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어머니도 꿈이 있었던 여자이다.

행복한 까시 2009. 2. 1. 14:15


 

 최근에 어머니를 생각나게 한 일련의 계기가 있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고, 설날에 어머니를 만난 일이 어머니를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 ‘엄마를 부탁해’


 이 소설을 진작부터 읽고 싶어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얼마 전에 읽었다. 우리가 한동안 잊고 지낸 엄마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곁에 언제나 있기 때문에 소홀하기 쉬운 것이 엄마이다. 모든 것을 용서해주고 감싸 주기 때문에 소홀히 대하기 쉬운 분이 엄마이다. 우리가 단순히 생각하기에는 엄마는 늘 우리들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으로 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의 것은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꿈도 희망도 모두 가족들에게 있고, 엄마 자신의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엄마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소녀였을 때도 있었고, 젊은 시절의 꿈도 있었다. 살다가 보니 꿈을 잃어버린 것이다. 일부러 잊으려고 해서 잊은 것도 아니고, 삶이라는 무게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설령 생각이 났다고 하더라도 가족들을 위해 일부러 잊었을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간직했던 꿈들도 변해서 모두다 가족들에게 옮겨와 있다. 자식을 낳고 살다가 보니 엄마를 많이 이해하게 된다. 내 꿈이 엄마의 꿈처럼 점점 퇴색해 버리고, 아이들의 꿈으로 옮아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삶이 엄마의 꿈을 빼앗아 갔어도 한 번쯤은 엄마의 꿈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엄마와 한번쯤은 꿈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지금에 와서 이룰 수 없는 꿈일 지라도 엄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 삶의 길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엄마도 한 명의 꿈 많은 여자 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 ‘워낭소리’

 

 영화를 아직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꼭 한번 보고 싶은 영화이다. 다큐프로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 맞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시절 소와 함께 자랐기 때문에 영화가 더 마음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소를 보면 고향 생각이 난다. 소와 함께 어우러진 서정적인 분위기가 영화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소와 함께 등장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골 마을의 대표 부모님이다. 시골에 계신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표해서 영화에 출연한 것이다. 소처럼 일만 하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 모습은 늘 일하는 모습이었다. 새벽 같이 일어나 아침 준비하시고, 부엌일을 마치시면 밭으로 나가셔서 일을 하셨다. 점심을 드시고도 잠시도 쉬지도 않으시고, 막간을 이용하여 냇가에 가서 빨래를 하셨다. 그리고 또 쉬지 않고 바로 밭으로 나가서 일을 하셨다. 저녁때도 저녁을 다 먹고도 나머지 가족들은 쉬고 있을 때 헤어지 옷가지를 꿰매느라 늘 바느질을 하였다. 어린시절 어머니와 논다는 것은 상상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 옆에 있으려면 늘 일하는 어머니를 찾아다녀야 했다. 냇가의 빨래터를 찾아 간다든가 밭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찾아다녀야 했다. 늘 따라다니며 말썽을 일으켜 야단을 맞으면서도 어머니 옆에 있으면 행복했다. 지금도 고향을 찾으면 어머니 옆에는 늘 일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 설날 어머니와 대화  


 어머니와 비닐하우스에서 파를 손질했다.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파 손질하는 것을 거들었다. 일을 하며 어머니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았다.


  “ 엄마는 어릴 적 꿈이 뭐 였어요?”

  “ 꿈이란 게 뭐 있냐?”

  “ 아니, 꿈이 없으면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 그런 것 말이에요.”

  “ 응. 그냥 시골에서 농사짓는 것 말고 도회지로 시집가서 살고 싶었지. 예쁘게 화장도 하고, 좋은 옷 사 입고, 다른 멋진 여자들처럼 살고 싶었지. 이렇게 흙 안 묻히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 웠는지 몰라. 나중에 다시 시골로 시집가라면 다시는 안간다. 금은 보화를 준대로 시골로 시집 안올 거야.”


 어머니도 분명 꿈이 있던 한 사람의 여자였던 것이다. 우리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런 꿈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아니 빼앗겨 버린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에서 무언가가 뜨거운 기운이 올라온다. 그러면서 다시 말씀을 이어가셨다.


  “ 그래도 지금이 좋단다. 후회는 없어. 너희들이 다 결혼해서 잘 사는 모습을 보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내가 죽고 없더라도 지금처럼 동기간들 간에 사이좋게 지내라. 그리고 이제는 꿈이 있다면 너희들이 모두 건강하게 잘 사는 거여. 그게 내 꿈이여.”


 그랬다. 우리 어머니의 꿈도 가족들을 위하는 사는 것으로 변했다. 이것이 어머니의 인생인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 간직했던 젊은 시절의 꿈을 기억해 두고 싶다. 비록 이루지는 못했지만, 어머니도 꿈이 있었던 여자라는 사실을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젊은 시절의 내가 간직했던 꿈처럼 말이다. 그래도 나는 엄마 보다는 더 많은 꿈을 실현하고 살지 않는가?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의 희생 덕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