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아버지의 마른 팔뚝이 서글픈 하루

행복한 까시 2016. 1. 12. 07:30

 

 

 며칠전에 고향집에 들러 아버지를 보았다.

고향 친구가 어머니 상을 당해 조문을 하고 잠시 들린 것이었다. 고향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한분 두분 이승을 떠나실  때마다 서글픈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끔 집에서 늦은 밤이나 아침 일찍 전화가 오면 불길한 생각이 든다.

 

 집에 머무는 동안 오랜만에 아버지의 손과 팔뚝을 보았다.

뼈만 앙상했다. 피부에는 살이 하나도 없고 얇은 가죽만 남아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아직 그렇게 마를 연세가 아닌데, 유난히 마르셨다. 순간 이제 아버지가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사람들은 돌아가실 때 많이 마르신다. 예전 할머니들이 돌아가실 때 많이 마르셨던 모습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아버지는 건강하시니까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더 오래 사실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난 후부터는 아버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잔정을 많이 주는 반면에 아버지는 굵은 정을 많이 주는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사랑을 많이 주는 것 같이 보여도 실제로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특히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나서 느낀 어머니와 아버지의 자식사랑의 크기에 대한 결론이다.

 

 우리 아버지는 나름대로 대접을 많이 받고 자라신 것 같다.

왜냐하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이 귀한 큰집으로 양자를 들어 가셨기 때문이다. 손이 귀한 집으로 양자를 들어갔으니 보나마나 귀하게 크신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 같이 살던 할머니는 실제로는 아버지의 큰어머니셨다. 아버지는 태어 난지 3일 만에 양자로 들어가셨다고 한다. 큰어머니가 친어머니 인줄 알고 자랐으며 나중에 커서 겨우 알게 되셨다고 한다. 나도 우리 할머니가 친할머니가 아니란 걸 알고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는데, 아버지는 분명 엄청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아버지는 양자로 와서 혼자 자랐다.

그래서 성격이 외동아들처럼 아버지 자신만 아는 경향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렇다. 예를 들면 우리 가족이 논이나 밭에 나가서 일할 경우 힘이 드시면 괜히 역정을 많이 내신다. 그러면 나머지 기족들은 더 힘들어 진다. 일하는 것도 힘든데, 아버지 역정까지 받아드리며 일하려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웃으면서 일해도 힘들 판인데 말이다. 아무튼 이런 아버지 때문에 힘든 것은 곁에 계신 어머니이다.

 

 아버지는 귀공자 같은 스타일이다.

내가 보기에도 농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전형적인 공무원 스타일이다. 사무직 일을 무척 좋아하셨다. 따라서 동네 이장을 15년 넘게 하셨다. 이장일이 힘든 것도 많지만 즐기면서 하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고급스러운 간식을 무척 좋아하신다. 지금도 초콜릿, 사탕, 과자류, 오징어, 땅콩 등 맛난 간식을 좋아하시고, 커피도 무척 좋아하신다. 가끔 농담조로 나는 우리 아버지는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셔야 하는데 하면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젊었을 때는 최신 가전제품도 동네에서 가장 먼저 사 오시는 분이었다.

라디오며 카세트 등을 말이다. 카세트가 처음 나왔을 때 카세트를 사와서 노래를 많이 들으시고, 동네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녹음하여 들으시기도 하였다. 아버지 덕분에 옛날 가요를 거의 모르는 것이 없게 되었다. 그 시절 많이 듣던 노래는 이미자, 나훈아, 김정구, 현인 등 원로 가수들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또한 시골 5일장에 가시면 먹을 것을 많이 사오시고, 살림에 쓰는 가제도구, 우리들 옷가지 등을 사 오시는 자상한 분이기도 하다.

 

 어릴 때 아버지는 너무 무서운 분이었다.

아마 엄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집에서는 늘 아버지를 피해 다녔다. 아버지가 방에 계시면 우리 형제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하나 둘씩 다른 방으로 옮겨 다녔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아버지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많다.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 보니 성격이 많이 내성적으로 변한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다시 외향적인 성격이 나오는 것 같다. 그래도 엄한 아버지 덕분에 성격이 바르게 형성된 것 같기도 하다.

 

 그 시대의 아버지가 대부분 그렇듯이 아버지는 남자가 부엌일 하시는 것을 무척 싫어하신다.

우리 형제들이 부엌에 얼씬거리거나 음식에 손을 대면 얼굴부터 찌푸리신다. 그 습관 때문에 집사람의 부엌일을 많이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서 자란 집사람이 내내 못마땅해 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요즘의 아버지는 많이 힘들고 외롭다.

각종 보도에서 보면 가족들에게 소외당하고, 돈버는 기계로 전락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아버지도 외로우실 것이다. 어릴 적 습관 때문에 아버지 옆에서 이야기 해주는 자식들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시대의 아버지 자화상을 생각해 보며, 우리 아버지를 다시 한번 회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