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 이야기

아빠의 눈으로 바라본 두 딸들의 하루 일상

행복한 까시 2009. 3. 28. 10:00

 

 # 5시 45분 


 5시 45분. 올해로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우리 큰딸의 기상시간이다. 그 많고 많은 시간 중에 왜 5시 45분인지 모르겠다. 이유를 큰딸에게 물어 보았다.

 “왜 하필이면 5시 45분에 일어나니? 여섯시에 일어나도 되지 않니?”

 “아빠, 5시 45분에 일어나야 이불도 개고 공부 준비를 해야 여섯시부터 공부 할 수 있잖아요.”

 “그래 그렇겠구나!”

 

 나름대로 이유가 그럴 듯 하다. 잠시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여섯시에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15분전에 일어나는 치밀함이 있는 것이다. 마냥 어린애로만 생각했는데, 생각하는 것이 제법이다.

새벽에 곤히 자다가 보면 알람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7시 정도에 겨우 일어나서 아침을 먹으려고 나와 보면 큰딸은 벌써 일어나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영어 공부를 마치고 나면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제고사 시험 준비를 한다고 한다. 그 시험 준비를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이란다. 시키지 않아도 공부하는 큰딸이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진단 평가를 위해 그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 간다.


 내가 우리 큰딸의 나이였을 때에는 오로지 노는 것 밖에 몰랐는데, 세상이 아이들을 변하게 만든 것 같다.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공부하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만 하다. 한편으로는 딸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7시에 겨우 일어나서 출근하는 게으른 내 모습을 보며 아빠 자격이 있는지 반성해 본다. 지금도 컴퓨터 옆에 있는 시계를 보니 알람이 5시 45분에 맞춰져 있다. 아마 내일도 또 그 시간에 일어나려나 보다.   



 #전화


 아침마다 전화벨이 울린다. 영어 선생님이 아이들의 영어 테스트하기 위해 걸려오는 전화이다. 전화가 오면 서로 먼저 전화를 받으려고 난리가 난다. 전화를 먼저 받으려고 매일 싸운다. 다투는 모습이 보기 싫어 규칙을 정해주었다. 홀숫날은 큰딸이 받고, 짝숫날은 작은딸이 받도록 규칙을 정해 주었다. 며칠은 잘 지켜졌다. 한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니 그 규칙이 자연스럽게 허물어졌다. 내가 무관심한 사이에 그 규칙이 깨진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큰딸이 전화를 먼저 받으려고, 전화기 옆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분명 큰딸이 전화를 받았는데, 작은 놈도 점화를 받고 계속 먼저 통화를 하겠다고 버티는 것이다. 하는 수 없으니 큰딸이 양보를 해 주었다. 아침에는 선생님도 바쁠 텐데 전화를 가기고 실랑이 하는 딸들을 혼내려고 전화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통화가 끝나고 작은딸을 불러 야단을 쳤다.

 “너 언니가 먼저 받았는데, 먼저 받겠다고 우기면 어떻게 해.”

 “선생님에게 창피하지도 않아? 매일 아침마다 전화 먼저 받겠다고 실랑이를 하면 되겠니?”

 “앞으로는 언니한테 무조건 양보해. 앞으로는 언니가 먼저 받는 거야. 오늘은 그냥 넘어가지만 앞으로 한번만 전화 가지고 싸우면 매 맞을 줄 알아.”


 큰딸이 착하니까 작은 놈이 양보 할 줄을 모른다. 언니한테 대드는 것은 보통이다. 가끔 야단을 맞아도 고쳐지지 않는다. 아침부터 아이들을 야단치고 나니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다. 그래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내 철학이다. 출근하면서 보니 작은딸은 방에서 엉엉 울고 있다. 평소에 믿었던 아빠한테 야단맞으니 더 서러운 모양이다. 이렇게 야단치고, 야단 맞는 것도 모두 행복한 일상의 하루일 뿐이다.  

 

 

 #단소


 큰 딸이 학교에서 단소를 배우고 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에는 단소가 뭔지도 몰랐는데, 요즘은 다양하게 배우는 것 같다. 저녁을 먹고 나서 단소 불기 연습을 한다. 학교에서 단소를 가지고 시험을 본다고 한다. 그런데 단소 부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잘 불어지지 않는다. 큰 딸도 연습은 하였지만, 잘 불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오늘도 열심히 연습했지만 소리를 얻지 못하였다. 아내도 열심히 요령을 가르쳐 주었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다.


 소리가 계속해서 나지 않는다. 결국 큰딸이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아이들은 단소 소리를 잘 내는데, 자신만 소리가 나지 않으니 억울한가 보다. 울고 있는 딸을 향해 한마디 해주었다.

 “야, 이런 것 가지고 울면 세상에 울 일이 천지이다.”

 “자꾸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단다. 오늘은 그만하고, 낼 다시 시도해 봐라.”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온 가족이 옆에서 응원을 해주었지만, 아직도 단소는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옆에서 가족들이 응원하는 것이 더 부담스러운 것 같다. 도와준다고 나선 가족들이 시선이 부담스러워 단소가 소리를 내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책 읽어 주기  


 작은딸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 아빠가 책을 읽어 주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가 항간에 떠돈다. 그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몰라도 아무튼 효과는 있을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로 작은 딸에게 책을 읽어준 것이 언제인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책을 읽어 주라는 아내의 잔소리도 있었고, 아침에 야단친 것을 만회하기 위해 책을 읽어 주기로 하였다.


 작은 딸은 아직 어려서 그런지 혼자 책읽기를 싫어한다. 누가 읽어 주는 것을 좋아한다. 주로 아내가 읽어 준다. 아내가 읽어 주지 않을 때에는 컴퓨터에서 읽어 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아빠가 책을 읽어 준다고 하니 얼굴이 환해진다. 책 세권을 가지고 왔다. 한 권은 나 혼자 다 읽어 주고, 한 권은 나와 작은 딸이 한 페이지씩 교대로 읽었다. 책을 읽어 줄 때에는 혼자 다 읽어 주는 것도 좋지만 한 페이지씩 교대로 읽는 방법도 좋은 것 같다.


 아이들은 무언이든 같이 하는 것을 좋아한다. 무엇이든 같이 하면서 즐거움을 얻는다. 이런 것을 잘 알면서도 귀찮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너무 소홀한 것이 아닌지 반성해 본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