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이야기

아내의 건망증 이야기가 쓸쓸한 하루

행복한 까시 2008. 4. 9. 10:15
 

 아내가 어제는 모처럼 외출을 했는가 보다. 그동안 매일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느라 마음대로 외출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아내이다. 전에 살던 동네에 친하게 지내던 장미 엄마가 놀러 오라고 며칠 전부터 전화를 했다고 한다. 장미네 집에 갔다 오는 도중 건망증으로 인한 여러 가지 사연이 한편으로는 웃음을 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 건망증 하나


 장미네 집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날씨가 화창하고, 참 따뜻하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떡집이 보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장미네 집에 마땅히 사가지고 갈 것이 없어 고민했는데, 문득 떡을 사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떡집에 들어서니 여러 가지 떡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아름다운 색깔로 내 마음을 잡아당기는 떡이 있었다. 바로 무지개 떡이었다. 색깔도 곱지만 딸콤한 맛이 입안에 퍼지는 맛있는 떡이다. 무지개 떡 한 덩이를 집어 들었다.


 떡집에서 나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리니 버스가 천천히 들어 온다. 출근 시간이 지난 시간인데도 버스 안의 승객은 제법 많다. 버스 안에서 보는 봄 풍경은 아름답다. 가로수로 심어진 벚꽃은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 이다. 벚꽃에 취해 한참동안 멍하니 창밖을 바라 보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보니 장미네 집 근처에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가는데 손이 갑자기 허전함을 느꼈다. 버스 안에서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는데, 손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었다. 바로 무지개 떡이었다. 떡을 버스에 놓고 내린 것이 었다. 아깝지만 버스는 저만치 가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건망증 둘


 잃어버린 떡을 아깝다고 생각하며 걷는데, 또 손이 허전한 것이 었다. 이번에는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가방에는 지갑도 들어있었다. 돈은 많이 들어 있지 않았지만, 신용카드, 현금카드, 핸드폰 등 여러 가지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 들어 있었다. 어떻게 하나 하며 고민하며 뒤를 돌아 보니 가방이 어깨에 걸려 있었다.


  순간 힘이 쫙 빠졌다. 건망증이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에 전기가 온 것처럼 짜릿해 진다. 정신을 차리고 장미네 집으로 향했다. 장미네 집에 들어가니 장미 엄마가 반갑게 맞아 준다.

  “ 장미야, 어떡하지? 장미 주려고 떡을 샀는데, 버스에 놓고 내렸어....”

 “ 괜찮아 언니, 우리 나이 때는 건망증으로 그럴 수 있어. 너무 마음 쓰지마. 나도 늘 그런데 뭐.”

떡도 떡이지만 가방 사건을 생각하니 얼굴이 또 달아오른다. 내가 덜렁대는 것일까? 아니면 나이 탓이란 말인가?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난다. 어리적 무언가를 잘 잊어버리는 엄마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엄마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사건은 정리 되었지만 머리속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건망증 셋   

 

 장미 엄마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많이 흘렀다. 장미 엄마는 요즘 이사 문제로 고민이 많다. 이사를 가야 하는데, 여러가지 문제가 걸려 있는 것 같다. 장미 엄마와의 이야기가 아쉬움을 남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아파트를 나섰다. 돌아 오는길에 과일 가게에 들렀다. 과일을 사고 나서 잔돈 천원을 주머니에 넣었다. 버스 요금을 내기 위해서 였다. 

 

 정류장에 와서 주머니를 뒤지니 천원이 없어졌다. 또 건망증인가 하고, 가슴이 아팠다. 아무리 뒤져도 천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잠시 주위를 둘러 보니 천원자리가 길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바로 내돈 이었다. 건망증은 아니었지만 황당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정신을 바짝차려야 했다. 아이들을 주려고 과일가게에서 산 딸기와 바나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 였다. 버스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과일 봉지를 꼭 쥐고 있었다. 버스에 내려서도 손에 과일 봉지가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 하였다. 참으로 황당한 하루 였다. 

 

 

 아내의 건망증 이야기를 들으니 서서히 뇌세포가 노화되어 간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아내는 시집와서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 일을 하고, 몇 번 걸친 수술이 아내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이야기를 하며 한바탕 웃어 넘겼지만, 왠지 마음 한 구석에는 무거움의 여운이 남아 있다. 아내의 건망증 이야기가 나를 쓸쓸하게 한다.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