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이면 회사를 떠나게 된다. 퇴직금을 정산하기위해 근무년수를 계산해 보니 거의 14년을 근무하였다. 적지 않은 세월이다. 그래도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입사할 때가 엊그제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일에만 매달려 살다가 보니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지나가 버린 것 같다. 처음에 매각 발표가 났을 때에는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리하는데 급급하고, 마무리에 신경쓰다가 보니 한달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매각 발표가 난후 가장 먼저 한 것이 나자신과 동료들 이직문제를 가장 우선시 하였다. 모든 신경과 역량을 오로지 이직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나도 몇군데 면접을 보았고, 동료들도 면접을 보도록 보이지 않게 지원을 하였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시간이 나면 직원들 처우문제에 대해서 회사측과 줄다리기를 하였다. 실제 경영진들은 나타나지도 않고, 대리인이 내세워 진행하였다. 진행과정이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속시원한 진행도 없고, 그렇다고 직원들이 원하는 위로금도 없고, 몇푼의 위로금만이 우리손에 들어올 것 같다. 그리 많이 요구한 것도 아닌데, 너무 허탈하기만 하다. 이렇게 내팽개처지는 힘없는 직원들만 불쌍한 것이다. 이렇게 직장 알아보랴, 위로금문제, 인수인계 문제를 해결하다가 보니 한 달이 지나갔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내가 회사를 떠나야 할 일만이 남은 것이다. 그동안 미운정 고운정이 다들었는데, 떠나야 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에 무언인지는 몰라도 무거운 것이 나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회사가 매각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퇴직 위로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도 씁쓸할 뿐이다. 게다가 우리 회사를 인수하는 회사측에서 인수팀 관계자들이 와서 그동안 우리들이 연구해 놓은 자료를 마음대로 보고 가져가는데, 가슴이 너무 쓰리고 아팠다. 그동안 연구원들이 힘들게 연구한 자료들이 단돈 몇푼에 넘어간다는 사실들이 우리 연구원들을 더욱 슬프게 한다.
어제는 인수팀에서는 개인 사물을 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동안 정들었던 내가 쓰던 책상, 내가 쓰던 회사 기물들과 이별을 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까지 근무할 것인지를 알려 달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제 정말로 떠나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지난 한 달 동안 그래도 나름대로 정리를 해서 큰 혼란은 없다. 마음속에도 이미 정리가 되어 미련도 후회도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미련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동안 회사에 미운정과 고운정이 너무 많이 들은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회사는 처음 시작할 때 입사해서 선배들과 같이 시스템을 구축하고, 체계를 잡아왔기 때문에 애착이 너무 많다. 남들은 바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물불 안가리고 오로지 일만 하였다. 정말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하였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그동안 업무도 많이 배우고, 능력도 많이 키웠다고 나나름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선배들도 모두 떠나 보내고 나만 남은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내가 말단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최고 고참이 된 것이다. 회사를 떠나려고 생각하니 그때의 선배들이 많이 생각나고 그립기도 하다. 이제는 이회사 생활이 추억속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나중에 동료들을 만나면 지금의 현실이 한때의 추억으로 얘깃거리로 남을 것이다.
지금은 힘들고 지쳤지만 이것이 나중에 지나고 나면 아마 내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내 인생을 구성하는 한 가지 재료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동안 걱정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블로거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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