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남자들이 가을을 맞이하는 기분-쓸쓸함, 고독감, 외로움

행복한 까시 2008. 9. 25. 18:26

 

 오늘은 가을의 고독을 만끽하기에 좋은 날씨였다. 침울하고 우중충한 날씨가 기분을 나쁘게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가을과 딱 맞아 떨어지는 날씨였다. 매년 찾아오는 연례행사처럼 가을이 오면 심하게 열병을 앓는다. 어떤 해에는 그 열병이 감기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날 때도 있고, 어떤 해에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프다가 그것이 심하면 눈물까지 쏟아내는 해도 있었다. 남자는 평생 세 번을 울어야 사내대장부라고 흔히 말하지만 자세히 곱씹어 보면 한없이 약한 단면을 가진 것이 남성이다. 그저 남성미로 가장하여 무척 강한 것처럼 가장하고 사는 것이 남자일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이 유난히 가을을 많이 타기 때문에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는가 보다. 결혼 전에도 가을의 열병을 많이 앓았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 열병은 강도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고독감이랄까 외로움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그 감정을 딱히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한계라고나 할까 하여튼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마음 한구석이 뻥 뚫려 버린 느낌, 그 뻥 뚫린 구멍사이로 찬바람이 몰려들어올 것만 같은 공포감, 그리고 이 지구상에 나 혼자 버려진 느낌, 가도 가도 끝도 없는 차가운 사막 위를 걸어가는 느낌, 섬 하나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를 홀로 항해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절망감,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잘 안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느낌, 왜 이일을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감, 늘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돌아가는 일상들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든다. 그래도 이 열병들은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이른 봄이 오면 흔적도 없이 치유된다는 것이 매년 느끼는 신기한 일이다. 아마 계절의 변화 속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신비한 명약이 있는가 보다.


 주위의 분위기도 이런 가을의 열병을 키우는데 일조하는 것 같다. 찬바람이 가는 데로 정처 없이 뒹구는 거리의 낙엽들, 나뭇가지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떨어질 날만 기다리는 몇 개 안남은 낙엽들, 이른 아침 찬 서리에 죽어버린 호박넝쿨과 집 주변의 잡초들, 따뜻한 남쪽을 찾아 떠날 채비를 하는 철새들, 힘없이 풀에 앉아 있는 여름곤충과 벌들, 을씨년스럽게 부는 바람소리들이 바이러스처럼 나의 마음에 파고들어 가을의 고독과 외로움을 키워준다. 이때는 슬픈 음악이 가슴에 더 와 닿는다. 슬픈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내가 그 비련의 주인공 같은 느낌도 들고, 눈물도 나오려고 한다. 그리고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파는 음식들도 제 맛을 낸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밤늦도록 포장마차에서 따끈한 국물을 안주로 마음 맞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지만 마음속의 공허함은 더 커져만 간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다가 가을이면 찾아오는 우울한 마음에 대해 원인을 알게 되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우울해지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조량을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한여름 햇볕이 가득한 시기를 보내다가 갑자기 햇볕의 양이 감소하게 되면서 기분이 가라앉는다거나 심하게는 우울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남성은 유독 가을에 우울증 발병률이 많아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는 것이란다.


 좀더 전문가의 의견을 빌리자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면서 햇볕이 감소하는 현상은 뇌에서 세로토닌 생성을 감소시키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세로토닌은 행복감, 평화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이 물질이 결여됐을 때 우울증이나 불안감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짜증이 늘고 인내심이 없어지는 것. 마음이 푸근해지고 안락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세로토닌의 역할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이 분석한 가을에 찾아오는 열병의 원인을 알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그래도  생리적인 현상인지 쓸쓸함, 고독감, 외로움의 열병은 또 찾아온다. 가을의 열병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삶을 성숙하게 해주는 것 같다. 파충류들이 허물을 벗는 것처럼 한 해 한 해 열병을 치루면서 마음이 한 껍데기 한 껍데기 벗겨져 나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가을의 고독과 외로움을 즐기는 것도 가을의 정취를 맘껏 누리는 방법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