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풍경

풍경-소가 있는 시골마을

행복한 까시 2006. 7. 19. 18:06
 

 어린시절 시골 마을에는 집집마다 소 한 마리 없는 집은 거의 없었다. 소가 많았던 만큼 소를 키우는 이유도 다양했다. 가장 주된 이유는 주로 농사를 짓는 목적으로 키워졌다. 봄이 되면 논과 밭을 갈고, 초여름에는 모내기할 논을 똑바로 고르는 써레질을 위해서 소가 이용되었다. 또한 마차를 끌 때, 손수레를 끌 때도 소는 요긴하게 쓰여 졌다. 그리고 소의 또 다른 용도는 재산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소는 값이 많이 나가는 가축 중의 하나였다. 집에 큰 목돈이 필요할 때 소를 팔아서 자식들 장가나 시집갈 밑천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집에 농토를 장만 하거나, 가전제품을 장만할 때에도 소를 팔아서 돈을 만들었다. 이처럼 소는 시골 살림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목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따라서 지금 도회지의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것 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주인에게는 또 하나의 가족처럼 삶을 같이 하였다.


 이른 봄 농부들은 소를 몰고 밭을 갈러 나간다. 지게에 쟁기와 멍에를 얹고 한손으로는 소의 밧줄을 들고 소를 앞세우며 걸어간다. 이른 아침부터 밭을 갈려면 소와 씨름을 해야 한다. 소가 밭갈이에 숙련되었다면 그래도 밭갈이가 수월하다. 하지만 밭갈이를 해보지 않은 애송이 소라면 밭갈이는 무척 힘들다. 멀리서 밭갈이 하는 농부를 보면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이랴, 이랴, 워, 워,”를 계속 소리치며 밭가는 풍경이야 말로 한 폭의 그림 같다. 그렇지만 자세히 가서 보면 농부도 소두 땀에 흠뻑 젖어 있다. 농부는 소리를 많이 질러 목청이 쉬었고, 소도 힘에 겨워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그래도 소는 순한 동물이다. 힘들어도 힘든 내색을 별로 안한다. 그래서 성실하고 우직한 사람을 소에 비유하기도 한다. 밭갈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낙들은 고생한 소를 위해 특별식을 주었다. 소에게 특별식이란 것은 여물에 쌀겨를 좀 더 넣고, 콩 한 두 줌을 넣어주는 것이었다.


 겨우 내내 외양간에 있던 소는 봄이 되면서부터 주로 바깥에서 활동한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밖에는 풀이 많이 나서 소가 먹기에 좋은 풀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고향 마을에서는 강이 있었기 때문에 낮에는 주로 강에다 소를 매어 놓았다. 그러면 소는 하루 종일 여유롭게 강 둔치의 풀밭에서 풀을 뜯었다. 집집마다 강가에 소를 끌어다 여기저기 매 놓은 모습은 마치 대관령의 목장과 비슷한 풍경이다. 밧줄을 길게 하여 소들이 자유롭게 풀밭을 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해질 무렵에 동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소를 몰러 나갔다. 소를 몰러 나가면 소가 아는 체를 한다. 자세히 보면 소도 개만큼 영리한 것 같다. 주인의 가족을 알아보기도 하고, 주인집을 알아서 찾아 가기도 한다. 어떤 집은 소를 팔았는데, 밧줄을 끊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가끔은 있었다. 어쩌다가 날이 어둑어둑 해서 소를 몰러 가면 소가 나를 더욱 반긴다. 소는 덩치는 커도 날이 어두워지면 겁이 많을 많이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 초식동물의 본능인 것 같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마 중학교 시절의 방학 때인 것 같다. 그날도 저녁때가 되어 소를 몰러 나갔다. 시커먼 고무신에 머리는 새집을 지었고,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린 채로, 옷은 색이 다 바랜 허름한 옷을 입고 소를 몰러 나간 것이다. 그 때만 해도 교복을 입었기 때문에 집에서 입을 만한 옷이 거의 없었다. 이런 몰골을 하고 오는데, 나를 아주 귀여워 해주시던 우리 담임인 여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그때의 창피함이란 말할 수가 없었다. 아마 그 선생님은 그런 나의 모습을 대수롭지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지금은 잊었겠지만, 집에서 하던 몰골을 선생님한테 적나라하게 보여 준 그때의 그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강가에 소를 매는 것이 위험하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소가 물에 잠기는 일도 있었고, 물에 빠진 소를 마을 사람 여럿이서 구해 내기도 하였다. 소를 몰러 갔다가 개울물이 불어 개울을 건너오기가 어려울 때에는 소 밧줄에 매달려서 건너오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 위험한 일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예전의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을 강하게 키웠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은 방임해서 키웠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 모든 것들은 부모님들이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아이들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자신들이 알아서 독립적으로 강하게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무더운 여름철에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씩 소를 몰고 동네로 들어오는 모습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서산에 해가 걸려 오렌지 빛으로 태양이 빛날 때 소를 몰고 오는 소년, 소녀들의 모습은 흑백사진처럼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남의 소를 잘못 끌고 와서 아버지께 야단맞던 억울한 추억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고운 풍경이건 미운 풍경이건 간에 모두 아름다운 풍경임에 틀림없다. 지금도 고향 마을의 나이 드신 아버지들, 이제는 머리도 희어지고, 허리도 구부정해진 할아버지들은 어린 소년이었던 우리들을 대신하여 지는 태양을 뒤로 하고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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