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이야기

아내의 유방암 투병 일기

행복한 까시 2007. 10. 26. 14:04
 

 아내가 2년전에 유방암이 발병했다. 오늘 2년이 되어 서울 병원으로 검진하러 간다. 병원 가는 날은 하루종일 조바심이 난다. 아무 일이 없어야 하는데 하고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있다. 그동안 틈틈이 써 놓은 투병일기를 모아 보았다.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분들에게 이 글이 투병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올려본다.     



  #잔인한 시월

 

                                                                                               (2005년 10월 12일)


 시월은 날씨도 좋고 하늘도 참 맑다. 그러나 이번 시월에는 이러한 가을의 아름다움을 느낄 여가가 없는 것 같다. 10월초에 집사람이 건강검진 결과가 나쁘게 나왔기 때문이다. 유방부위가 이상하여 산부인과를 찾아가 보니 큰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사람과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특히 집사람은 나보다도 더 태연해 했다. 나는 속으로는 내심 조금 걱정은 되었다. 지방 모국립대학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집사람은 가볍게 생각했었다.


 10월 7일 결과가 나오는 날은 출장이 잡혀 있어 집사람 혼자 보냈다. 집사람이 혼자 가도 괜찮다고 하여 혼자 보냈다. 출장 가서 세미나를 듣는 동안에도 속으로는 은근히 조바심이 났다. 세미나 도중 궁금하여 전화를 하니 병원 가는 중이라고 집사람은 밝게 대답한다. 세시쯤 되어 세미나를 한참 듣고 있는데, 처제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처제는 나에게 전화를 잘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불길했다. 처제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 유방암이라고 한다. 전화를 바로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집사람에게 전화를 하니 울면서 말도 못하고 있다. 전화를 끊고 나도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꼭 드라마에서 강력한 사건이 전개되는 순간처럼 세상의 모든 화면이 정지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다급한 일이 일어났을 때 누구보다 침착한 나였는데, 이번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그날 따라 가을을 재촉하는 비는 처량하게 내렸다. 세미나도 듣지 않고 밖으로 나와 창 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시간 정도 있으니까 좀 정신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면서, 집사람을 혼자 보내는 것이 아니었는데, 하며 후회를 했다. 집사람은 얼마나 참담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그래도 내가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 이를 악 물었다.


 그러던 사이에 집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처제가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도록 예약을 해 놓았다는 것이었다. 나도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길 생각이었는데 용케도 예약을 잘 했다. 서울의 큰 병원은 진료 받는데도 많게는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았다. 빨리 집으로 와야하는데, 시간은 무척 더디게 간다. 그날 따라 교수님과 다른 동료들을 태우고 가서 혼자 먼저 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저녁을 먹는데도 꼭 모래알을 씹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런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암이 어느 정도이고 다른 장기에는 전이되지 않았는지 그것이 무척 궁금했다.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밤 10시가 되어서 집에 겨우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니 초상집 분위기이다. 마침 장모님도 와 계셨는데,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침울해 있었고, 얼굴들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딸들만 즐겁게 뛰놀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니 눈물이 나려고 하였다. 가장 체면 때문에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그 다음날도 출근하는 날이라 출근을 했다. 출근을 했지만 일이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유방암 관련 자료만 열심히 찾았다. 자료를 찾으니 수술만 잘하면 완치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 있었다. 집사람에게 이 사실을 말해 주며 전화로 안심을 시켰다. 먼저 작은누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수술을 하게 되면 작은누나의 도움이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은누나도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나중에 들어보니 작은누나가 많이 울었다고 한다. 오후에는 어머니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부모님도 많은 충격을 받으신 것 같다. 오후가 되니 소식이 전해져 전화에 불이 난다. 진료가 10월10일 월요일날 있었기 때문에 입원할 준비를 했다. 회사에 갔다가 오니 그래도 집사람이 차분하게 입원준비를 했다. 큰딸 학원이며, 아이들 약이며, 당분간 큰딸이 결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 정리 등 바쁘게 움직인 것 같다. 일요일에는 가족 모두가 피난 보따리를 싸듯이 짐을 싸들고 서울에 있는 처제내 집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일요일을 보내고, 월요일날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갔다. 지방 국립대에서 받은 검사결과를 가지고 갔다. 큰 병원이라 주차도 힘들고, 절차도 복잡하다. 모든 시스템이 전산으로 깔끔하게 돌아간다. 나이드신 어른들은 도대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예약이 2시 40분이었는데, 세시가 되어서야 진료를 받았다. 진료를 받고 나니 역시 암이라고 한다. 그래도 희망적인 소식은 수술하면 괜찮다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집사람이 마음이 놓이고 안정이 되는가 보다. 나의 기분도 많이 나아졌다. 이번 주 토요일에 입원을 하고 다음주 월요일에 수술 날짜가 잡혔다. 이렇게 정신없이 며칠을 보내고 나니 오늘은 맥이 쫙 빠진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회사 일이 바빠서 학교에도 못나가 오늘은 학교 일까지 보고 왔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니 좀 정신이 든다.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처제내 집에서 난민생활을 하고 있다. 수술이 끝나고 집사람이 퇴원을 해야 집으로 돌아올 것 같다. 나만 회사 때문에 홀로 집을 지키고 있다. 



 #병원에서

 

                                                                                                                 (2005년 10월 21일)


최근에 집사람 때문에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병원에 가니 아픈 사람들도 너무나 많다. 그동안 이렇게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잊고 산 것 같다. 나 같은 경우 병원에 가서 맹장수술 한 것이 전부였다. 집사람의 경우는 아이를 낳기 위해 수술한 일이 두 번 있었다. 그 때도 너무 아파했는데, 이번 수술은 많이 걱정되었다. 집사람이 유난히 다른 사람들보다도 아픔을 참지 못한다. 흔히 농담으로 엄살쟁이라고 많이 불렀는데, 아마 사람마다 아픔을 잘 참는 체질이 있고, 반대로 아픔을 잘 참지 못하는 체질이 있는 것 같다.


 입원한지 이틀이 되어서야 수술을 했다. 집사람을 수술실로 들여보내는데, 마음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수술하는 동안에 병실을 혼자 남아서 지키는데, 시간이 무척 더디게 흘러간다. 세 시간, 네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조바심이 나서 어찌할지를 모르겠다. 네 시간 정도면 수술이 끝난다고 하는데, 오래 걸리는 것을 보면 임파선 쪽으로 전이가 된 것 같다. 초조함과 지루한 시간을 무려 다섯 시간 반이나 지나고 나니 집사람이 병실로 왔다. 마취 후유증과 수술부위의 통증으로 집사람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하였다. 그 광경은 참혹스럽다. 아이 둘을 낳을 때와 똑 같다. 그래도 그때는 아이를 낳는다는 기쁨으로 참을 수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나도 참담하다. 수술을 하고도 정확한 결과는 알 수가 없다. 답답하기만 하다. 의사가 아침저녁으로 회진을 돌고 가지만 수술이 잘 되었다고만 할 뿐 아무 말이 없다. 수술 부위의 조직검사 결과를 보아야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수술하고 병실을 지키고 있다가 보니 며칠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래도 집사람은 많이 회복되어 어느 정도 정상을 찾아가고, 우리 가족들의 기분도 많이 나아졌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도 많은 걱정을 끼치는 것 같다. 특히 부모님들은 우리가 미안할 정도로 걱정을 많이 하신다. 양쪽 부모님들도 속이 많이 타서 요즈음은 얼굴이 많이 수척해 지셨다. 요즈음은 의술이 좋아서 조기에 발견하면 암이 완치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많이 놀란다. 나 역시도 많이 놀랐으니 말이다. 새삼 건강의 중요성을 많이 느낀다. 건강이 좋지 않으면 자신이 제일 힘들고, 그 다음은 옆에서 바라보는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힘들다. 새삼 건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만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를 다시 한번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평탄하게 살아왔던 내 인생의 고비이라고도 생각하고, 주위의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한번쯤 돌아보고 살라는 일종의 경고 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우리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있다. 나는 회사일 때문에 지방에 있고, 집사람은 서울의 병원에 있고, 우리 딸들은 일산의 이모 집에 있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작은놈이 많이 보채는 것 같다. 그저께도 전화를 하니 전화를 받으면서 울먹울먹 한다. 그래서 어제 오늘은 전화도 하지 않았다. 큰놈도 큰놈이지만 작은 놈이 많이 안쓰럽다. 이번 주말에 가서는 아이들은 집으로 데려 오려고 한다. 집에 오면 좀 나아질 것이다. 어서 빨리 집사람이 건강을 회복해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왜 미리 알지 못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 온다.

 

 

 #절망과 희망

 

                                                                                                                 (2005년 10월 28일)


 이번 10월은 절망과 희망이 수시로 교차하는 달이었다. 어떤 날은 절망으로 밤을 새운 날이 있었고, 어떤 날은 희망으로 좋아서 하루를 보낸 날도 있었다. 다시 말하면 천국과 지옥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촉각을 세우며, 의사의 말 한마디가 영향력이 이렇게 큰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면 의사라는 직업도 참 힘든 직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의사가 연봉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 조직 검사를 했을 때에도 유방에 피지가 뭉쳐 있을 것이라는 동네 산부인과 의사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조직검사 결과가 암이라고 밝혀졌을 때 처음으로 절망을 했다. 그 때는 수술하면 괜찮겠지 하며 스스로 안위도 하고, 집사람에게도 위로도 하고 안심도 시켰다. 집사람도 그때 까지는 수술만 잘하면 나아질 것 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수술 후에도 그런대로 좋은 기분을 유지 했다. 수술 후 의사가 회진을 돌면서 암이 임파선까지 많이 전이 되었다는 소리에 또 한번 절망을 했다. 그런데 그 절망 또한 작은 것에 불과 했다.


 조직검사 중간 결과가 나왔을 때는 최악의 절망이었다. 유방암 3기라는 결과가 나왔고, 그 암 조직이 양성이라면 항암치료를 할 수 있는데 만일 음성으로 나온다면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집사람과 나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과연 집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절망감이 밀려들어왔다. 너무 엄청난 일이라 양쪽 집 부모님께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괜히 알려 드려야 도움도 안 되고, 걱정만 더 끼칠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집사람과 처제, 나만이 알고 있었다. 그날 밤은 도대체 잠이 오지 않았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린 딸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암의 공포에 가슴 졸이고 있는 집사람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고통이었다. 암이란 것이 육체적인 고통과 함께 정신적인 고통 두 가지가 사람들을 무척 힘들게 하는 것 같다. 그런 집사람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는 피가 마르는 것과 같이 고통스러웠다.


 어제서야 최종 결과가 나왔다. 그래도 결과가 희망적으로 나와서 한시름을 놀 수가 있었다. 다행이도 암 조직은 양성으로 나와 항암치료를 할 수가 있다고 한다. 집사람도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천길 벼랑 끝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느낌이라고 한다. 그래도 집사람이 약간이나마 희망을 가지고 있으니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모든 병이 그렇듯이 희망이 가장 좋은 약인 것 같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만 갖는다면 절반은 병을 극복한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의사가 당신을 죽을 것이라고 한다면 진짜로 죽을 수도 있다. 이렇듯 환자들에게 절망과 희망은 중요한 것이다. 


 결국 나을 수 있다는 강한 희망만이 병을 이기고 고칠 수 있다. 그리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절망은 병을 악화시키는 아주 나쁜 요소이다. 병으로 고통 받는 모든 환자들에게 나을 수 있다는 강한 희망이 가장 좋은 약이라는 것을 전해주고 싶다.



 #동고동락

 

                                                                                                                 (2005년 11월 25일)


 집사람 수술 후 한 동안은 마음이 좀 가벼웠는데 요즈음 다시 가라앉는다. 항암주사라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모양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잘 견디는 사람들도 있다고는 하는데, 우리 집사람은 영 아닌 것 같다. 고통 정도가 수술할 때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 같다. 주사를 맞고 오는 날부터 한 열흘간은 몸도 못 가눌 정도로 힘들어한다. 가장 힘든 것은 구토인데, 뱃속의 내장이 모두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운을 다 빼앗아가기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어한다. 힘이 없어서 말조차 제대로 못할 때가 많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잠도 거의 한숨도 못 잔다. 매일 밤마다 잠을 설치는 것이 다반사이다. 잠 못 이루는 것도 부작용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머리가 많이 빠져서 머리도 밀었다. 머리가 빠지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머리는 나중에 다시 나면 되니 말이다. 고통스러워하는 집사람을 보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든다. 집사람은 못 먹는데, 나만 밥을 먹어서 미안한데, 그렇다고 안 먹을 수도 없다. 먹고 살자고 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자니 목이 메여 밥이 안 넘어간다. 집사람이 밥을 조금이라도 먹는 날은 그나마 기분 좋게 밥을 먹는데, 못 먹는 날은 나도 밥이 안 넘어 간다. 집사람은 못 자는데, 나 혼자만 잘 자는 것 같아 미안하다. 요즈음은 회사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간다. 힘들게 있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저녁 약속이 있어 가더라도 하나도 재미가 없다. 따라서 약속도 일부러 피하고 있다. 나만 밖에서 맛있는 것을 먹을 수도 없고, 먹는 것이 하나도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즐거운 것도 괴로운 것도 없는 사람처럼 무표정하고, 무덤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될 수 있으면 사람들에게 내색을 하지 않으려 해도 마음대로 잘 안 된다. 그래서 요즘 블로그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바쁜 일도 있었지만 집사람이 괴로워하는데, 블로그에 들어오는 것조차 미안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집사람과 동고동락하며 살고 있다. 집사람이 밥을 먹으면 나도 즐겁게 밥을 먹고, 집사람이 잠을 잘 자면 나도 편안하게 잠을 자고, 집사람 마음이 밝으면 나도 밝아지고, 집사람이 고통스러워하면 나도 고통스럽다. 바보 같지만 이렇게 살고 있다. 아니 남들이 바보라고 해도 좋다.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께도 미안하다. 매번 우울한 글만 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회색빛이라 밝은 글이 써지지 않는다. 아무튼 집사람이 치료를 다 받을 때까지는 집사람과 동고동락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응급실에서

 

                                                                                                                     (2006년 2월 4일)


 한 열흘 전에 응급실에서 하루를 지낸 있었던 적이 있었다. 응급실에는 작은 놈이 감기가 아주 심해서 잠시 간적이 있었고, 한번은 친구가 술을 많이 먹고 전신이 마비되어 가본 적이 있다. 이 두 번은 잠깐 갔었고, 작은 병원이라 응급실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큰 병원의 응급실이라 많은 것을 경험 했다.


 그 날은 집사람이 다섯 번째 항암치료 받는 날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날은 회사의 업무계획 브리핑이 있는 날이라 집사람을 누나에게 부탁하고, 나는 본사로 출근을 했다. 다행이도 브리핑이 일찍 끝나 나오면서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누나는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로 주사쇼크가 있어 응급실에 있으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말을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 나가는 것같이 맥이 탁 풀렸다. 항암주사를 못 맞으면 어떻게 되는 건지 조바심이 났다. 다음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부랴부랴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에 도착해 보니 다행이도 집사람은 주사 쇼크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상태였다.


 상황을 들어보니 주사를 조금 맞았는데, 온몸에 알러지가 생기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근육이 마비되는 일종의 부작용인 주사쇼크였다. 다행이도 아주 신속하게 응급처치를 해서 화를 면한 것 같다. 누나가 많이 놀랐는지 아무 말 없이 울고 앉아 있다. 얼마나 상황이 힘들었으면 울까 생각하니 누나에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맨 처음 주사 맞을 때도 누나가 갔는데, 그때도 누나가 많이 고생한 것 같다. 내가 같이 가지 못한 날만 꼭 힘든 상황이 발생하는 것 같다. 상황이 답답하여 응급실 담당 의사에게 물어 보니 일단 지켜보자고 한다. 6시간을 경과하여 아무 이상이 없으면 퇴원하라고 한다.


 다행이도 집사람의 상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회복되었다. 누나와 나는 계속 마사지와 팔다리를 주물러 혈액 순환이 잘 되도록 도왔다. 어느 정도 회복 된 것 같아서 누나는 먼저 보내고 집사람과 단둘이만 응급실에 남았다. 집사람이 회복이 어느 정도 되니 주위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꼭 난민 수용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응급실 안에도 발 디딜 틈도 없이 환자로 꽉 차 있고, 복도에도 환자가 꽉 차있다. 환자들도 다 위급한 환자들이다. 꼭 허준 드라마에서 환자들이 대문밖에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큰 병원이라 대부분 중증 환자들이다. 피를 토하는 사람들, 복수가 가득 찬 사람들, 의식이 불분명한 사람들, 아픈 가족 때문에 울고 있는 사람들, 그 중에는 의사도 포기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으니, 멀쩡한 사람도 아픈 느낌이 든다. 거기에다 공기는 탁하여 머리도 아파 왔다.


 아주 절박하게 아픈 가운데도 가족들의 사랑이 많이 보인다. 아플 때에는 가족들의 사랑이 많은 힘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힘들고 아플 때에는 가족 밖에 없다고 하는가 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우자들이 옆에 있었고,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들의 경우에는 어머니나 누나들이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경우에는 자식들이 지키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정성스럽게 간호 하는 모습을 보며, 모두 빨리 건강을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절박한 가운데도 여기저기서 음식을 먹는다. 하긴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니 먹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음식 냄새가 섞여 머리가 아프다. 집사람도 점심을 못 먹었으니 무언가를 먹여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무엇을 먹여야 할지 모르겠다. 집사람이 좋아하는 딸기를 먹겠냐고 하니까 먹는다고 한다. 지하 슈퍼에 가서 딸기와 떡을 사왔다. 우리도 그 가운데서 음식을 꾸역꾸역 먹었다. 목에 잘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억지로 먹었다. 사람들은 아파서 난리치는 상황에서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좀 모순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우선 환자를 먹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마음속에 있었다.


 급실에서 시계만 쳐다보고 있으니 하루가 무척이나 지루 하다. 오후 9시가 되어 담당의사에게 물어 보니 이제 집으로 가도 좋은데, 그래도 불안하면 여기서 자고 내일 가라고 한다. 집사람은 좀 불안한가 보다. 나 역시 불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응급실이 싫기도 하다. 한참 고민한 후 병원 근처에 있는 누나네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병원 밖을 나오니 상쾌한 공기에 금방 정신이 드는 것 같다. 이렇게 하여 그때의 응급실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다행이도 집사람은 주사쇼크에서 벗어나 하루하루를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얼마 후면 병원에 또 가야 하는데 이번에는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을지 내심 걱정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금도 응급실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빨리 입원실을 잡아서 치료를 했으면 좋겠고, 또한 빨리 건강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건강을 잘 챙기고 지켜서 병원신세를 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무리 하고 싶다.

 

 

 #주말부부

 

                                                                                                                  (2006년 3월 18일)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간다. 2006년을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분기가 다지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아내가 투병 생활을 시작한 지도 벌써 반년이란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그 동안 집사람이 가장 많이 고생을 했고, 가족 모두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특히 장모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다. 집사람을 대신하여 집안 살림을 하시고, 철없는 아이들을 돌보고, 집사람 병 수발을 하였으니 그 고통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런 육체적인 고통 이외에도 자식이 아프다는 정신적으로 고통으로 인해 한 10년은 더 늙으신 것 같다. 그래도 모든 가족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시간이 지나고 나니 우리 집도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집사람의 마음도 많이 안정이 되어 가고 있다. 그동안 약해졌던 마음도 점점 정상을 되찾고 있으며 밝고 건강하게 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이 정신적으로 약해지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니 마음이 많이 강해져 간다. 그리고 건강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고 있으며, 좋은 먹거리, 꾸준한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덕분에 나도 따라서 운동을 하니 나의 건강도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요즘은 우리 부부는 주말부부이다. 2월 21부터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기 때문에 주중에는 서울 누나네 집에서 기거를 하고 매주 금요일이 되면 집으로 내려온다. 집사람은 결혼 하고 나서 가족과 처음으로 떨어져 있으니 마음이 많이 허전한가 보다.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가 오고 간다. 딸들도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가 보다. 수시로 전화를 눌러 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장모님이 집을 지키고 있으니 아이들이 그런대로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한 가지 문제라면 아이들이 할머니 말을 잘 안 듣는 다는 것이다. 하긴 나도 예전에 할머니가 하는 말은 하나도 안 들었으니, 시대가 변해도 할머니는 하나도 무섭지 않은 존재인가 보다.


 집사람의 방사선 치료는 4월 3일 날 끝난다. 총 28회를 실시하는데 이제 절반이 조금 넘어가고 있다. 방사선 치료는 항암치료에 비해 그다지 고통이 심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름대로 잘 적응하고 있다. 그래도 방사선 치료 횟수가 지속되다 보니 목에 염증이 생기는 것 같고, 몸에 피로가 가중되는 것 같다. 많이 피곤해 한다. 그 동안의 투병 생활로 아내의 몸이 많이 야위었다. 그래도 살이 찌는 것 보다는 살이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내가 집을 비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아이들에게 많은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많이 부족한 것 같다. 학교 준비물과 어린이집 준비물을 물을 자주 빼먹는다. 그리고 엄마가 옆에 없어서 안스러운 마음에 잘 대해 주다가 보니 아이들 버릇이 나빠지는 것 같다. 주말이 되어 아내가 집에 와 있다.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아이들의 활기가 넘친다. 이런 모습을 보니 새삼 가족을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


 집사람이 아프고 나서 나도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달은 것 같다. 한 걸음 물러나서 인생을 보는 법을 배웠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오로지 앞으로만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하던 나에게 한 박자 쉬고 가는 법을 가르쳐 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앞만 쳐다보고 무조건 달리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주위를 돌아보는 시간을 주었다. 또한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요즈음은 어설픈 철학자처럼 생활하고 있다. 일하다가도 우두커니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으며, 어떤 때에는 마음속이 텅 빈 느낌이 들고, 어떤 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하루 종일 방황하는 날도 있으며, 또 어떤 날을 사무실 주위를 맴돌며 사색하는 날도 있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한 켠의 모퉁이에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뿌연 안개와 같은 자그마한 그늘을 간직하고 있다.  



 #그 후 2년 동안

 

                                                                                                               (2007년 10월 24일)


 아내가 방사선 치료를 끝내고도 한동안은 많이 힘들어 하였다. 유방암의 충격에서 벗어나는데는 약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정신적인 안정도 찾았다. 아내가 유방암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1)야채스프 챙겨먹기

 아내는 수술을 마치고부터 지금까지 야채스프를 끓여 먹고 있다. 무우, 무우씨래기, 당근, 우엉, 표고버섯이 들어간 야채스프를 먹고 있다. 매주 끓이는 것이 번거롭고 힘들지만 지금까지 먹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먹을 것이다. 초기에는 현미차도 함께 끓여 먹었지만 지금은 야채스프만 먹고 있다. 야채스프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개인적으로 생각해도 모두 좋은 재료들이다. 야채스프를 먹으면 인체내 세포수가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이런 원리 때문에 항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2)신선한 야채 먹기

 육식보다는 야채를 많이 먹는다. 브로컬리, 파프리카, 쌈야채, 표고버섯, 느타리버섯, 새송이버섯, 김치 등의  신선한 채소와 버섯 종류를 주로 먹는다. 단백질은 주로 두부를 통해서 섭취한다. 현미쌀과 검은콩으로 만든 미싯가루를 물에 타서 간식으로 먹는다. 쑥가루와 고들빼기 가루도 물에 타서 먹는다. 밥은 현미, 보리, 수수, 율무, 흑미, 검은콩, 제철에 나는 콩이나 팥을 넣어 먹는다. 밥을 먹을 때 제철과일 또한 빼놓지 않고 먹고 있다. 


 (3)좋은물 마시기

  알칼리 이온수가 좋다고 하여 알칼리수를 먹고 있다. 알칼리수는 몸에 빠르게 흡수되고, 산성 노폐물을 배출해주는 효과가 있다.  


 (4)운동하기

 운동도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이다. 산에가서 운동도 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이 좋다. 거의 매일 동네 뒷산에 올라가 운동을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 요가 강습에도 참여하여 몸을 풀어 준다.


 (5)좋은 기분 갖기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주위 사람들과 즐겁게 지낸다. 자주 웃으면서 이야기 하다보면 자신도 즐거워지고, 주위사람들도 즐거워 한다. 그리고 항상 “감사합니다.”“풍요롭습니다.”“행복합니다.”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는 암환자에게 치명적이므로 환자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가족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유방암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다가 보니 2년이 지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잘 관리하고 있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제가 경험한 투병일기가 유방암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되었으면 바램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