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고향에서 어린시절 추억 여행을 즐기다.

행복한 까시 2009. 1. 27. 21:32

 이번 설은 여유로웠다. 집안에 결혼하는 조카가 있어 차례를 지내지 못했다.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온 집안 식구들도 여유롭게 만든다. 사실 아침부터 차례지내고, 성묘를 다녀오면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몸도 바쁘지만 마음의 여유도 없고,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덕분에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이 머릿속에 하나둘씩 떠오른다. 그동안 추억을 너무 잊고 살았다. 몸과 마음이 지쳐서 그런 것을 찾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눈이 많이 내렸다. 고향 가는데 고생은 하였지만, 눈은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 시골 경치가 아름다웠다. 눈을 보니 겨울 냄새가 난다. 눈이 많이 왔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더 생각났는지도 모른다. 아이들도 눈 쌓인 벌판을 좋아한다. 밖에 나가서 들어올 줄을 모른다. 순백색으로 덮여진 들판을 뛰어다니며 즐거워한다.


 눈썰매를 만들었다. 비료 포대에 스티로폼을 넣고 밧줄을 달았다. 급조해서 만든 눈썰매지만 눈에서 타 보니 제격이었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른다. 즐거운 마음에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아이들의 환호성과 웃음소리가 동네 구석구석에 울려 퍼진다. 적막했던 시골 마을이 아이들의 소리로 떠들썩하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시끄럽게 놀면 동네 어른들이 싫어하였는데, 요즘은 아이들 소리가 반갑다고 한다. 아이들의 눈썰매 타는 모습을 바라보니 나도 어느새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눈썰매를 아이들은 좋아한다. 스릴을 즐기는 것이다. 어린 조카들과 딸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썰매를 타고 있다. 해가 넘어갈 때 까지도 썰매를 타고 있다. 도무지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저녁을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마지못해 집으로 들어갔다.


 고구마를 구웠다. 군고구마를 불에 구워 먹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불을 파고 고구마를 묻었다. 불을 뒤적거리니 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겨울에는 늘 고구마와 함께 했다. 화롯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는 것이 겨울의 별미였던 것이다. 이번 설에는 군고구마를 재현했다. 화롯불을 만들어 고구마를 구운 것이다. 고구마를 불에 묻어 놓고 한참을 지나니, 군고구마 냄새가 사방에 흩어진다. 이쯤 되면 고구마가 거의 다 구워진 것이다. 꺼내보니 다 익었다. 겉은 약한 갈색으로 알맞게 구워졌고, 속은 노란색으로 익었다. 한 입 베어 물으니 밤맛이 난다. 아이들과 군고구마를 먹었다. 먹다가 보니 입 주위가 시커멓게 변했다. 서로 입이 시커멓다고 놀리면서도 즐겁게 웃는다.


 시골밥상을 먹었다. 제사 음식이 빠지니, 밥상은 시골밥상이다. 어린시절 먹던 반찬이 그대로 차려져 나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반찬이 동치미다. 동치미를 한입 떠 넣으니 옛날 먹던 그 맛이다. 어린시절 동치미는 만병통치약이다. 감기에 걸려 머리가 아플 때에도 동치미를 먹었다. 동치미를 먹으면 병이 다 나을 것만 같았다. 시원한 국물과 무우 맛이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동치미에 들어있는 파와 풋고추의 맛도 잊을 수가 없다.


 깻잎 장아찌도 먹었다. 가을에 노랗게 물든 깻잎을 따서 만든 반찬이다. 깻잎 향과 양념이 예전 맛 그대로이다. 짭짤하면서도 단맛이 약간 들어 있는 그 맛이다. 깻잎 장아찌도 밥도둑이다. 깻잎 몇 개만 있으면 밥 한 사발 금방 비운다. 갓 지어낸 하얀 쌀밥과 깻잎은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다.


 이번 설은 행복했다. 추억을 찾아서 행복했다. 추운 겨울 날씨가 있어 행복했고, 눈이 많이 와서 행복했다. 눈썰매가 있어 아이들이 즐겁게 놀았고, 어린 시절 먹던 군고구마, 동치미, 깻잎, 항아리에서 꺼낸 김치가 있어 행복했다. 소박한 밥상이지만 나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밥상이었다. 평상시에는 먹어보기 힘든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넉넉한 시간이 이런 추억들을 맘껏 즐기게 해주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그 시절에 먹던 먹을 것과 놀이가 아이들과 나에세 즐거움을 준 것이다. 아이들도 이번 설은 즐거웠다고 지금도 이야기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