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언제나 짧은 아버지와의 대화

행복한 까시 2015. 9. 10. 07:30

 

 

 고향집으로 가끔 전화를 건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매번 바뀐다. 아버지, 어머니, 형수, 형 번갈아 가며 전화를 받는다. 예전에 아버지는 외출을 많이 하셔서 아버지가 전화를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부쩍 많이 늘었다. 주로 아버지가 받으신다. 그만큼 아버지가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계신다는 이야기로 해석 할 수도 있다.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아버지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내 귀에 들려온다.

 “아버지, 저에요. 둘째에요.”

나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나면 아버지는 반가운 목소리로 변하신다.

 “별일 없지? 애들도 잘 있고, 애미도 잘 있지?

 “네, 아버지 집에 별일 없죠? 요즘 바쁘지 않으세요.”

 “그래 별일 없다. 아직 회사냐? 밥은 먹었냐?”

 “예, 밥은 먹었어요. 아직 퇴근 못했어요.”

 “어서 일 하고 들어가라.”


 여기까지 대화가 끝이다.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이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아버지가 예전에 비해 많이 자상해 지셨다. 나도 예전보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많아진 것이다. 예전에는 아버지와의 대화가 거의 없었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면 바로 어머니에게 넘겨졌다. 지금도 말이 끊기면 자연스럽게 전화가 어머니에게로 넘어 간다.


 어린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무서운 기억 밖에 없다.

좋은 기억이라면 내가 학교에서 성적을 잘 받아왔을 때 흐뭇해하시던 모습, 그리고 외출했다가 오시면서 먹을 것 사가지고 오시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 외에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화내는 기억 밖에 없었다. 그래서 늘 아버지를 피해 다녔다. 아버지가 방에 계시면 다른 방으로 옮겨 다녔고, 아버지가 집에 계시면 밖으로 나가고, 아버지가 밖에 계시면 집으로 들어와 할머니 옆에 있었다. 그래도 할머니와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에게 있어 든든한 우산이었다.


 집에 있으면 늘 불안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늘 가슴을 졸이며 살았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성격이 내성적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내 주장을 펼치지 못하고 살아왔다. 남들이 강하게 주장하면 그냥 따르는 식의 성격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주위의 눈치를 너무나도 살피는 식으로 변한 것이다. 지금의 내 보습을 보면 물 같은 성격으로 네모난 그릇에 담기면 네모나게 변하고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글게 변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찌 보면 아주 직장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여도 가슴 속에는 깊은 곳에는 이게 아니라며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사실 무서운 아버지를 밑에서 아버지 비위를 맞추고 살다가 보니 웬만큼 까다로운 상사도 잘 맞추고 지낸다. 여러 가지 유형의 상사를 잘 맞추는 편이다. 상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빨리 감지해 내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일을 해 왔다.


 성장해서 나도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여전히 어려운 존재이다. 거리를 좁혀 보려고 애를 써도 잘 되지 않는다. 이제는 아버지도 자식들과의 관계를 좁히려고 노력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거리가 있다. 예전보다는 좁혀졌지만 아직도 거리는 있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짧은 것을 보면 말이다. 특히 아버지와 단 둘이 있을 때에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시간이 참으로 힘든 것이다. 텔레비전이라도 있으면 시간이 잘 가지만,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그 시간이 꽤 길게 느껴진다.


 아버지도 이제는 많이 늙으셨다.

아버지도 대화가 필요하실 것이다. 좀더 대화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아버지와의 선입견을 버리고 좀더 많은 대화를 해야겠다. 그것이 아버지가 가장 원하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