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 이야기

아빠처럼 살지 않겠다는 큰딸을 보며

행복한 까시 2008. 12. 2. 14:12

 그리 많은 세월을 산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 같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저 멀리 있던 것들이 손끝에 닿을 만 하면 멀리 사라지고, 또 다시 손끝에 닿을 만 하면 멀리 사라져 버리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아니 손끝에 닿아서 손안에 넣었다고 하더라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 또한 인생인 것이다.


 이제 열한 살이 된 우리 딸은 최근 들어 요구 사항이 많아졌다. 친구들이 갖고 있는 물건들이 갖고 싶은 것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닌텐도, 휴대폰, 전자사전 등이 갖고 싶은 모양이다. 매일 번갈아 가며 사달라고 조른다. 하루는 닌텐도, 다음날은 휴대폰, 또 다음 날은 전자사전을 사달라고 조른다. 잊었다 생각나면 이런 물건을 사달라고 조른다. 나와 아내는 못들은 척하고 있다. 그러다 계속 조르면 공부에 방해된다는 이유를 둘러대며 못 사주겠다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사실 그런 물건들을 마음만 먹으면 사줄 수도 있지만,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그런 물건들이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아이가 너무 애처롭게 조르면 가끔은 사주고 싶다는 욕망이 내 마음속에 슬그머니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아내가 너무 완강하게 반대를 해서 나도 아내의 분위기에 동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빠 엄마가 사주지 않을 것을 아는지 요즘은 좀 잠잠해 져 있다. 


 우리 딸이 요즘 주장하는 것은 해외여행이다. 반 아이들 중에 해외여행을 다녀온 아이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해외여행을 가자고 조른다. 그 부모들은 왜 아이들을 해외여행에 데리고 가서 나를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다들 비행기를 타 보았는데 우리 딸만 타 보지 못했다고 투정을 부린다. 며칠 전에는 뜬금없이 수학 학원을 보내 달라는 것이다. 이유인 즉은 딸아이 짝꿍이 수학 학원을 다닌다는 것이다. 그 짝꿍은 지금 6학년 과정을 공부한다고 한다. 짝꿍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싫은 것이다. 그것 때문에 욕심이 나서 학원을 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용히 달랬다. 지금 학원 갈 형편이 아니라고, 그리고 학원에 다녀도 본인이 공부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이라고 타일렀다.


 그랬더니 큰딸이 한마디 한다.

  “ 난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야.”

  “ 난 애들이 해달라는 것 다해주고 살 것이란 말이에요.”


 순간 망치로 한대 맞은 느낌이었다. 늘 큰 딸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지 못해서 마음이 아팠는데, 이런 말을 듣고 나니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쇼크가 왔다. 우리 딸이 컸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인줄만 알았는데, 이제는 세상에 조금씩 눈을 떠가는 중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어린시절 나도 갖고 싶은 것이 많았다. 동화책도 갖고 싶고, 소년중앙 같은 잡지책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책 구경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가난한 집안 형편상 감히 사달라는 이야기도 입밖에 꺼내지도 못했다. 사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것들은 참을 수가 있었다. 중학교 시절 스케이트가 너무 너무 갖고 싶었다. 얼음위에서 스케이트를 멋지게 타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겨울이면 스케이트가 너무 갖고 싶었고, 타고 싶었다. 그래서 졸랐다. 그 때는 집안 형편이 좀 나아져서 사주려고 마음먹으면 사줄 수도 있었다. 그 당시 스케이트는 쌀 한 말 정도의 값이면 살 수 있었다. 너무 갖고 싶은 것이라 가격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는 끝내 스케이트를 사주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스케이트를 탈 줄 모른다.


 그 때 아버지 원망을 많이 했었다. 우리 딸이 지금 나에게 원망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속으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수백 번 했다. 아버지가 무서워 입 밖에는 내지 못하고 무수히 마음속에서만 외쳐댔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아버지와 너무도 닮아 있는 것이다. 딸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사주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큰 딸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이 올바른 것인지 다시 한번 반문해 본다. 아이들이 요구하는 것을 무조건 들어주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적당히 절제하며 사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 과거의 아버지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리고 딸한테 부끄럽지 않은 삶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나중에 우리 큰딸이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우리 아버지가 현명하게 살았다고 평가해 주기를 바라며 더욱 열심히 내 삶을 가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