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풍경

풍경-물고기 기르기

행복한 까시 2007. 4. 10. 22:24
 

 어린시절 고향 냇가에는 물고기가 흔했다. 냇가에 나가면 미꾸라지, 송사리, 피라미, 민물새우, 물방개, 구구락지, 붕어 등이 물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물고기가 흔하니 물이 있는 곳에는 물고기가 많았다. 작은 도랑에도 물고기가 많았고, 소나기가 내리는 길바닥에도 미꾸라지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어린시절에는 길바닥에 있는 미꾸라지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아이들은 믿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비가 내릴 때 빗물에 의해 물이 흐르면 미꾸라지가 물의 흐름을 따라 거슬러 길까지 와서 비가 그치면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것이었다. 이처럼 어린 시절에는 밖에만 나가면 쉽게 물고기를 볼 수가 있었다.


 이렇게 물고기가 흔했어도 어린시절에는 물고기를 집에서 기르지 못해 안달이 났었다. 어떻게 하면 집에서 물고기를 기를까 궁리도 많이 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물고기를 골라서 기르기로 했다. 미꾸라지는 생긴 것이 징그러워서 제일 싫어했다. 지금이야 추어탕이 고급음식이지만 그때는 생긴 것이 재수 없는 물고기였기 때문에 잡았다가도 버렸다. 그 다음 송사리는 좀 멍청해 보여서 싫어했고, 구구락지 또한 못생긴 것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고기였고, 송사리보다도 더 멍청해서 호감이 가지 않았다. 이 멍청하다는 기준은 어린시절 아이들이 세운 나름대로의 기준이었다. 즉 쉽게 잡히느냐, 잡히지 않느냐가 멍청함의 기준이 되었다.


 내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물고기는 피라미였다. 반짝이는 은빛 비늘을 가진 피라미는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거기다가 보는 각도에 따라 하늘색 빛과 핑크빛을 나타내는 피라미는 더욱 멋이 있었다. 그런데 피라미는 잡기가 너무 힘들었다. 얼마나 빨리 도망가는지 족대(손잡이가 있는 그물의 종류)를 가지고는 잡기가 어려웠다. 어항이나 낚시로만 잡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잡은 피라미를 키우고 싶어서 집으로 갖고 오면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첫 번째는 어머니가 싫어하셨다. 물고기를 집에서 키우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머니 몰래 집으로 가지고 와서 뒤안 깊숙한 곳에 땅을 파고 물을 부어서 피라미를 넣어 두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이틀 정도 지나면 물고기가 다 죽었다.


 피라미가 성질이 고약해서 빨리 죽는 물고기이는 하다. 하지만 물고기를 잡아다 놓으면 왜 죽는지에 대해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냇가에 있는 물고기는 잘도 사는데, 집안에 잡아다 놓은 물고기는 왜 죽는 것일까? 이렇게 고민 하면서도 계속 물고기를 잡아다가 집에다 놓고 기르려고 시도를 했다. 물통에다 키워보기도 하고, 땅을 파고 물이 땅속으로 스미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닐을 깔아 보기도 하였지만 물고기는 계속 죽었다. 고기가 죽으면 죽을수록 의문은 더해만 갔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이유는 산소 부족이었다. 즉 물이 고여 있으면 산소가 부족해져서 물고기가 죽는 것이었다. 그러나 냇가나 도랑의 물은 계속 흐르며 움직이기 때문에 공기 중의 산소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어 물고기가 살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피라미를 키우는 일을 처절하게 실패를 했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물고기는 붕어였다. 고기도 큼직하고, 넓적하기 때문에 피라미만은 못하지만 다른 물고기 보다는 좋아했었다. 그리고 붕어는 피라미 보다는 생존력이 강하고, 성질도 온순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잡기가 쉽다는 것이었다. 집에다 잡아다 놓으면 그래도 며칠은 더 살아있었다. 그래도 집에다 잡아다 놓으면 붕어도 역시 산소가 모자라 죽기는 마찬가지였다. 붕어나 피라미가 죽으면 집에 있던 닭들이 포식하는 날이 되었다.  


 하루는 논에 갔다가 오다가 도랑에서 작은 잉어를 보았다. 물도 아주 적어 잡기도 쉬웠다. 그 잉어는 과수원집 정원에서 흘러나온 잉어새끼인 것 같았다. 어른 집으로 달려가서 페인트 통을 가져 왔다. 조심스럽게 잡아서 페인트 깡통에 넣어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내가 좋아하는 물고기라 아주 애지중지 키웠다. 그 때는 산소가 부족하면 죽는다는 것을 터득하여 물을 매일 갈아주었다. 그랬더니 그 잉어새끼는 바로 죽지 않았다. 학교에 갔다 집에 돌아오면 잉어부터 보았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갈아 주었다. 그 정성에 감동했는지 물고기는 한 열흘정도 잘 자랐다. 그런데 한 열흘정도 지난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그 잉어새끼가 밖으로 튀어나와 죽어 있었다. 너무나 아까웠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키웠건만 물고기가 죽어 버린 것이다.


 그 후로는 후회를 많이 했다. 집에 두고 싶은 나의 욕심에 물고기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들었다. 그 후로는 물고기 기르는 것을 포기했다. 물고기를 잡기는 했어도 키우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은 수족관도 흔하고 물고기 먹이도 많아서 물고기를 키우기도 쉽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물고기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이 파괴되어 냇가의 물고기도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는 자연에서도 물고기를 키울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렸다. 냇가에서 노닐던 민물고기들이 한 페이지의 추억으로만 간직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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