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풍경

풍경-과수원집 정원

행복한 까시 2006. 6. 9. 08:22
 

 모든 동네마다 부자 집은 한두 집씩 꼭 있는 것 같다. 우리 동네에도 과수원을 하는 부자 집이 있었다. 왜 옛날의 부자들은 과수원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토지가 많으니까 이것저것 재배하다가 보니 과수원을 한 것 같다. 그 집은 모든 동네아이들에게 늘 동경의 대상이었고,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 부자 집은 동네의 맨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 요즘 도회지의 부자들처럼 산기슭에 기와집을 짓고 살았다. 그 집에서 내려다보면 동네 사람들의 모든 움직임을 볼 수가 있었다. 아마도 옛날에는 주로 소작을 주니까 사람들의 상황을 쉽게 살피기 위해서 높은 곳에 집을 지은 것 같다. 풍수지리를 모르는 내가 보아도 그 집은 명당자리인 것 같다.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니 말이다. 그 집은 넓었다. 안채에다가 행랑채도 아마 스무 칸은 족히 넘는 것 같다. 어른들 말에 의하면 시골 마을의 토지가 거의 그 집 것이라고 하였다. 토지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사는 집터까지도 그 집 소유가 많았다. 


 어린시절 특히 인상 깊은 것은 그 집 앞 마당에 있는 정원이었다. 정원에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고, 연못 한 귀퉁이에는 요즘의 멋있는 분재처럼 생긴 향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연못 가장자리는 계곡에서 계곡물이 잘 다듬어 놓은 정원석을 가져다가 멋지게 쌓아서 장식하였다. 그 돌 틈에는 철죽을 비롯하여, 수선화 같은 들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연못에는 수련을 심어 운치 있게 해 놓았고, 물속에는 황금색의 잉어와 붕어들을 키웠다. 어릴 시절 “왜 우리 집에는 이러한 정원이 없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많이 들었으며,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기도 하였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그 정원 또한 부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하여튼 다른 것은 몰라도 어린 시절 그 부자 집 정원은 나에게는 커다란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나중에 크면 나도 그런 정원을 갖겠다고 생각하였으나, 우리 아버지처럼 정원이 없는 집에서 살고 있다.


 그런 부자 집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드라마의 한편처럼 그 할아버지가 작은 마누라를 두고 서울로 가서 돈을 많이 써서 그 많던 토지도 많이 줄어들었다. 어린시절 그 집 딸은 서울에서 성장하여 얼굴도 하얗고 도회지 티가 많이 풍겼다. 그 처녀가 동네를 거닐면 동네 아이들이 힐끔거리며 처다 보곤 했다. 그래도 그 할머니는 시골에 남아 굳건히 집을 지켰다. 그 할머니는 그 당시에도 양반집 가문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한문도 많이 알고, 나름대로 동네에서는 지식인이었다. 어린시절 그 할머니가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아 흠집이 난 자두며, 복숭아를 주곤 했는데, 지금도 그 때의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아마 아이들은 먹을 것을 준 사람이 오래 기억이 남는 것 같다. 그 할머니에게는 하찮았던 과일 몇 개가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부자가 망해도 삼년은 간다는 말처럼, 그 집은 여전히 복숭아 과수원을 한다. 토지는 옛날 보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살만하다. 지금은 그 할아버지 아들이 집을 지키며 과수원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 가 보니 그 아름다운 정원의 연못도 없어졌다. 흙으로 메워져 넓어진 마당만이 옛날 정원의 흔적을 말해 주고 있다. 그 위에는 트랙터, 경운기, 각종 농기구 부품이 나뒹굴고 있다. 아름다운 기와집은 헐리고, 외국식으로 지은 양옥이 자리하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꿈꾸던 기와집에 아름다운 정원은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사라져 버렸다. 어린시절에 보았던 기억과 풍경만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 그 집 과수원에는 그 때 먹던 자두와 복숭아가 영글어 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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