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 이야기

우리 딸들이 도서관을 좋아하는 이유

행복한 까시 2008. 12. 15. 17:15


 한가로운 일요일이다. 아이들 기말고사도 끝나고, 나도 며칠간 집에서 쉬고 나니 아내 또한 긴장이 풀렸나 보다. 온 식구가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시계는 열시가 한참 넘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다. 아내가 챙겨주는 아침밥을 먹고 나니 열두시가 되었다. 큰 딸은 친구들과 전화하느라 바쁘다 요즘 들어 부쩍 친구들과 전화가 잦다. 우리 집에 오는 대부분의 전화는 아이들 전화다. 도서관을 가겠다고 친구와 전화를 주고받더니 황급히 나가 버린다.


 큰 딸이 나가 버리자 작은 놈이 심심하다고 보챈다. 작은 몸도 도서관에 가겠다고 졸라댄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지만 작은놈 책 읽히려는 욕심에 도서관으로 향한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자동차 안이 썰렁해서 얼굴이 시렸다. 차를 몰고 가다가 보니 큰딸이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보인다. 작은 놈이 큰 소리로 외친다.

 “언니 차타고 같이 가.”

 “아직 친구 한 명이 안와서 기다리는 거야. 아빠하구 먼저가.”

 큰 딸은 추운 줄도 모르고 거리에서 배회하고 있다. 나간 지 한참 되었는데, 아직도 길에서 친구들과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 도서관까지 거리는 걸어가기는 좀 멀고 차를 가지고 가기에는 가까운 거리이다.


 도서관은 깔끔했다. 예전의 어둡고 칙칙한 느낌은 없고 산뜻하고 환한 느낌이다. 작은 놈이 어려서 아동 열람실로 들어갔다. 작은 딸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책을 고르고 있다. 작은 놈에게 책을 골라서 읽으라고 하고, 나는 종합 열람실로 가서 한상숙님의 ‘당신의 손’이라는 소설책 한권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읽었다. 소설이 재미있어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가끔 작은딸이 책을 읽는지 감시해 가며 책을 읽었다. 가만히 보니 작은 놈은 글씨가 적은 책만 가져다가 읽는 것이었다. 속으로는 야단치고 싶었지만 글씨가 적은 책이라도 읽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고 모른 체 했다. 그랬더니 계속해서 글씨가 적은 책만 가져다가 읽는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조금 있으니 큰놈이 도착한다. 친구 셋과 함께 나란히 책을 읽고 있다. 그 모습이 기특해서 속으로는 흐뭇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좀 쉬어야겠다며 큰놈은 친구들과 함께 휴게실로 향한다. 내가 앉아 있는 책상에 가방과 책을 맡기고서 말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다. 작은놈도 한 시간 반이 지나자 지루한지 나가자고 보챈다. 큰놈들이 맡겨 놓은 가방 때문에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작은 놈은 책도 읽지 않고 계속해서 보챈다. 몸을 배배 꼬며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한 시간쯤 지나서 큰놈이 돌아왔다. 라면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왔다고 한다. 맛있게 먹었는지 기분이 좋아서 싱글벙글 이다. 친구 두 명은 보내고 친구 한 명만 데리고 들어 왔다. 그러면서 책을 마저 읽어야 한다며 자리를 잡고 앉는다. 자리를 큰놈에게 넘겨주고 작은 놈과 함께 휴게실로 왔다. 뭘 먹고 싶으냐고 물으니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단다. 아이스크림 값이 할인점에서 파는 가격의 두 배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더니 이제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한다. 라면 한 개를 주문했다. 아침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생각이 없는데, 아이들은 출출한가 보다. 아주 맛있게 라면을 먹는다. 라면을 먹는 중간에 큰놈이 또 나왔다. 큰놈도 진득하니 책을 읽지 못하는 것 같다. 음료수 두개를 사서 친구와 딸에게 하나씩 건넸다.


 라면을 다 먹고 난 작은 딸은 이제 집에 가자고 조른다. 이제 목적을 다 달성한 것이다. 큰딸도 작은 딸도 모두 마찬가지 이다. 라면, 아이스크림, 음료수까지 먹었으니 더 이상 먹을 것이 없는 것이다.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간 것이 아니라 먹으러 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도서관은 책을 읽는 것이 우선이고, 부수적으로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간식을 먹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두 딸에게는 라면 같은 간식이 우선이고, 책을 읽는 것이 부수적인 것이다. 오늘도 두 딸들에게 꼼짝없이 당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아내가 배꼽을 쥐고 웃는다. 보기 좋게 두 딸들에게 또 당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