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풍경

풍경-아름다운 장독대

행복한 까시 2007. 5. 3. 21:02
 

 얼마전에 동생의 딸인 조카가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동생집에서 하룻밤을 머무른 적이 있다. 동생집에 가더라도 옆에 누나가 살기 때문에 거의 누나네 집에서 묵었기 때문에 동생집에는 잠깐 들리기만 하고 하룻밤도 머무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조카의 첫돌을 맞이하여 이번에는 동생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려고 작정하고 방문한 것이었다. 여러 가족들과 즐겁게 저녁을 마치고 동생집으로 향했다. 


 동생집에 가서 컴퓨터를 쓸 일이 있어 컴퓨터를 켜니 바탕화면에 장독대 사진이 있었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고향집의 장독대 사진이었다. 항아리를 덮는 소래기마다 눈이 한 뼘 이상씩 쌓여 있다. 소래기 모양대로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이 너무 앙증 맞은 모습으로 사진속에 들어 있다. 눈을 맞은 장독대 사진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사진이었을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나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고향집 풍경이라 더 아름답게 보였을 것이다.


 장독대는 고향집 뒤곁에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다. 장독대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주 큰 간장 항아리에서 아주 작은 고추장 항아리까지 자유 분방하게 장독대에 앉아 있다. 장독대에는 오래 묵은 간장과 고추장도 있고, 된장, 막장 등이 있다. 장독대 아래에는 지하실을 만들어 겨울에 김장 김치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김장도 항아리에 보관하기 때문에 장독대는 위나 아래 모두 항아리로 가득차 있다. 


 장독대는 우리 음식의 근본이되는 양념이 있는 곳이다. 따라서 어머니들에게는 소중한 장소이고, 종교처럼 아주 신성하게 모셔지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집안에 치성드릴 일이 있을 때에도 장독대 앞에서 정안수(정화수)를 떠 놓고 빌고 또 빌었다. 또한 가을에 고사떡을 만들어도 장독대에 먼저 올려 놓았고, 이웃집에서 떡을 가져와도 장독대에다 얹어 놓았다가 먹곤 했다. 이처럼 장독대는 어머니들이 애지중지하는 장소였다. 따라서 어린시절 우리들에게는 장독대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부정을 탄다는 이유가 장독대에 못가게하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장독대가 모두 깨지기 쉬운 질그릇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사내아이들이 장독을 깰까봐 가지 못하게 하는 진정한 이유였을 것이다. 실제로 어린시절 사내아이들이 장난치다 장독을 많이 깨뜨리기도 하였다.  


 장독대에는 신기한 것도 참 많았다. 특히 간장 담을 때가 가장 신기했다. 장은 할머니와 어머니 두분이 담으셨는데 날씨 좋은 날 택일해서 담근다. 소금을 깨끗한 물에 녹여서 끓인 물에 곰팡이가 덕지덕지 붙은 메주를 띄운다. 메주를 띄우고, 검정 숫, 대추, 고추, 참깨를 함께 넣었다. 그리고 항아리 둘레에는 부정타지 말라는 표시로 새끼줄로 둘러 놓았다. 이렇게 간장 담는 모습이 신기하여 어린시절에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장담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하였다. 장 담을 때 검정 숫을 넣는 이유가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였고, 고추를 넣는 이유는 항균작용으로 다른 나쁜 미생물에 오염되지 않기 위한 조상들이 지혜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장독대에는 맛있는 반찬이 만들어지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오랜시간에 걸쳐 밑반찬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장독대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반찬이 장아치이다. 어머니는 고추장에 장아치를 많이 박았다. 오이, 무우, 더덕, 북어포, 마늘쫑, 마늘 등이 장아치 재료로 이용되었다. 장아치는 거의 도시락 반찬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짭짤하면서도 개운하고, 담백한 장아치 맛을 생각하니 입에 침이 고인다. 그중에서도 더덕 장아치와 북어포 장아치가 가장 맛이 있었다. 더덕맛과 어우러진 장아치 맛은 좋아서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면 도시락을 금새 비워 낼 수 있었다.


 도회지 삶은 이런 장독의 존재도 잊혀지게 하는 것 같다. 간장, 된장, 고추장들도 모두 돈만 들고 마트나 시장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멀지 않아 이런 장독대 풍경도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힘들고 어렵게 장을 담그겠는가? 나 자신부터 편리함에 길들여지고, 빠름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장독대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것이다. 오늘 장독대를 보면서 느림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오랫동안의 숙성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간장, 고추장, 된장은 기다림과 조상들의 지혜로부터 얻어지는 음식 재료이다. 느림을 상징하는 장독대 풍경을 보면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과 대비되는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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