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풍경

풍경-냇가는 아이들의 놀이터

행복한 까시 2006. 5. 17. 18:35
 

 우리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각 마을마다 내(천:川)가 있다. 크기에 따라서 강도 되고, 더 작으면 천(川)으로 불리는 냇가, 그보다 작으면 시내, 더 작으면 개울로 불려지는 물가가 있다. 큰 도시는 옆에 강을 끼고 있지만 시골의 작은 마을들은 대부분이 작은 냇물인 개울을 끼고 있다. 물고기와 물의 관계처럼 물은 우리 생활에서 없으면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냇물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것뿐만 아니라 어린시절 아이들의 놀이터였으며 어린시절 삶의 터전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갖가지 놀잇감을 제공해 주었다.


 이른 봄이 되면 머슴아들은 냇가에 있는 버들가지를 잘라서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며 놀았다. 버들피리 소리는 개울가에서 마을 전체로 퍼져나갔다. 여자애들은 개울가 가장자리에 난 달래라든가 쑥, 미나리를 뜯기도 했고, 냇가의 돌들을 이용하여 돌담을 쌓으며 소꿉놀이도 하였다. 쉽게 부서지는 돌을 이용하여 밥을 짓기도 하고, 냇가의 풀을 뜯어 찬을 만들어 놀았다. 그리고 개울가에 자라는 찔레 순을 꺽어 먹기도 하고,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에는 아카시아 꽃을 따서 화전도 해먹었다.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들은 겨우내 묵은 이불 빨래라든가 제법 큼직한 옷가지를 가지고 나와서 빨았다. 개울가의 빨래터 또한 동네의 소식을 주고받는 장소였다. 아주머니들의 수다로 종종 싸움도 일어났고, 좋은 소식이며, 나쁜 소식도 동네로 퍼져나가는 출발점이 되곤 했다.  


 여름이 되면 냇가는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개울물을 막아서 풀장을 만들고, 하루 종일 개울가에서 살았다. 어린시절에는 수영복도 없어 완전 벌거벗은 채로 개울가에서 놀았다. 지금아이들은 유치원만 다녀도 중요한 부분을 가리려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고추를 내놓고 수영을 했다. 개울가에 아이들이 없는 때는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시간뿐이었다. 늘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로 개울가는 시끄러웠다. 멱을 감다가 지치면 아이들은 송사리나 미꾸라지를 잡았고, 운이 좋으면 가재나 참게도 잡을 수가 있었다. 개울가에서 물놀이를 하면 쉽게 배가 고프다. 아마 움직이는 활동량이 많아서 그럼 것 같다. 이럴 때면 아이들은 슬금슬금 없어져 집에 가서 간식으로 쪄 놓은 감자를 먹고 오거나 미숫가루를 타먹고 왔다. 여름의 냇가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놀이터였다. 아버지들은 해가 넘어갈 무렵 논이나 밭에서 돌아와 개울에서 마음과 몸에 쌓인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어머니나 동네 처녀들은 저녁을 먹고 난 다음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개울에 나와 피로를 풀었다. 이때 얄궂은 동네 청년들은 몰래 숨어서 보기도 하였다고 훗날 무용담을 털어 놓기도 하였다.


 가을이 되면 개울가는 봄처럼 일상적인 놀이터로 변한다. 여자애들은 다시 나와서 소꿉놀이도 하고, 잠자리도 잡으며 놀고, 남자애들은 메뚜기, 방아깨비 등의 곤충을 잡으며 놀았다. 그리고 썩은 고목나무에서 버섯을 따거나 개울 뚝방의 밤나무에서 밤을 따기도 하였다. 이런 개울의 놀이터도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는 아이들이 했다. 한겨울이 되어 개울에 얼음이 얼면 아이들은 다시 몰려들었다.


 겨울에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썰매타기였다. 아버지나 형들이 만들어준 썰매를 가지고 개울에 몰려들어 신나게 썰매를 탔다. 그러다가 추워지면 개울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뿔을 쬐었다.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 있으면 모닥불의 연기는 왜 나만 따라다니는지 야속하기만 하였다. 매운 연기로 눈물이 나고, 얼굴이 검게 그을려도 따스한 불기운은 우리들을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운이 나쁜 날은 양말이나 바지에 불똥이 튀어 구멍이 나기도 하였다. 이렇게 구멍난 옷은 나중에 어마니들의 꾸중감이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겨울에도 놀다가 시장기가 돌면 겨울 간식인 고구마, 엿, 뻥튀기 등을 가져다가 먹곤 했다. 이렇게 개울가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고 해가 넘어갈 무렵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야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마을의 냇가는 한 폭의 풍경화처럼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개울가도 외로운 것 같다. 찾아오는 이가 없으니 말이다. 농촌마을에 아이들도 없고, 냇가도 생활하수, 농약 등으로 오염되어 물고기들도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단지 골짜기에서 아직도 흘러 내려오는 물만이 냇가라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다. 그래도 마음속에 있는 개울가의 풍경은 냇가에서 활기차게 놀던 동무들의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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