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시 이야기

이번 주말에는 아빠 노릇 좀 했다.

행복한 까시 2008. 6. 22. 10:42
 

  핑계인지 몰라도 주말이 되어도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40대이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발생하는 결혼식이나 상갓집, 가끔 시간을 내려고 하면 회사에서는 바쁘니 나오라고 은근한 압력을 준다. 이래저래 주말에도 그리 자유롭지는 못하다. 주중에는 매일 늦은 퇴근이라 가족들과 단 20분도 같이하기가 힘들다.


 이번 주말에는 별다른 스케줄이 없어 큰 맘 먹고 아빠 노릇 좀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다행이도 어떤 돌발사고 없이 가족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니 무척 좋아하고 행복해 하는 것 같다.

 

 

 # 등굣길에 아이와 함께 학교에 가기 


  토요일 아침 작은 딸과 함께 집을 나서니 아이들이 등교하느라 바쁘다. 인도가 아이들로 꽉차있다. 학교가 바로 코앞인데도 아빠와 같이 등교하니 작은 딸의 기분은 최고이다. 큰놈은 이제 나와 같이 가기 싫은지 멀찍이 떨어져서 걸어오고 있다.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겠지 하며 아득히 먼 초등학교 등굣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때는 부모들이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설령 데려다 준다고 해도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등교하면서 보니 데려다 주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아빠들도 많이 보인다. 그것을 보며 좋은 아빠들도 많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이 거의 일년에 한번 정도 있는 연례행사인데, 다른 사람들은 차로 데려다 준다. 학교 정문 앞은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자가용이 계속해서 정차를 한다.  


 아이들이 학교 현관에서 실내화를 갈아 신는다. 작은 아이들이 신발 갈아 신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작은 놈을 교실로 들여보내고 집으로 향한다. 조금만 신경 쓰면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는데,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너무 소홀한 것이 아닌가 반성해 본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은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닌데, 우리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한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커피 물을 끓이고 있다. 비가 오는 아침이라 커피 향과 커피 맛이 입안 가득히 고이고 있다. 

 

 

 # 공부 도와주기


 토요일 저녁에는 큰 아이 공부를 돌봐 주었다. 수학에서 분수의 개념 정리가 부족한 것 같아 가르쳐 주었다. 수학은 개념 정리가 되지 않으면 문제를 풀 수 없다. 조금만 깊이 들어가거나 응용문제가 나오면 풀지 못한다. 그래서 차근차근 개념을 설명해 주고, 문제를 냈더니 곧잘 풀어낸다.


 작은 딸은 큰 아이와 공부하는 것이 질투가 나는지 자기도 문제를 내 달라고 아우성이다. 큰 아이에게 설명하느라 눈길을 주지 않았더니 애처로운 표정으로 옆에 앉아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큰아이 가르치는 것을 중단하고, 작은 놈에게도 수학 문제 몇 개를 내 주었다. 연산 문제를 내 주었더니 곧잘 풀어낸다.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공부하는 것이 좋아 한다. 신이 나서 공부를 한다. 문제를 더 내달라고 아우성이다. 공부를 하면서도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얼굴에 가득하다. 신이 나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즐거워진다.


 아내 또한 즐거워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늘 외쳐도 들어 먹지 않는데, 아빠와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를 하니 더 좋아한다. 그리고 아내가 더욱 즐거워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아내는 주말 내내 가족들 챙기느라 바쁜데, 나와 두 딸들은 휴식을 취한다는 핑계로 주말이면 게으름을 피우고, 빈둥거렸다. 그러나 이번 주말에는 아내는 TV를 보며 휴식을 취하는데, 우리 세 사람은 공부방에 틀어 박혀 공부를 하니 아내의 마음은 더욱 뿌듯한 것이다. 

 

 

 # 김밥 만들기


 일요일 아침이라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일어나 보니 아내가 밥을 짓고  김밥 재료를 준비해 두었다. 오랜만에 주방에 들어가서 김밥을 싸겠다고 제안을 했다. 아내는 흔쾌히 싸 보라고 자리를 내 주었다. 사실 김밥은 말아 본 경험이 전혀 없다.


 김을 바닥에 깔고 밥을 폈다. 그 위에 당근, 우엉, 계란, 파프리카, 고추, 버섯, 맛살을 넣었다. 그리고 김밥 싸는 발을 이용하여 김밥을 말았다. 처음 해 보는 것이라 어색하지만 제법 김밥 모양이 나온다. 아이들이 탄성을 지른다. 아빠가 제법이라고 말이다. 이것들이 조금 컸다고 아빠를 놀린다.

 

 아빠가 음식을 하니 아이들도 즐거워하는 것 같다. 색다른 풍경이라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것이다. 주방에는 늘 엄마가 요리하는 고정관념을 탈피하여 아빠가 요리를 하니 즐거운 것이다. 아내가 김밥을 썰어서 접시에 올려놓는다. 김밥을 무척 좋아하는 작은 놈은 입이 볼록 튀어나오도록 김밥을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이렇게 이번 주말에는 가족들에게 생색을 내며 아빠 노릇을 하였다. 사실 나는 좋은 아빠는 아니다. 늘 회사 일을 핑계로 가족들에게 소홀한 점이 많다. 그 점 늘 가족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조금만 시간을 내거나 신경을 쓰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