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 이야기

엄마에게 아침밥 빼앗긴 두 딸들

행복한 까시 2009. 4. 25. 11:47

 토요일이다. 밖으로 외출하는 사람이 없으니 여유로운 아침이다. 느지막하게 눈을 떴다.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않으니 마음이 여유로운가 보다. 이불 위에서 인형 놀이를 하고 있다. 아내만이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집안 식구들을 먹여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서운 것이다. 아내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마음은 있는데, 제대로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식탁에 앉았다.


 밥상이 다 차려졌는데도 아이들은 나오지도 않는다. 이것이 앞으로 일어 날 일에 대한 불길한 예감이자 징조였던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한 개그우먼을 흉내 내어 아이들을 식탁으로 불러 모았다.

 “야, 이것들아 밥 먹어라.”

두 번을 부르니 겨우 나와 식탁에 앉는다. 식탁에 앉은 모습을 보니 세수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다시 물어 본다.

 “세수는 했냐?”

 “했어요. 했단 말이에요.”

 내가 보기엔 하지 않은 것 같은데, 했다니까 일단 믿기로 했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으므로 그냥 믿기로 했다. 하루 세수 하지 않는다고 세상이 뒤집어 질 일은 없으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 대신 농담조로 훈계 한마디를 했다. 요즘 유행하는 개그우먼을 흉내 내어 보았다. 아이들에게 내 말이 먹힐지는 미지수 이다.

 “야, 이것들아, 우리 어릴 적에는 세수 안하면 밥상머리에 앉지도 못했어. 알아, 이것들아.”

말을 듣고도 아무 대답이 없다. 역시 잔소리는 귀찮다는 표정이다.


  밥을 먹기 시작한다. 아이들 밥 먹는 속도에 진척이 없다. 아마도 아이들의 입장에서 입맛에 맞는 반찬이 없어서인 것이다. 고기나 햄 같은 반찬만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다른 반찬이 아무리 많아도 아이들 입맛에 맞는 반찬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고 숟가락만 들고 있다. 나와 아내가 밥을 다 먹고 났는데도 아이들 밥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아내가 최후통첩을 한다.

 “앞으로 10분 안에 밥 다 먹어라. 그렇지 않으면 밥을 빼앗아 버리겠다.”

 “밥을 안 먹으면 오늘 간식도 없고, 점심밥도 없다. 알았냐? 엄마는 한다면 한다.”


 10분이 지났다. 아이들의 밥은 조금 줄어들었을 뿐 절반 이상이 남았다. 아내는 아이들에게서 밥을 회수해 갔다. 동시에 경고성 멘트가 날아든다.

 “약속대로 오늘 간식은 없다. 점심밥도 안준다. 너희들이 배고프면 찾아 먹어라.”

 두 딸들은 화가 나기도 하고, 황당해하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와 아내는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비가 와서 그런지 커피가 더욱 맛있다. 토스트한 식빵과 함께 커피를 마셨다. 작은딸이 와서 보더니 식빵을 먹고 싶어 한다. 아침을 먹이지 않고, 나만 빵을 먹으니 안쓰럽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빵을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안쓰러운 것이 부모마음이다. 아이들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는 좀 독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 끼 굶는다고 어떻게 되지는 않는다. 

 

 아내와 내가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작은 딸이 식빵을 들고 달아난다. 아내가 잽싸게 뛰어가서 빼앗아 온다. 아내가 단단히 화가 났나 보다. 하긴 며칠부터 밥을 먹지 않아서 아내를 괴롭혔다고 한다. 조금 후에 또 다시 빵을 가져가기 위해 큰딸이 2차 시도를 한다. 아내의 민첩한 행동에 큰딸도 패하고 말았다.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지만 모르는 척 방관하고 있다. 두 딸들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 서랍속의 사탕이나 초콜릿 등을 꺼내 먹는다.


 한참 다른 일을 하다가 보니 아내가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 준다.

  “당신이 졌네.”

하며 놀리니까 아내는 아니라고 한다. 큰딸이 백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엄마에게 투항을 한 것이다. 앞으로는 밥을 잘 먹겠다고 맹세를 했다고 한다. 큰놈은 식탁에서 밥을 허둥지둥 먹는다.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밥을 먹지 않았으니 배가 고팠을 것이다. 아내도 밥을 빼앗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안쓰러웠을 것이다. 부모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다.


 오늘 전쟁은 무승부이다. 외견상은 아내가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아내도 졌고, 큰딸도 패한 승부가 나지 않는 전쟁이었다. 전쟁에서 누가 이긴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의 관심사는 오르지 아이들이 밥이나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