도 슬픈 일이지만 어머니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픈 일이었다. 외가가 없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외조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외삼촌마저도 없으니 외가가 없는 것이다. 오직 이모 한분만 계신다. 그 이모 한 분이 어머니의 친정 식구인 것이다. 그나마 이모 한분이라도 계신다는 것을 어머니에게는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어린시절 친구들이 외갓집에 간다고 자랑을 하면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사람이란 참으로 묘하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고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은 크게 마련이다. 외갓집에 가보지는 못하고, 어머니의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다. 어머니는 가끔 외갓집 이야기를 간간히 들려 주셨다. 그러면 머리 속으로만 상상해야 했다. 그래서 언제나 어머니의 고향에 대해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사람은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궁금증이 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갓집은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원도에 있었다. 말하자면 그곳이 어머니의 고향이다. 공교롭게도 어머니의 고향은 어머니의 외가가 있는 동네였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고향은 외할머니의 고향이기도 한 것이다. 아마도 외할아버지 친척이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외할머니의 친척이 많은 곳에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내가 어머니의 고향이자 나의 외갓집이 있는 동네를 처음 방문한 때는 대학생 때로 기억이 된다. 그 때는 어머니가 사시던 고향을 방문한다는 생각에 많이 들떠 있었다. 외가가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뿌리에 대해 나름대로 호기심도 있었고, 궁금하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즐거운 마음으로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시며 설명해 주기 바쁘셨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어머니의 고향 동네를 방문했는데, 동네 사람들이나 친지들이 다정다감하고  반갑게 맞아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그리 낯설지 않고, 친숙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의 먼 친척뻘 되시는 오라버니들과 함께 어머니의 어린시절 이야기로 밤새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셨다. 옆에서 듣는 나도 또한 옛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 때의 감동을 글로 표현해서 방송국에 어머니의 고향이라는 제목으로 수필을 써서 전파를 탄 적도 있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어머니도 명절 때에는 꼭 고향으로 성묘를 가신다. 아들 노릇하러 성묘를 하러 가시는 것이다. 성묘를 떠나시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가시면서 어머니의 고향을 설명해 주시고,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시느라 바쁘시다.


 딸이라는 이유로 성묘 갈 때에 음식도 제대로 챙기시지도 못한다. 사과, 배, 명태포, 술, 향이 전부이다. 아버지와 우리들이 떡도 좀 챙기라고 말씀드려도 챙기시지 않는다. 아마도 시댁에 미안해서 챙기시지도 못하는 것 같다. 챙기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시댁이라는 굴레 때문에 눈치가 보여서 아주 간단히 챙겨 성묫길에 오르시는 것이다.   


 성묫길에는 우리의 형제 세 명도 꼭 데리고 가신다. 아들이 없으셨던 외할아버지께 아들을 셋이나 두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으신 것 같다. 그동안 어머니는 명절 때 얼마나 부모님께 성묘를 하고 싶으셨을까 하는 마음을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간다. 사실 어머니는 이모와 단둘 밖에 없으셔서 항상 제사를 못 지내는 것을 평생 안타깝게 여기셨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모도 매번 성묘를 오신다. 가끔 시간이 맞으면 이모를 만나서 회포를 풀기도 하신다.

 

 성묘를 다녀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처음 어머니와 성묘를 왔을 때에는 외할아버지 묘에 쉽게 올라갔는데, 해가 가면 갈수록 아버지도 어머니도 산에 오르시는 것을 힘겨워하신다. 어머니는 몇 해 전에 허리를 다치신 이후로 더욱 힘들어하신다. 그렇게 힘들어 하시면서도 성묘를 다녀온 것이다. 아마 내년에는 성묘를 하러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성묘라는 행사를 강행한 것 같다. 매번 오실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하신다. 어머니가 못 오시면 없어질 부모님의 산소가 못내 안타까우신 것이다.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산을 오르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며 이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도 연세를 많이 드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은 예전에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과 교차되어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디로 가시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다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항상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젊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만 자리 잡고 있었는데, 세월이라는 놈이 늙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으로 데려다 놓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