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어머니와 금반지

행복한 까시 2015. 7. 21. 07:30

 

 

 

 어머니의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른 엄마들은 반지도 끼고, 손에 매니큐어도 칠했지만 어머니의 손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농사일로 손에 흙이 묻어 있거나, 아니면 부엌일로 늘 물이 묻어 있었다. 어머니의 손에 아무 것도 묻어 있지 않을 때는 오직 잠자는 시간뿐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어머니는 손에 장식을 하는 것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다. 아니 장식을 할 줄 모르는 엄마인지 알고 살았다.


 첫 직장을 다니다가 퇴사를 했다.

그 직장에서는 퇴사를 하면 선물을 해 주었다. 선물로는 영원히 잊지 말라는 의미로 반지를 해주었다. 그 당시에는 금은방에 반지를 맞추어 놓았다가 나중에 찾았다. 퇴사 하던 날 반지를 찾으러 금은방에 들렀다. 주인이 맞춰 놓았던 금반지를 건네주었다. 반지를 받아 손에 끼어 보았다. 딱 맞았다.


 반지를 끼고 보니 익숙하지 않고 어색했다.

그 순간 어머니의 손이 생각났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어머니의 손이 생각난 것이다. 반지를 뺐다. 주인아저씨께 반지를 바꿀 수 없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는지 알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 반지 대신 어머니께 드릴 반지를 고르겠다고 했다. 주인아저씨는 미소를 짓더니 그리하라고 했다.


 주인아저씨가 반지를 보여 주었다.

금반지에 큐빅 장식이 박혀 있었다. 빨간색 초록색 등의 작은 큐빅이 나란히 박혀 있었다. 적당히 눈대중으로 어머니의 손에 맞을 만한 것으로 골랐다.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평소에 반지도 끼고 싶지 않았는데, 어머니의 반지를 맞추니 기분이 좋아졌다. 태어나서 어머니께 값나가는 선물을 처음 해 보는 것 같다.


 며칠 후 고향에 내려 갔다.

회사를 그만 두었으니 며칠 쉬러 내려간 것이다. 퇴직금으로 부모님 용돈도 드렸다. 그리고 어머니께 반지를 드렸다. 반지를 보자 어머니의 얼굴이 환해지셨다.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을 거의 처음 본 것 같다. 늘 농사일과 시어머니 시집살이로 얼굴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사셨다.


 어머니도 여자이셨다.

반지를 낀 손, 매니큐어를 바른 손을 어머니도 갖고 싶으셨던 것이다. 늘 일을 하고, 살림살이에 치여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사신 것이다. 누군들 깨끗한 손을 갖고 싶지 않겠는가? 어머니도 물 한방을 묻지 않은 곱고 고운 흰 손을 갖고 싶으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반지를 외출 할 때만 끼셨다.

손수건으로 싸서 장롱 깊숙이 넣어두셨다가 외출할 때 꺼내서 끼셨다. 왜 미리 반지를 해드리지 못했을까 후회스러웠다. 직장을 잡고서도 내 것 사기에 바빠서 어머니의 반지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아니 어머니는 반지 같은 것을 싫어하시는 줄만 알았다. 지금도 그 반지는 어머니의 장롱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요즘은 그 반지의 존재를 잊었는지 자주 끼지 않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