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집중력이 강했다. 좋게 말해서 집중력이지, 나쁘게 말하면 한번에 한 가지일 밖에 못한다는 얘기다. 어떤 한 가지에 몰입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 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런 성향이 강하다고들 하는데, 내 경우는 좀 유별나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거나, 책을 읽고 있을 때, 컴퓨터에 몰입하고 있을 때, 지금처럼 글을 쓰고 있을 때 옆에서 불러도 모른다. 몇 번 불러야 겨우 알아듣는다. 그러나 옆에서 부르는 것을 겨우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타이밍이 늦었다.
상대방은 이미 불같이 화가 나 있는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못들은 것을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곤 한다. 하지만 상대방은 내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본인이 그런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몰입해도 남이 이야기하는 것이 들리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어린시절 누나에게 야단을 많이 맞았다. 책을 읽고 있으면 누나가 부른다.
“상철아, 밥 먹자.”
“........................”
“상철아, 밥 먹자.”
“.............. ..........”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큰 소리로 부른다.
“야, 밥 먹으라고, 내말 안 들려.”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
“야, 몇 번 불러야 대답하니? 사람이 불러도 대답 안하면 얼마나 기분 나쁜 줄 아니? 네가 하도 대답을 안 하니까 큰 소리 치는 것이지.”
이런 식으로 나의 집중력이 누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그 대가로 늘 누나에게 야단을 맞았다. 나의 집중력 때문에 누나와 나는 항상 서로 피해자라고 다투며 지내 왔다. 누나가 시집을 가고 나서야 그 지루한 다툼은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 문제가 생겼다. 아내가 누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내 성격을 잘 모르는 아내는 신혼 초에 이 문제 때문에 화를 많이 내었다. 남자의 성향이나 나의 성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아내는 불러도 대답 없는 나를 보며 자주 화를 내곤 했다. 텔레비전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아내가 나에게 뭐라고 한다.
“..........................”
“..........................”
알아듣지 못했으니 도통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사태를 수습해 보려고 말을 걸어 보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간 버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뭐라고 했는데 다시 말해봐.”
“필요 없어, 내말 하나도 중요하게 생각지도 않는데, 무슨 말을 해”
“도대체 내가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이긴 한 거야?”
잔뜩 화난 목소리가 날아온다. 결국 아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내지 못한다. 아내의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내의 화가 풀려야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수수께끼처럼 풀린다.
요즘은 딸들에게도 야단을 맞고 있다. 컴퓨터에 글을 쓰고 있으면 가끔 큰 딸도 나에게 뭐라고 말한다.
“...........................”
정신을 차리고, 딸에게 물어 본다.
“야, 방금 뭐라고 했냐?”
“아이 참 아빠. 도대체 내말을 어떻게 듣는 거야. 아빠는 딸이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가봐. 난 아빠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가 안가. 못들은 척 하는 거지.”
하며 따진다. 그래도 큰 딸은 아내와는 다르게 다시 말해 준다.
“ 아까, 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별이 무엇이냐고 물어 봤어.”
“ 응 그건 알 수가 없단다. 이 세상에는 태양보다 밝은 별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단다.”
하며 이야기를 풀어 간다.
아내와 10년 이상을 같이 살았어도 아직도 아내는 나의 집중력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고 있다. 다만 신혼 초보다는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는 했다. 나에 대해서 적응을 한 것인지 아니면 실랑이 하는 것이 귀찮아서 그런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실랑이 하는 것이 귀찮아서 그냥 넘어가는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래도 요즘은 아내도 두 딸들을 아군으로 앞세워서 나에게 가끔 협공을 해 온다. 그러면 적의 공세에 밀려 여지없이 패하고 왕따 분위기로 전환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변명하고 싶은 말이 있다. 못들은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안 들려서 못 알아듣는 것이라고 답답한 마음을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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