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시 이야기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 더 좋다.

행복한 까시 2008. 5. 4. 13:54
 

 요즘 좀 답답했다. 일이 많아 회사에서는 한숨도 돌리지 못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일 때문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쳐있었다. 게다가 늘 9시가 넘는 퇴근은 몸을 더욱 지치게 한다. 요즘은 집이 하숙집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어떤 날은 아이들이 깨어 있는 모습도 못 본 날도 많다. 이런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아침을 먹으며 외출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아내도 그동안 답답했는지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단지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싫은지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특히 큰 놈이 나가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큰놈은 야외로 나가는 것보다 시내 중심가로 외출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연보다는 세련된 도심 한가운데가 좋은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놈이 성장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사춘기 때는 도시의 세련미가 자연의 투박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최신 유행하는 옷도 입고 싶고, 헤어스타일도 최첨단을 해보고 싶은 것이 사춘기 때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싫다는 놈을 간신히 설득하여 차에 태워 출발을 했다.


 갑자기 떠나는 여행이라 준비물도 거의 없다. 목마를 때를 대비하여 마실 물과 비상용 식량인 바나나 몇 개를 차에 넣었다. 산에 갔을 때 갑작스런 날씨에 대비하여 긴팔이랑 선 캡을 준비하였다. 급하게 준비하고 나오느라 디지털 카메라를 못 챙긴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차를 남쪽으로 돌렸다. 덕유산의 무주구천동으로 여정을 잡았다. 더운 날씨에는 계곡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차를 무주 쪽으로 몰았다. 밖으로 나오니 가슴이 탁 트이는 분위기이다. 산은 모두 연둣빛으로 물들고 있다.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 했던가? 그 호칭에 걸맞게 산들이 멋을 부리고 있다. 진하지도 너무 엷지도 않은 초록색이 눈을 즐겁게 한다. 초록색 산을 보며 운전을 하니 피로하지도 않다. 가족들과 함께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구천동 입구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구천동으로 올라갔다. 구천동에서는 철죽제라는 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지역 축제는 이름만 다르지 행사 내용은 비슷하다. 무대에서는 공연이 진행되고, 그 옆에서는 음식 장사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축제 행사장을 통과해서 계곡위로 산책을 하였다. 축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길옆에는 철쭉이 화사하게 피어 있다. 여행객들은 사진 찍기에 바쁘다.


 공기가 참 맑다. 맑은 공기를 마시니 기분까지 저절로 좋아진다. 한찬을 올라가서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네가족 모두 바위에 올라 앉아 휴식을 취했다. 아이들을 위해 소꿉놀이를 제안해 주었다. 잠시라도 놀 거리를 제공해주어야 빨리 돌아가자고 보채는 것을 방지할 수가 있다. 두 딸들은 소꿉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다. 처음에는 나도 소꿉놀이에 가세하여 함께 놀아 주었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그 놀이에서 빠져 나왔다. 아내는 그 옆에서 구경을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물소리, 새소리, 맑은 공기, 연둣빛 나무들이 아내의 기분을 좋게 상승시켜 주는지 연신 좋다는 표현을 한다.


 아이들이 놀이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재미있다. 모래로 밥도 짓고, 케이크도 만들고 재미있게 놀이를 한다. 그러다 싫증이 나면 돌탑도 쌓고, 물장난도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른다. 아마도 놀이를 하지 낳았다면 벌써 가자고 보챘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가자고 해도 더 놀다 가겠다고 한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여유 있는 오후 한 때를 보냈다. 그동안 머릿속에 들었던 복잡한 일들이 모두 씻겨나가는 느낌이다.


 나는 그 와중에 잠깐 눈을 붙였다. 휴식을 취하고 앉아 있으니 졸음이 밀려 왔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바위에 몸을 기대고, 잠을 청하니 잠에 그대로 취해버렸다. 한참을 자고 나니 좀 개운해 진다. 그리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자연이 머릿속의 복잡한 것을 치유해주는 기능이 있는가 보다. 계획하지 않았던 여행에 온 가족이 즐거웠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마음속은 아직도 그 계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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