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 이야기

작은딸과 함께 초등학교에 갔다.

행복한 까시 2008. 6. 21. 10:53
 

 늦잠을 잤다. 요즘 매일 지속되는 야근으로 피로가 온몸을 짓누르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집에서 쉰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가볍다. 눈을 떠 보니 두 딸들은 시끄럽게 떠들며 아침을 먹고 있다. 무슨 할 이야기가 많은지 두 딸들은 늘 조잘거린다. 그 소리에 잠이 깬 것이다. 밥 먹기가 싫은지 큰 딸은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어 가며 먹고 있다. 중간 중간에 아내의 잔소리가 섞인다.

 

 “야채 좀 먹어라. 밥 좀 빨리 먹어라.

   동생은 다 먹었는데, 넌 여태 뭐했냐? 

   밥 빨리 먹고 머리 묶어라”

 

 아내에게서 늘 듣던 일상의 잔소리들이 귓가에 스친다. 아내는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데, 딸들은 그 소리를 얼마나 듣고 있는지 의문이다. 자주 아내의 잔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아마도 딸들은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 같다. 그것을 알면서도 잔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아내도 보통의 엄마들과 똑같은 존재인 것이다.


 눈을 떠 보니 작은 딸이 한마디 한다.

 

 “난 아빠하고 같이 학교 가고 싶은데”

 

 어제 저녁 잠들기 전에 작은 놈을 학교에 데려다 주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그 약속을 잊지 않은 것 같다. 데려다 달라고 직설적인 표현을 하지 앉고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작은 놈이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는 고단수로 머리를 쓴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학교에 데려다 준다는 것에 대해 포기하라고 이미 말한 눈치이다. 아내는 내가 늦잠을 자리라는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아이와 약속이니 약속을 지키려 재빠른 동작으로 일어났다. 어른들과의 약속보다는 아이들과의 약속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을 통제하려면 아이들과의 약속을 잘 지켜야한다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그리고 거짓말쟁이 아빠가 되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편이다. 세수를 하려고 물을 받으니 물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물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벌써 여름이라는 계절이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 수가 있다. 얼굴에 물을 찍어 바르고, 밥상위에 앉는다. 큰놈은 아직도 식탁에서 밥알을 세고 있다.


 학교에 가려고 현관문을 나섰다. 비가 와서 우산을 챙겼다. 큰놈은 어른 우산을 쓰겠다고 한다. 아이들 우산은 유치해서 싫다고 한다. 큰놈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이런 사실로 조금씩 알 수 있다. 작은 놈은 어제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아내에게 야단을 맞았다. 나도 어릴 적 우산을 학교에 놓고 온 적이 많았는데, 나를 닮아서 그렇다고 딸 대신 아내에게 변명을 해서 작은딸을 방어해 주었다.


 밖으로 나오니 아이들이 등교하느라 바쁘다. 인도가 아이들로 꽉차있다. 학교가 바로 코앞인데도 아빠와 같이 등교하니 작은 딸의 기분은 최고이다. 큰놈은 이제 나와 같이 가기 싫은지 멀찍이 떨어져서 걸어오고 있다.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겠지 하며 아득히 먼 초등학교 등굣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때는 부모들이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설령 데려다 준다고 해도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등교하면서 보니 데려다 주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아빠들도 많이 보인다. 그것을 보며 좋은 아빠들도 많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이 거의 일년에 한번 정도 있는 연례행사인데, 다른 사람들은 차로 데려다 준다. 학교 정문 앞은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자가용이 계속해서 정차를 한다.  


 아이들이 학교 현관에서 실내화를 갈아 신는다. 작은 아이들이 신발 갈아 신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덩치가 큰 아이들도 얼굴은 아직도 내가 보기에는 아기 같다.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 기준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 40대가 보기에는 30대도 아이 같고, 20대도 귀엽고 어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초등생은 아기같이 보이는 것이다. 60대 어른들이 40대 사람들도 어리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작은 놈을 교실로 들여보내고 집으로 향한다. 조금만 신경 쓰면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는데,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너무 소홀한 것이 아닌가 반성해 본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은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닌데, 우리가 많은 것을 잃어 버리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한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커피 물을 끓이고 있다. 비가 오는 아침이라 커피향이 내 코를 더 지극 한다. 커피를 마시며 오늘은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