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시내버스가 처음 들어오던 날의 추억

행복한 까시 2008. 4. 26. 13:21
 

 요즈음 유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우리 서민들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 어제는 차를 회사에 두고 시내버스를 타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가계에 보탬이 되고 국가적으로는 에너지를 절약한다는 명분을 갖고 시내버스를 타기로 한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20분 이상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기분이 점점 상하기 시작한다. 차라리 회사에 다시 들어가서 차를 가지고 퇴근 할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30분을 넘게 기다려서 겨우 버스가 왔다. 그래도 제법 규모 있는 시에서 배차간격이 이렇게 느리다는 것에 대한 원망이 저절로 나온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모두 다 승용차로 출퇴근한다는 생각이 든다.


  꽤 오래간만에 타보는 시내버스이다. 학교 다닐 때는 거의 매일 시내버스를 타고 다녔다. 시내버스가 학생들에게는 자가용이나 다름이 없었다. 버스 안의 풍경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정류장 마다 정차하여 사람들을 내려놓고, 다시 태우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반복되는 과정을 바라보며 먼 옛날 버스가 처음 들어오던 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버스가 운행된다는 소문이 동네에 돌았다. 아마도 지방 뉴스에 보도된 것을 누군가가 들었을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며칠이 지나니 동네 길가에 버스 정류장 팻말이 설치되었다. 설치된 버스 정류장 표시를 보면서 버스가 들어오기는 하려나 보다하며 마음속으로 생각 했다. 마음속으로는 무척이나 설레기만 하였다. 그동안 버스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중학교에 다니면서 버스를 타고 다니는 친구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 당시만 해도 버스가 들어가는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지금으로 치면 집에 자가용이 있느냐 없느냐 정도의 차이였다. 아주 사소한 작은 것도 경쟁이던 어린시절 동네에 버스가 다닌다는 것은 대단한 자랑이었다.


 드디어 어느 날 시내버스가 들어 왔다. 처음 개통이라 그런지 버스 앞에다 “축 개통”이란 프랜카드를 붙이고 동네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버스 종점으로 몰려들었다. 어른들 모두 기뻐 하셨다. 이장님이 만세 삼창도 하고, 버스 앞에다 돼지 머리도 놓고 고사도 지냈다. 마을을 다니는 버스가 안전하게 운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두 함께 고사를 지낸 것이다. 고사가 끝나고 동네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안주로 막걸리 파티를 벌였다.


 버스에 가까이 가서 행선지 표시를 보았다. 행선지 표시에는 우리 동네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행선지 표시를 보니 버스가 개통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버스가 다니고 나서는 동네 풍경과 생활이 많이 바뀌었다. 집에 자가용이 생기면 생활이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우선 아주머니들이 장에 다니는 것이 편해졌다. 예전에는 장에 가서 물건을 사가지고 올 때 8킬로미터를 걸어야 했다. 그냥 맨몸으로 걸어도 힘든 거리이다. 그리고 우리 같은 학생들도 편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한 시간 반을 걸어야 중학교에 도착했는데, 30분 만이면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에 한 시간 반을 걸으면 지쳐서 1교시 수업이 힘들었는데, 버스가 다니고부터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버스는 하루에 4회나 운행되었다. 오전에 두 차례, 오후에 두 차례 운행되었다. 우리 시골같이 오지 마을에 시내버스가 4회씩이나 운행된다는 것은 매우 경이로운 일이다. 시골의 버스는 운송수단 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버스를 이용하며 소식을 주고받는 사랑방 역할도 한다. 그래서 시골의 버스 안은 늘 시끌벅적 하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또한 시골의 버스는 화물 배달 역할도 한다. 바빠서 읍내에 나갈 시간이 없는데 물건이 필요한 경우에는 읍내 가게에서 버스에 실어 놓는다. 그러면 버스 정류장에 가서 찾아오면 된다. 그리고 들판에서 일하는 어른들에게는 시계 역할도 한다. 농사일을 하면서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점심때가 되었는지도 파악을 한다.  


 시내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이런 시내버스의 추억에 대해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오직 산골 오지마을에서 성장한 사람들만이 느끼는 감정이다. 그 시내버스는 지금도 여전히 운행되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사람들 모두가 승용차를 갖고 있고, 시골마을에서도 집집마다 차들이 있어서 이용객이 적다고 한다.


 요즈음 시내버스는 많이 좋아졌다. 기어도 오토로 바뀌었고, 천연가스로 운행하며, 냉방, 난방도 잘 되고, 요금도 카드로 결제하고, 모든 부분이 예전과는 딴판이다. 그리고 옛날에는 버스기사는 최고의 직업이었는데, 요즈음은 누구나 운전은 필수인 시대가 되었다. 요즘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비포장 길을 달리는 버스를 보면 한가롭고 여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고향생각도 나며,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이제는 버스를 기다리는 순수한 마음도 다 사라졌다. 도시의 삶에 치치다 보니 시내버스는 관심 밖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도시에 쉴 새 없이 지나가는 버스는 희소성을 주지 못한다. 시골에서 몇 시간 마다 한번씩 운행하는 것이 반갑고 소중한 것이다. 아직도 버스를 기다리는 순수한 마음이 있는 그 시절이 그립다. 이번 주말에는 시골로 가는 버스를 타고 종점여행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