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시 이야기

화투에 대한 추억

행복한 까시 2007. 4. 27. 06:51
 

 과거에는 사람들이 화투놀이는 많이 하지만 화투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화투놀이를 했다는 것을 입에 담지 못했다. 마치 성인들이 사랑이라는 행위는 누구나 하지만 드러내놓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화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상영되고, 연구논문으로 활용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은 참 다양화되었다고 생각해 본다. 이런 다양성이 사회의 발전을 이루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나는 외국의 특이한 연구자들을 동경했다. 아나콘다라는 거대한 뱀을 연구한다든지, 우리 일상생활과는 무관할 것 같은 특정한 동식물을 연구함으로써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나 원리를 알아내고, 이러한 기초적인 연구들이 서양사회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화투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이야기가 샛길로 빠져나갔는데, 어쨌든 어린시절 나도 화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내개인적으로는 화투놀이 자체보다는 화투에 그려진 그림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림책이 귀했던 그시절, 그때는 거의 그림책이 없었다. 그림책을 보고 싶으면 형이나 누나들의 초등 1, 2학년 교과서가 전부였다. 그 교과서를 보는 것으로 만족했던 나에게 화투는 아주 멋진 그림책이었던 것이었다. 화투의 그림 중에서도 꽃이 화려하게 들어간 것을 좋아했고, 그림에 검은색이 많이 들어간 일송, 흑싸리, 똥, 비 등은 싫어하는 그림이었다. 아마도 어린시절 원색쪽을 좋아하는 아동심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11월을 상징하는 똥은 오동나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어린시절에는 진짜 똥에서 유래된 것이줄 알고 끔직히 싫어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멋진 화투를 어른들은 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철저히 못하게 막았다. 화투를 만지기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께서 외출하면 이불을 깔아 놓고 화투를 쳤다. 화투를 교대로치면서 한사람은 문앞에 앉아 아버지가 돌아오실 것에 대비해서 망을 보아야했다. 옛날에는 창호지 가운데 밖을 보기위해 달아놓은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유리가 있었다. 그 유리에 눈을 대고 아버지가 오시는 길목을 지켜야 했다. 그 시절의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실 때 헛기침을 하셨다. 이 헛기침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아버지가 갖는 권위의 상징이었고, 집에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방문해 있으면 남성이 들어가니 놀라지 말라는 일종의 노크같은 역할을 하였던 것이었다. 화투를 치다가 아버지가 멀리서 오시는 것을 발견하면 여유있게 화투를 정리하여 치우지만 시간적여유가 없을 때에는 화투가 들어있는 이불째로 재빠르게 개어서 이불 사이에 자연스럽게 넣어두었다. 이렇게 넣어 두었다가 아버지가 다시 외출하면 다시 화투를 정리하였는데, 만일 화투를 정리할 기회가 없거나 아버지께서 낮잠을 주무시려고 이불을 펴다가 화투가 쏟아져 나오면 그야말로 혼쭐이 났다.    


 화투에는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겨울철 날씨가 추울 때 실내오락으로는 그만이다. 따라서 화투는 겨울에 많이 쳤다. 농사짓는 시골에서는 겨울철이 농한기라 시간이 많이 있기 때문에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고 화투를 쳤고, 우리들은 길고 긴 겨울 방학을 보내기 위해 화투를 친 것이다. 화투에는 여러 가지 게임이 많다. 이런 게임을 보면서 누가 화투를 개발했는지 무릎이 절로 쳐진다. 우선 화투는 4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8이란 숫자는 약수가 많다. 즉 여러 가지 숫자로 나누어 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짝맞추기 게임이라는 민화투를 칠때 두사람, 세사람, 네사람, 다섯사람까지 칠 수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게임종류도 무척이나 많다. 어원은 잘 모르겠지만 ‘고스톱’ ‘뻥’ ‘육백’ ‘집고땡’ ‘월맞추기’ ‘오광떼기’ 등 여러 가지 게임이 있는데, 이런 게임들을 하면 두뇌개발 및 수학에서 연산이나 암산을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화투놀이는 가족들간의 오락으로 활용할만 하다. 중고등 학교 시절 명절 때는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이 둘러 않아 화투를 치면 서먹했던 아버지와 대화도 쉽게 풀어갈 수도 있고, 특히 평상시 못 보았던 아버지 어머니의 무너진 권위도 볼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두 분다 화투 놀이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요즘도 가끔가면 어린아이처럼 어머니한테 화투를 치자고 조르기도 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우리 딸들도 화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시골집에 가면 화투를 잘 가지고 논다. 나는 그냥 놔둔다. 못하게 하면 호기심이 더 많아지고, 더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못하게 하는 것보다 오히려 부모와 같이 게임을 하면서 화투의 단점을 교육하는 것이 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다져진 화투 실력은 나중에 회사에 들어가서 실력발휘를 하였다. 어렸을 때 화투놀이를 많이 해서 그런지 성인이되어서는 별로 흥미가 없어졌다. 게임의 원리를 다 파악하니까 재미가 없어진 것이다. 그 시절 집들이 행사나 수련회, 연수를 가면 고스톱은 직장인들의 단골메뉴 였다. 신입사원 시절만 해도 화투치는 것을 즐겨하지 않았고, 외모도 화투를 잘 칠 것 같이 생기지 않아 선배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어느날 고스톱을 치는 맴버가 부족하다고 나보고 치자고 하였다. 잘 못친다고하니 앉아서 광이나 팔라고 하였다. 선배들이 시키니 할 수 없이 고스톱을 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따라 화투가 너무 잘되었다. 어린시절에 다져진 실력에다 운까지 더하니 감히 말릴자가 없었다. 그 뒤로는 고스톱 잘 친다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화투판만 벌어지면 화투를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배들이 가만히 놔두지를 않는 것이었다. 치기 싫어도 그 분위게에 휩쓸려 쳐야만 했다. 그리고 화투를 치면 거의 밤을 새면서 치기 때문에 잠이 많던 아는 고역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게임같은 것에 싫증을 빨리내는 나는 두시간이 한계였다. 이렇게 일년을 고생을 하다가 나중에는 돈을 잃어주면서 옛날의 실력은 그냥 운이라고 둘러대고 화투판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이것이 화투의 가장 나쁜 점이다. 한번 그 세계에 발을 들여 놓으면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게속하다가 보면 습관적으로 하게 되고, 더 돈을 딸 수 있을 것이라는 욕망에 더 큰 판을 찾아 헤메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화투를 쳐보면 결국 화투판 밖에 있는 사람들만 돈을 벌게 되는 것 같다. 장소를 제공해 준사람, 먹을 것을 사서 나르는 사람, 화투치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 돈을 빌려준 사람만이 돈을 따게 되어 있다. 그래서 화투판을 접으면 돈을 땄다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투의 중독성이나 돈을 따겠다는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 넣는 것이다. 이런 것들 때문에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화투놀이를 못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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