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이야기

아내와 귀뚜라미의 전쟁

행복한 까시 2008. 8. 9. 11:39
 

 며칠 전부터 귀뚜라미 한 마리가 우리 집 앞에서 시끄럽게 울었다. 베란다 밖에서 우는 것 같아 신경을 쓰지 않고 며칠을 지냈더니 날이 갈수록 더 시끄럽게 울어 대고 있다. 귀뚜라미도 가을이 오니 사랑에 목말라 울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애인이 빨리 찾아오지 않는 것 같다. 날이 갈수록 더 크게 우는 것을 보며 애인을 구하는데 목말라 하는 것이 틀림이 없다. 저녁때가 되니 귀뚜라미 소리는 더 커졌다. 쉬지 않고 밤새도록 시끄럽게 울어 대고 있다. 드디어 어제 저녁에 아내가 폭발을 했다. 귀뚜라미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내는 밤새 잠을 설쳤다. 귀뚜라미 때문에 잠을 한 숨도 못 잤다는 것이다.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고,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부스스한 얼굴로 아침에 일어났는데, 얼굴을 보아 줄 수가 없다. 아내의 잠을 망쳐버린 귀뚜라미가 너무 얄미웠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밤새 쿨쿨 잤다. 잠자는 것 하나는 타고 나서 머리만 대면 잠을 자는 내 체질은 아무리 시끄러워도 잘 잔다. 시간이 부족해서 잠을 못자는 것이 내 체질이다.

 

 그런데 아내는 잠에 대해서 극도로 예민하다. 바닥이 단단해도 못자고, 불빛이 조금만 있어도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조금만 추워도 잠을 잘 못자고, 조금만 더워도 잠을 잘 못 이룬다. 게다가 조그만 소리에도 잠을 자지 못한다. 심지어는 시계가 똑딱이는 소리,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도 예민하게 감지해서 잠을 못 이루는 성격이다. 그러니 내 귀에까지 시끄럽게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웠겠는가? 보지 않았어도 밤새 거실을 왔다 갔다 했을 아내의 행동이 상상이 간다.


 아내가 아침 일찍 깨웠다. 귀뚜라미가 집 안에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밖에서 우는 것 같은데 아내는 집 안에 있다는 것이다. 집에는 방충망으로 모기 한 마리 들어 올 틈도 없기 때문에 귀뚜라미도 들어 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분명히 귀뚜라미가 안에 있으니 잡아 달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 자기야, 나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귀뚜라미를 잡아줘요. 만일 귀뚜라미를 잡지 못하면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니 두고 볼 거예요”

 하면서 나에게 사랑 확인 테스트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 베란다는 화단으로 되어 있다. 화단에는 군자란 화분 두개와 아이들을 위해 심은 봉숭아 네 포기와 채송화 한포기가 자라고 있다. 귀뚜라미를 잡기 위한 작전이 수행 되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귀뚜라미를 잡아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귀뚜라미의 목을 베어야 했다.


 먼저 군자란 화분을 하나씩 옮겼다. 그 다음에는 봉숭아 화분과 채송화 화분을 옮겼다. 그리고 화단 바닥에 깔려 있는 플라스틱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걷어 냈다. 귀뚜라미를 놓칠까봐 조심스럽게 걷어 내었다. 중간쯤 걷어 내니 작은 귀뚜라미가 보였다. 너무 작은 귀뚜라미였다. 그 작은 귀뚜라미가 어떻게 큰소리를 내어 울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귀뚜라미는 잽싸게 가랑잎 사이로 몸을 숨겼다. 나는 망설일 틈도 없이 슬리퍼를 신은 발로 밟아서 죽여 버렸다. 이것으로 귀뚜라미 소탕 작전은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죽은 귀뚜라미를 보니 안쓰러워 진다. 애인을 찾아 짝짓기를 해야 하는데, 아무리 울어도 애인도 찾지 못하고, 집주인에서 압사를 당해서 죽었으니 말이다. 집안에서 아무리 크게 울어 봐도 애인이 들어 올 수 없는데, 이 사실을 알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사실을 몰랐으니 어제 저녁에는 더 큰 소리로 울었을 것이다. 큰 목소리로 울면 아마도 애인이 찾아와 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귀뚜라미 덕분에 아침 일찍부터 화단 청소를 했다. 화단을 깨끗이 치우니 기분이 상쾌하다. 그리고 아내의 사랑 확인 테스트에도 통과를 했다. 아내도 귀뚜라미가 없어져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나는 개선장군처럼 큰 소리로 그깟 귀뚜라미 정도는 얼마든지 처리 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귀뚜라미를 소탕하고 나자 집안에는 다시 조용한 평화가 찾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