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풍경

양지말이 보이는 풍경

행복한 까시 2007. 6. 13. 10:05
 

 우리나라에서 양촌리란 지명은 시골 마을을 대표하는 고유 명사가 되어 버렸다. 전국을 여행하다가 보면 버스 정류장이나 마을을 표시하는 이정표에는 양촌이란 지명이 흔하게 눈에 띤다. 얼마 전에 막을 내린 MBC 드라마인 “田園日記”에서도 마을 이름이 양촌리였다. 실제 배경이 된 마을 이름이 양촌리였으며, 촬영장소도 김포의 양촌리로 알고 있다. 내가 살던 시골 마을도 양촌이란 지명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양촌리라는 지명에 애착과 정감을 느낀다. 길을 가다가 양촌리란 지명을 보면 가슴이 설레며 왠지 고향같다는 생각이 든다.


 양촌이란 지명은 대개 양지말이란 이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양지말은 양지마을의 준말로 햇볕이 잘 드는 마을을 일컫는다. 이와 반대되는 마을로는 응달말(음달말)로 불리며 한자로 음촌이라고 불린다. 양지말, 음달말 같은 좋은 우리마을 이름을 왜 한자어로 바꿔서 이상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우리말로 표기하는 것이 훨씬 정감 있고 좋은데 말이다. 마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렇게 한자어로 된 지명은 무수히 많다. “골짜기(골)”를 뜻하는 곡(谷)“이 들어간 지명도 많다. 뒤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후곡(後谷), 큰 골짜기라는 뜻의 대곡(大谷), 밤나무 골이라는 뜻의 율곡(栗谷) 등 수없이 많다. 양지말을 이야기 하다가 잠시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는데, 이러게 한자로 표기된 마을 이름은 어딘지 모르게 사무적이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양촌을 의미하는 양지말에는 마을 이름처럼 햇볕이 잘 든다. 그래서 특히 겨울철에 음달말에 비해 아주 따뜻하다. 보통 양지말이란 지명이 있는 곳에는 음달말이 따라 붙는다. 반대되는 개념으로 건넌 마을은 대부분이 음달말이다. 양지말의 북쪽에는 산이 막혀 있어 겨울에 북서풍을 막아준다. 그래서 겨울에 피부로 느끼는 감각이 따뜻한 하며, 실제로 바람이 적기 때문에 따뜻한 것이다. 반대로 음달말은 남쪽이 산으로 막혀 북서풍을 막아주지 못하고 겨우내 앞산의 눈이 녹지 않아 더 추운 느낌을 준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양지말과 음달말 가운데는 동서방향으로 냇가가 흐른다는 것이다. 냇가의 빨래터에는 양지말 음달말 아낙들이 모여서 빨래를 한다. 빨래터에 모여 마을 소식을 전하고, 세상 돌아가는 정보도 나눈다. 가끔은 남편이나 시어머니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낙들의 수다를 통해서 발산하기도 한다. 가끔 어머니를 따라서 냇가에 가서 물장난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엿듣는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못 알아듣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웬만한 말은 거의 이해할 수 있었다. 가끔 짓궂은 아낙들은 성에 대한 담론을 질펀하게 늘어놓기도 한다.


 그 냇가를 중심으로 마을을 구분하고, 그 두 마을은 항상 대립하며 지낸다. 대립이라는 것이 싸운다는 의미보다는 둘로 나누어 경기를 하거나 선의의 경쟁을 하며 지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역주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도 경쟁을 하고, 대립관계를 나타낸다. 그래도 마을끼리 경쟁을 한다는 것은 지루한 삶에 활기를 주고,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긍정적인 역할도 한다.


 양지말과 음달말 가운데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다. 마을의 경계선에 서 있는 나무 또한 두 마을을 소통하는 장소로 이용된다. 아이들이 모여서 놀기도 하고, 동네 어른들이 자리를 깔고 막걸리 파티도 하고, 지나가던 길손이 쉬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을에 완행버스가 들어오면서부터 버스 정류장으로 이용되었다. 버스정류장으로 이용되면서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들게 되었다. 타지로 버스를 타고 가는 친척이나 자식들을 배웅하기 위해서, 타지에서 들어오는 자식이나 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어머니를 마중하기 위해서 느티나무 아래는 늘 사람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가끔 사람들이 그립거나 무료한 사람들도 아무 목적 없이 나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심심함을 달래기도 하였다.


 양지말 뒷산에는 묘지가 유난히 많았다. 죽어서 따뜻한 곳에 묻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우리 할머니도 살아계실 때 늘 나죽으면 양지바른 곳에 묻어달라는 말씀을 입에 달고 다니셨다. 그 말이 주문이 되었는지 실제로 할머닌 묘지는 햇볕이 아주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다. 겨울에 양지바른 무덤에 가서 뒹굴며 놀던 생각도 난다. 묘지 앞이 유난히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과거에는 내가 사는 양지말이 최고인줄 알고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양지말이나 음지말이나 모두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지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따스함을 느꼈던 것도 아마 마을 이름에서 오는 영향이 더 컸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지금은 주택의 난방이 잘 되어 있어 그 따스함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단지 양지말이라는 정겨운 이름에 더 무게를 두고 싶을 뿐이다.

 


 

'내마음의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미소리가 들리는 여름 풍경  (0) 2007.08.06
시골 직행버스와 함께한 퇴근길  (0) 2007.06.27
꽃과 추억 한 스푼  (0) 2007.05.25
풍경-아름다운 장독대  (0) 2007.05.03
풍경-물고기 기르기  (0) 2007.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