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 이야기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것이 옳은 일 일까?

행복한 까시 2007. 7. 2. 22:29
 

 요즘 초등학교는 토요일날 한 달에 두 번만 쉬고 나머지는 학교에 간다. 직장인인 나는 주5일제로 작년부터 토요일날 쉬고 있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 풍경은 초등학교에 가는 큰딸만 바쁘다. 나와 어린이 집에 다니는 작은딸은 느긋하게 일어나 밥먹고, 커피마시고 여유를 부린다. 이런 모습을 가장 못마땅해 하는 것이 큰딸이다. 하긴 가족들이 모두 집에 있는데, 혼자 학교에 가려니 그마음 백번 이해가 간다. 남들 다 회사에 가는데, 연차나 회사의 행사로 인해 하루 쉴 때 얼마나 꿀맛 같은 휴가인지는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이것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심보인가 보다. 


 이래서 큰딸은 내가 쉬는 토요일이면 은근히 학교에 데려다 주기를 바라고 있다. 학교도 가까운데 자동차로 모셔다 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원래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자기 할일은 스스로 독립적으로 해야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지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마음이 동해 큰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단 걸어서 데려다 주는 조건으로 말이다. 아침 일찍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고, 밥을 먹고 큰딸을 데리고 나섰다.


 작은딸도 같이 가겠다고 따라 나선다. 작은딸은 다른 속셈이 있어 따라 나서는 것이다. 그 속셈은 언니를 바래다 준 후에 드러날 것이다. 셋이 손잡고 학교로 걸어간다. 큰 딸은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이렇게 즐거워 하는 것을 가끔 바래다 줄걸 하면서 약간의 후회도 해보았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아이를 강하게 키워야 하니까 그럴 필요 없다고 주장을 한다. 마음속에서 한쪽은 데려다 주어야 한다고, 한편은 데려다 줄 필요 없다고 계속 논쟁을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보니 학교에 다다랐다.


 학교에 가면서 보니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엄마, 아빠들이 제법 많다. 특히 아빠들이 눈에 많이 띈다. 차를 태워 오는 사람들도 있고, 가방까지 들어주는 엄마 아빠들도 있다. 우리 이웃에 사는 아빠는 갓난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세월이 많이 변하긴 했는가 보다. 우리 어린시절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부모는 거이 없었다. 아이가 아프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면 데려다 주지 않았다. 혹여 어머니가 학교에 데려다 주면 친구들로부터 놀림감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온다고 해도 오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부모들이 많이 데려다 주니 우리 딸도 그렇게 하고 싶었나 보다.


 큰딸을 정문으로 들여 보내고 작은 딸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걷기가 힘들다. 지금 시간이 초등학생들이 등교하는 피크 시간인 것 같다. 모두 가방을 메고, 한손에는 신발주머니를 든채 개미떼가 이동하듯이 학교로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작은딸을 편의점 앞에 오더니 아무 말없이 편의점 안으로 내손을 잡아 끈다. 작은딸 손에 이끌려 편의점 안으로 들어 같다. 딸기맛 젤리를 두 개 집어든다. 하나는 언니 몫이고, 하나는 자기 것이란다. 이것이 작은딸이 학교가는 언니를 따라 나선 원초적인 이유이다. 더 어렸을 때는 가게 앞에서 아무 말없이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것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먹을 것을 사달라는 의사 표시였다. 요즘은 조금 컸다고 내손을 잡아 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집으로 돌아 오면서도 내내 그 생각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바래다 주어야 하는 것인지, 바래다 주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사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고민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단순히 학교에 바래다 주는 행위 자체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을 너무 과잉보호 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그래도 내 생각은 아이들은 모든 일을 스스로 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그렇게 키울 예정이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어도 많이 절제를 하고 싶다. 가끔 한번씩만 도움을 주고, 가급적이면 모른체하고 싶다. 사랑은 속으로만 주고 겉으로는 아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아이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