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낯선 동네에서의 아침 산책

행복한 까시 2008. 7. 13. 11:29
 

 이번 주말에 회사에서 워크숍이 있어 수안보를 다녀왔다. 토요일 아침에 눈이 일찍 떠졌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가 조금 넘었다. 그래도 밖은 대낮같이 환하기만 하다. 잠을 더 자려고 몸을 뒤척여 보지만 정신은 오히려 더 말짱해진다. 요즘 부쩍 이렇게 새벽에 잠이 깨어 몸을 뒤척이는 일이 잦아진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잠을 더 자려고 애를 쓰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나서 길을 나섰다.


 숙소를 나오니 가야할 방향이 마땅치가 않다. 시내 쪽으로 갈까 아니면 산 쪽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산 쪽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시내보다는 산 쪽이 더 볼거리도 많고, 공기도 신선할 것 같고, 무엇보다 조용히 사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산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천천히 길을 따라 걸었다. 산길인데도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었다. 간신히 승용차 한 대가 다닐만한 넓이로 길이 나 있었다. 그 길은 깔끔하게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었다. 조금 올라가다 보니 한 할머니가 밭에 나와서 김을 매고 계신다. 무엇이 심어져 있나 하고 보았더니 팥이 심겨져 있었다. 산골 밭이라 밭은 돌투성이 이다. 돌이 너무 많아서 골라 내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돌이 많은 돌밭에서도 팥은 무성하게 잘 자라나고 있었다. 밭에서 일하시는 할머니를 보니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우리 어머니도 지금 이 시간에 밭에 나와서 일을 하고 계실 것이다. 항상 그래왔으니 오늘도 틀림없이 밭에 계실 것이다.   


 조금 올라가니 이제 인적이 드물다. 좀 으스스한 느낌도 조금 들었다. 길을 올라가다 보니 산딸기가 달려 있었다. 어린시절 내가 좋아하던 멍석딸기란 것이다. 멍석딸기는 산딸기 중에서 알이 제법 굵다. 그리고 신맛보다는 단맛이 더 강해서 맛이 좋았다. 하나를 따서 입에 넣었다. 입안에 단맛과 신맛이 퍼져나갔다. 어린 시절 먹던 맛이 그대로이다. 단지 다르다면 그동안 단 것을 많이 먹어서 단맛에 대한 미각이 조금 무뎌졌다는 것이다. 딸기를 먹다보니 어린시절 추억이 하나씩 떠오른다. 특히 이 계절과 관계되는 추억들이 하나씩 자동으로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냇가에서 멱 감은 추억이며, 다슬기 잡던 추억, 딸기 따러 산으로 돌아다니던 추억과 장면 등이 머릿속에 맴돈다.  


 한참을 가다가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고갯마루에 오르니 경치가 좋다. 뒤를 돌아보아도 멋진 경치가 펼쳐졌다. 앞을 보니 자그마한 동네가 있었다. 집은 몇 채 되지 않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동네였다. 동네 가까이에 가 보았다.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들뿐이었다. 낯선 사람이 동네에 들어서니 동네 사시는 분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게다가 강아지까지 심하게 짖어대며 낯선 사람이 왔다는 것을 광고한다. 개 짖는 소리가 동네의 정적을 깨뜨린다. 남의 동네에 침범한 것도 미안한데, 개까지 짖어대니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그 개가 작은 개이기에 망정이지 큰개였다면 그 동네에 발도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가다가 보니 아침을 준비하는지 한 할머니가 불을 때고 있다. 연기 냄새를 맡으니 꼭 어린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어린시절 고향에서 맡던 연기 냄새와 똑 같았다. 시골에서 밥을 먹기 전에는 꼭 연기 냄새를 맡았기 때문에 그 냄새가 뇌리에 저장되어 있다가 살아난 것이다. 연기 냄새가 나면 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의식중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뇌에서는 아침밥을 먹으라는 신호가 보내졌는지 입에는 군침이 고였다. 아침 식사 전이라 그 연기 냄새가 더욱 구수하게 코를 자극하는 것 같다. 연기 냄새를 맡으니 정말 그 할머니가 지어주는 밥을 먹고 싶었다. 


 조금 더 동네 안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한 할머니가 마루에서 곡식을 담고 계셨다. 머리가 하얗게 세신 할머니가 마루에서 곡식을 담고 있었는데, 어머니 모습과 너무 똑같아 하마터면 어머니하고 부를 뻔 했다. 허리가 구부러진 채로 마루를 분주히 왔다 갔다 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찡해졌다. 그 할머니를 보니 고향 생각이 더 났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늙어 가시는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착 가라 앉는다. 동네를 둘러보니 대부분의 땅이 밭이다. 산 중턱이라 비탈진 밭이다. 그래도 동네 주민들이 부지런해서 그런지 정갈하게 농작물을 가꾸어 놓았다.


 한참동안 동네를 둘러보았다. 너무 아름다운 동네였다. 아마도 내가 산골 출신이라 더 공감을 하고 아름답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저런 사색도 하고, 아름다운 동네 구경도 했으니 멋진 아침 산책이었다. 다시 발길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올라갈 때 팥 밭에 김을 매던 할머니는 벌써 밭의 중간에서 김을 매고 계셨다. 아직도 그 할머니의 손놀림은 빠르기만 하셨다. 오랫동안 김을 매시던 능숙한 솜씨로 김을 매고 계셨다. 숙소에 돌아오니 동료들은 아직도 한 밤중인 것처럼 잠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