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첫눈을 보며 쓸쓸해 지는 내모습을 본다.

행복한 까시 2008. 11. 20. 13:42

 면도를 하다가 무심코 거울을 본다. 윙하는 소리와 함께 전기면도기가 까칠한 수염을 하나씩 제거하고 있다. 수염이 많지 않은 나는 전기면도기를 주로 써 왔다. 사람들은 나보고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이방감이라고 놀려대곤 했다. 몇 개 되지 않는 수염을 면도기로 밀어 내는 모습을 보고 멋쩍게 웃어 본다. 면도기도 10년 전 그대로이고, 면도하는 방법이나 모습도 그대로이다. 다만 거울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이 10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새삼 발견한다.


 식탁에 앉아 급하게 아침밥을 먹는데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가요가 흘러나온다. 한참을 들어 보니 이정석의 ‘첫눈이 온 다구요’라는 노래이다. 학창시절 인기 있던 노래였고, 겨울이 되면 라디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노래였다. 귀공자 스타일의 외모를 가진 가수 이정석을 한때는 부러워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그 가수를 나와 비교하면서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노래를 들으며 지금쯤 그 가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 가수 또한 외모는 변했을지 몰라도 마음만은 그 시절 그대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출근하려고 아파트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눈 조각들이 차 유리창에 붙어 있다. 첫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작은 양이다. 첫눈이라고 판정해야 하는지 아무 의미 없는 고민을 해 본다. 이내 무시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의자에 앉으니 냉기가 온 몸을 파고든다. 차가운 가죽 시트의 냉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그 냉기를 몸으로 감지하며 겨울이라는 계절을 인정하고 만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동료들이 눈이 온다고 탄성을 지른다. 매년 오는 눈이지만 첫눈의 의미는 각별한 것 같다. 눈을 보며

 “애인 만나러 가야지”

했더니 옆의 동료가 말을 걸어온다.

 “애인 있어서 좋겠다.”

 사실 애인도 없는데, 무심코 한 말이다. 첫눈 하면 애인이 자동으로 떠올라서 내뱉은 말인데, 진짜 애인이 있는 줄 안다.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주위 환경이 많이 변했다. 마음은 아직도 10년 전, 아니 20년 전 그대로 인 것 같이 하나도 변한 것이 없이 그대로인 것 같은데, 주위 환경은 너무도 많이 변했다. 집에서는 혼자였던 내가 가족이 한 명, 한 명 늘더니 네 명으로 늘었다. 집도 작은 집에서 큰집으로 옮겨졌고, 집안의 살림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둘씩 늘었다. 회사에서도 말단 신입사원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아래서 세는 것보다 위에서 세는 것이 훨씬 빠른 위치가 되었다. 아니 이제는 셀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이미 손가락 안에 들어올 정도의 위치가 되었다.


 첫눈이 오니 이런 저런 잡생각이 난다. 아직도 낭만이 살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즐거운 낭만보다는 쓸쓸한 낭만이 더 살아나는 것이다. 어릴 적 설렘보다는 왠지 모를 허전함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밖을 내다보니 눈도 내 마음을 달래려고 하는지 눈발도 점차 가늘어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