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김치찌개 속의 돼지고기 한 점이 그립다.

행복한 까시 2008. 12. 17. 08:54

 아내가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다. 뚝배기 안에서 하얀 김과 함께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맛있게 끓고 있다. 묵은지의 시큼한 김치맛과 함께 돼지고기 냄새가 섞인 향이 온 집안을 휘저어 놓는다. 언제 맡아도 친근하고 편안한 맛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맛과 향인 것이다.


 김치찌개 냄새를 맡으니 오래전 추억이 떠오른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김치는 최고의 반찬이었다. 겨울에 김장 김치는 중요한 식량이었다. 마땅한 반찬이 없는 시골에서는 커다란 항아리에 가득 김장을 담가두었다. 겨우내 먹으려면 많은 양의 김치가 필요했다. 김치는 너무 우리 가까이에 있어 흔한 존재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다. 우리가 매일 무의식적으로 공기를 마시듯 밥을 먹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김치를 먹었다. 밥 생각을 하면 곧바로 김치가 떠오른다.


 김치는 무엇과도 잘 어울리는 반찬이다. 찐 고구마와 함께 먹어도 맛있고, 쌀밥과 함께 먹어도 맛있다. 백설기 같은 시루떡과 함께 먹어도 맛있고, 국수와 함께 먹어도 맛있다. 그리고 라면을 먹을 때에는 꼭 필요한 반찬이다. 김치 없는 라면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유년시절 특히 김치를 많이 먹었다. 물에 말은 밥을 한 숟가락 떠서 그 위에 김치를 얇게 쪼개서 올려놓아 먹으면 새콤하고 상큼한 맛이 입안 한가득 퍼져 나갔다. 유년시절에는 거의 김치만 가지고 밥을 먹은 것 같다.


 또 한 가지 맛나게 먹은 것은 김치 볶음밥이다. 겨울의 점심은 거의 김치 볶음밥이었다. 점심때가 되면 어머니는 커다란 냄비에 들기름 한 수저 두르고 그 위에다 김치를 썰어서 얹었다. 그리고 그 위에 밥을 넣고 냄비를 화롯불에 올려놓았다. 한참 있으면 고소한 들기름 냄새와 함께 김치가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그러면 밥을 비벼서 화롯가에서 한 숟가락씩 떠먹었다. 가족들과 함께 먹다가 보면 금세 냄비는 바닥을 들어내었다. 그러면 냄비 바닥에 남은 누룽지를 서로 먹겠다고 형제들끼리 다투었다. 어리다는 특권으로 누룽지는 거의 내차지가 되곤 했다. 


 그 당시는 참 가난했다. 고기는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가끔 산짐승을 잡아먹거나, 제삿날이나 명절날이 돌아오면 조금씩 맛볼 정도였다. 그것도 집에서 키우는 닭을 잡아서 요리한 것이었다. 그것도 가족이 많아서 고기 한 점 얻어먹기도 힘든 형편이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돼지고기를 사오셨다. 고기 구경도 못하는 가족을 위해 아버지가 큰맘 먹고 사 오신 것 같다.


 어머니는 돼지고기를 썰어 넣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그날따라 김치찌개의 냄새는 더욱 맛있어 보였다. 매일 김치만 넣고 끓이던 찌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맛이었다. 입에 넣으니 입에서 살살 녹으며 혓바닥은 계속 김치찌개를 안으로 밀어 넣는다. 찌개 냄비 안으로 숟가락들이 부지런히 들락거린다. 한참을 먹다가 보니 김치는 없어지고 고기만 남았다. 가족들이 서로 양보하는 라고 고기는 먹지 않은 것이었다. 워낙 고기가 귀하다 보니 부모님은 자식들 먹으라고 드시지 못하고, 우리 형제들은 할머니와 부모님 드시라고 먹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에게 골고루 돼지고기를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나서 우리 형제들은 고기를 한점씩 먹었다.


 오늘따라 김치찌개 속의 돼지고기 한점이 그립다. 돼지고기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사랑이 그리운 것이다.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사랑이 있어 행복한 시절이었다. 지금은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이런 가족간의 사랑이 메말라가는 느낌이다. 냄비 안에서 끓고 있는 김치찌개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데, 아내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느냐고 묻는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며, 아내가 끓인 김치찌개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다 넣는다. 시원하고 얼큰한 맛과 함께 추억속의 향기가 입안 가득 퍼져 나가고 있다. 그래도 예전에 먹던 돼지고기 한점이 더 맛있는 것은 추억과 귀한 고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