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 이야기

학원 한번 가보지 못하고 반에서 1등한 큰딸

행복한 까시 2008. 11. 21. 10:10

 중간고사가 끝난 다음날이었다.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아내의 문자가 도착했다.‘우리 딸 1등’이라는 간결하고도 짧은 문자 메시지 이었다. 문자를 받는 순간 기분이 좋았다. 부모 마음은 다 그런가 보다. 공부는 못해도 건강하면 된다고 말해 놓고도 막상 공부를 잘하면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부모인 것이다. 더욱 기분 좋은 사실은 시험을 볼 때마다 성적이 올라서 1등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지방 중소도시에서 1등을 해도 서울에 가면 중간도 못 간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학원도 안가고 집에서 공부했다는 사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이다.


 원래부터 학원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가급적이면 학원을 보내지 않겠다고 아이가 어릴 적부터 말해 왔다. 학원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학원을 다니면서도 본인 스스로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학원에만 의존하다가 보면 스스로 공부한 습관이 들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에 학원을 부정적으로 보는 또 다른 이유이다. 학원이 단 한 가지 장점이라면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나 끈기가 부족해서 집에서 공부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강제성을 동원해서 공부를 하게 만든다는 다는 것이 부모 입장에서 보면 긍정적인 면인 것이다.     


 학원을 보내지 못하는 이유는 경제적으로도 그리 넉넉지도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이사를 하면서 무리하게 집을 넓혀서 집안 살림이 더 팍팍해졌다. 대출금도 갚아야하고, 이자를 내다보니 여유가 더 없어졌다. 그리고 돈이 여유가 있더라도 노후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학원을 보낼 수가 없었다. 가끔은 다른 아이들이 모두 학원을 다니니 딸아이도 다니고 싶다고 한다. 남들이 모두 학원을 다니니까 딸들도 학원을 다녀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돈이 없어서 학원을 보낼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 더욱 마음이 아프다. 여유가 있는데 학원을 보내지 않는 것과 없어서 학원을 보내지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아이들에게 충분하게 뒷바라지를 해주지 못하는 것이 가슴이 아픈 것이다.


 학원을 보내지 못해서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또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공교육 문제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거의 학원에서 학교 공부를 선행학습으로 배우고 나니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아이들이 학원에서 배운다고 생각하고 선생님들이 대충 넘어 간다고 한다. 모든 선생님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 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딸아이는 집에서 참고서를 가지고 혼자 공부하는 일이 많다. 가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은 아내가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지금은 초등학교 4학년이라 아내가 가르쳐주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 들어가면 걱정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에도 계속해서 학원을 보내지 않을 예정이다. 하지만 학교 교육이 부실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아이가 공부하는데 좀 힘들더라도 스스로 공부하게 하고 싶다. 성적이 좀 덜 나와도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학원으로 돌려 혹사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부해야 하지만, 그렇게 살게 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의 능력에 맞는 삶을 살게 하고 싶은 것이다. 능력이 많으면 많은 대로, 능력이 적으면 적은대로 순응하는 삶을 살게 하고 싶은 것이다. 단지 주워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큰 딸 아이는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다. 한번 1등을 하니 욕심이 생긴 것 같다. 시키지 않아도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공부하는 딸아이를 보며 나도 더 열심히 일하며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리고 나태해진 요즘의 생활을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