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아버지의 자상함이 쓸쓸한 하루

행복한 까시 2008. 6. 15. 12:33
 

 고향 시골마을에서 하루를 보냈다. 큰누나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하고, 고향집에 들렀던 것이다. 6월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요즘 시골은 분주하기만 하다. 복숭아 과수원에서는 봉지 씌우기 작업이 한창이고, 마늘밭에서는 마늘 캐는 작업이 한창이다. 고향집에서도 복숭아 작업과 마늘 캐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일손이 없어 형 내외는 복숭아밭에서, 어머니는 마늘밭에서 작업을 하신다.

 

 복숭아 작업량이 많아서 이른 아침부터 복숭아 봉지 씌우는 작업을 거들었다. 봉지를 씌우는 이유는 병해충으로부터 복숭아를 보호하는 것도 있고, 농약이 복숭아에 덜 묻게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복숭아가 햇볕을 많이 받으면 붉게 변하는데, 봉지를 씌워서 붉게 변하는 것을 방지하여 하얗게 백도 복숭아를 만드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산 중턱에서 복숭아 과수원에서 작업을 하는데, 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초록 물결이다. 산도 초록이고, 논은 모내기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연한 초록빛이다. 초록색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 진다. 더불어 마음의 때도 씻겨 나가는 기분이다. 얼마 만에 느끼는 편안한 기분인가? 회사에서는 하늘 한번 쳐다볼 수 없는 닫힌 공간에서 서류, 시제품, 시약, 실험재료들과 씨름을 하였는데, 자연에 나와 머리를 비우고 작업을 하니 편안한 마음이 든다. 가끔 머리를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머리를 쓴다는 일은 사람의 피를 마르게 하는 것 같다. 글 쓰는 작가가 한 작품을 쓰기 위해 고심하고, 고뇌하는 것 같은 일이다. 작가의 힘든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참 작업을 하고 나니 온몸에서 신호를 보내온다. 팔에서는 팔이 아프다고, 손가락에도 통증이 오고, 제일 고통스러워하는 부분은 고개이다. 나무를 올려다보며 작업을 하니 고개가 제일 뻐근하다. 한나절 하고도 이렇게 힘든데, 형은 거의 열흘 동안 쉬지 않고 작업을 하신 것이다. 아프다는 표현도 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작업을 했다. 감히 아프다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오후에는 아버지가 밭으로 가셔서 내가 가져갈 각종 야채들을 챙겨주셨다. 밭에 빨갛게 열린 앵두도 손수 따주셨다. 앵두는 손녀들이 좋아하니 많이 가져가라며 잔뜩 따주셨다. 그리고 마늘밭 가장자리에 심어 놓은 상추도 뜯어주시고, 대파도 뽑아서 가지런히 정리해 주셨다. 내가 한다고 해도 아버지가 하신다고 손도 못 대게 한다. 아버지는 마흔이 넘은 내가 아직도 어린애로 보이시는가 보다. 숨이 차서 숨을 토하기도 어려워 하시면서도 나를 위해 상추도 뜯고, 대파도 뽑으시는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옆에서 지켜만 보고, 비닐에 담는 것만 하였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즐거워하시는 모양이 얼굴에 가득하다.


 아버지가 변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오늘처럼 이렇게 자상하게 챙기시지는 않았다. 마음 속으로만 챙기시고, 실제로 챙기시는 분은 어머니였다. 오늘은 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아버지의 행동이 전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처럼 권위적이고 무뚝뚝하신 모습에 내가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하여튼 아버지가 변하신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변한 아버지의 모습이 내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한다. 아버지가 이렇게 행동하시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이제는 늙으셔서 농사일도 거의 못하시니 미안한 마음에 밭에 나가서 힘이 덜 드는 일을 하시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어머니에게 잘 보이시려고 하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자식들을 잘 챙겨 주면 어머니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려고 이렇게 행동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자식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은 더욱 쓸쓸해진다. 예전의 아버지 모습이 너무도 그립다. 무섭게 야단치시고, 집안에서 묵직한 무게감으로 자리하고 있는 아버지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더 좋은 것 같다. 그 무게감이나 권위가 젊다는 것의 상징인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자상한 아버지 모습이 아직도 어색하기만 하다.


 저녁 늦게 나의 보금자리로 출발을 했다. 밭에서 마늘을 캐고 계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해가 저물기 전에 어서 가라고 재촉이 성화이시다. 차가 출발을 하고 백미러를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손을 놓고 내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신다. 내 차가 부모님 시야에서 벗어날 때가지 말이다. 나도 계속 백미러를 보며 운전을 했다. 부모님의 모습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속력을 올릴 수 있었다. 부모란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커도 자식은 아이와 같은 존재인가 보다.

   

 집에 도착해서 잘 왔다고 전화를 했다 아버지가 받으신다. 오늘 고생했다고, 아프지 않냐고 걱정을 하신다. 그리고 또 언제 올 거냐고 물으신다. 요즘 들어 아버지가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연세가 드셔서 그런 모양이다. 앞으로는 좀더 자주 찾아뵈어야겠다.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자상한 모습이 쓸쓸하지만,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이 나이에도 사랑을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