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풍경

꽃과 추억 한 스푼

행복한 까시 2007. 5. 25. 11:24
 

 어렸을 때부터 나는 꽃을 좋아했다. 머슴애는 꽃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관념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지배하고 있을 때 말이다. 특히 시골에서는 이러한 보수적인 관념들이 더 강했다. 이러한 주위의 눈초리를 피해서 겉으로는 꽃을 좋아하지 않는 척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꽃을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 집 주위의 화단은 내가 도맡아서 키웠다. 부모님들은 농사일에 바쁘셔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런 하찮은 꽃에는 관심이 없으셨는지 내가 키우는 꽃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도 두지 않으셨고, 모른 체 하셨다.


 내가 키우는 꽃밭의 꽃도 관심이 있지만 들에 난 꽃이나 집 주위에 피어있는 꽃과 관련해서 어린 시절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이런 꽃들을 볼 때면 옛 추억이 아련히 떠올라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지곤 한다.


 

 이야기 하나 - 메꽃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흔하게 피어있는 꽃이다. 이 식물은 아마도 고구마의 사촌뻘은 되는 것 같다. 고구마가 가끔 꽃을 피면 이 메꽃하고 아주 유사하다. 꽃 모양이 과거에 스피커와 비슷하여 메꽃을 스피커처럼 생각하여 노래도 부르고, 마이크 흉내를 내며 놀았다. 그리고 변변한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 메 뿌리를 캐서 물에 씻어먹기도 하였다.

 

 꽃은 그렇고, 메꽃을 보면 미화 생각이 난다. 그 애는 아버지 친구 딸래미 였는데, 집이 가난하여 여기저기 떠돌다가 잠시 우리 마을에 살았던 것 같다. 그 때는 친구도 변변히 없어 그 애와 많이 놀았다. 늘 마을을 다니며, 꽃도 따고, 메 뿌리도 캐 먹으며 놀았다. 또는 그 애의 주문대로 소꿉놀이도 하며 놀았다. 그래서 메꽃을 보며 그 애가 생각난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 세월이라 사실은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세월도 오래 되었고, 아주 어렸을 때라 얼굴에 대한 기억은 희미할 뿐이다. 단지 메꽃하면 미화라는 등식이 성립될 뿐이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야기 둘 - 민들레


 길모퉁이, 담장, 집 주변에 흔히 피어 있었다. 아마도 홀씨들이 바람에 날리기 때문에 가끔 보면 지붕위에도 피어 있었다. 순백의 민들레꽃도 예쁘고, 노란색의 민들레꽃도 참 예쁘다. 그리고 꽃이 진 후에 만들어진 홀씨도 또한 아름답다. 언젠가 딸들에게 홀씨를 불어서 날리는 것을 보여 줬더니 민들레 홀씨만 보면 불어서 날리느라 정신이 없다. 그리고 민들레 꽃대로 풀피리도 불을 수도 있다. 버들피리 보다 소리는 탁하지만 그런대로 들어줄 만하다.

 

  민들레의 끈질긴 생명력은 아마도 홀씨에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 드라마에서 본 기억이 난다.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우창춘 박사님이 일본 아이들한테 많은 괴롭힘을 당하며 괴로워 하니 우장춘 박사 어머니께서 하시던 말씀 한대목이 기억이 난다. “길가의 민들레는 사람들한테 짓밟혀서 아름다운 꽃을 핀단다.”라며 우장춘 박사님을 위로해 주시던 어머니 말씀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이야기 셋 - 작약


 고향집 뒤뜰에 작약이 한 무더기 있다. 해마다 분홍색의 꽃을 피운다. 봄만 되면 어김없이 빨간 싹이 나와서 유월 정도가 되면 꽃을 피운다. 그래서 봄만 되면 뒤뜰에 나아가 작약 새싹이 나오는 것을 관찰하고, 또한 난초 싹이 올라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봄을 맞았다. 이런 싹들이 나오면 직감적으로 봄이 오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이 작약은 아마도 아버지가 심어 놓으신 것 같다. 그래서 다른 꽃에는 관심이 별로 없으셔도 이 꽃에는 관심이 많으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여자 선생님이 담임을 하셨는데, 나를 아주 많이 예뻐해 주셨다. 그래서 무언가는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이 작약 꽃을 잘라다가 교실 화병에 꽂아 놓았다. 선생님께서 아주 좋아하시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작약 꽃을 잘랐다고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았다. 표시 나지 않게 솎아가며 잘랐어도 아버지는 금방 알아차리셨다. 그래서 작약 꽃을 보면 그때 담임선생님이 생각난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아주 오래전 사고로 돌아가셨다. 

 

 

 이야기 넷 - 산나리


 산나리는 개울가에 많이 피어있다. 가을에 아주 빨간색의 꽃을 피운다. 이 꽃을 집에 키우고 싶어 개울가에서 꽃을 캐가지고 왔다. 옆집에 사는 누나와 함께 캐가지고 와서 각자의 꽃밭에 심었다. 그 누나는 우리 누나와 아주 절친한 친구사이로 지금도 가끔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누나는 그 꽃을 잘도 키워서 아름다운 꽃을 많이 피웠다. 나는 성질이 급하고, 꽃을 크게 키우고 싶은 욕심에 냇가에 가서 큰놈의 산나리를 보면 집에 있는 것은 뽑아버리고, 새로 갖다가 심었다.


 이렇게 몇 년을 지나고 나니 옆집의 산나리는 아주 굵어져 꽃을 탐스럽게 피웠는데, 나는 계속 캐내고 다시 심고 하니 늘 꽃이 초라하게 피었다. 그래서 그때 큰 것을 깨달았다. 작은 것이라도 오랫동안 키우면 커진다는 진리를 말이다. 요즘도 산나리 꽃을 보면 옆집 누나와 그 집 마당에 소담스럽게 피어나던 산나리 꽃이 생각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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