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아들도 다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행복한 까시 2009. 8. 7. 10:41

 휴가 기간에 고향에 다녀왔다. 여름철의 농촌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일 좀 거들어 주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버린다. 며칠 고향에서 묵는 동안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태어나서부터 시골에서 계속 사셨어도 그리 보수적인 분은 아니다. 다른 동네 아주머니들에 비해 도시 물정도 잘 파악하신다. 그런데 유독 보수적인 부분이 있었다. 바로 아들에 대한 문제였다.

 

 그 시대의 보통 어머니들처럼 아들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특히 외가에 아들이 없어 대가 끊겼기 때문에 아들에 집착이 강하셨다. 외할아버지가 아들을 소원하다가 돌아가셨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 나도 남동생을 몇 명 보았단다. 그런데 낳으면 잃고, 낳으면 잃고 그랬단다. 돌도 지나지 못하고 잃었단다.”

 “ 너희 외할아버지는 아들을 무척 갖고 싶어 하셨단다. 도둑질해서 갖고 올 수 있는 것이라면 훔쳐오겠다고 말씀하셨어.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아들도 너희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영영 갖기 못하셨어.”

 

 그리고 어머니가 아들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할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할머니는 아들이 없어 아버지를 양자로 입양하셨다. 아들을 얻지 못한 할머니가 손자를 셋이나 보았으니 할머니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시집살이가 심하던 그 시대에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을 보니 어머니는 당연히 아들 선호 사상을 전수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형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으니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기대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 것이었다.

 

 내가 결혼을 해서 딸만 둘을 낳으니 어머니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집안이 넉넉했더라면 더 낳으라고 하셨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 키우는데 돈이 워낙 많이 들어가는 것을 잘 알기에 더 낳으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대신 내가 고향집에 가면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 난 네가 안됐다. 네가 아들이 없어 안쓰럽구나.”

 “ 아녀 딸도 괜찮다. 똑똑하게 잘 키우면 아들 보다 낫지.”

하시며 걱정을 하시다가 나를 위로하곤 하셨다.

 

 그러면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 어머니 아들이나 딸이나 다 똑같아요. 어차피 장가 보내고 나면 딸이나 다를 것이 없어요. 머지않아 제사도 못 지낼지도 몰라요. 그러니 너무 아들, 아들 하지 마세요. 전 괜찮으니까요.”

 

 그러던 어머니가 요즘 변하셨다. 형과 함께 사는 것이 힘드신 모양이다. 사실 아들과 함께 사는 것이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며느리 눈치도 보아야 하고, 어머니 마음대로 못 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최근 들어 형과 형수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신 것 같다. 우리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것 같았다. 아들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던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그 스트레스가 짐작이 간다.

 

 “아들도 다 필요가 없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왜 젊은 시절 아들 낳았다고 그리 좋아 했는지 후회가 된다. 정말 아들도 다 필요 없는 것 같다.”

 “ 옆집 할머니도 봐라. 막내아들이 모시고 사는데, 얼마 전에 할머니를 나가라고 했다는 구나. 형네 집으로 가라고 했다는 구나. 그 할머니도 아들을 여섯이나 낳았는데, 무슨 소용이 있니? 늙어서 자기 몸 하나 건사할 곳도 없는데. 그러니 아들이 무슨 소용이 있니? 차라리 딸이 더 나은 것 같다. 딸은 아예 아무런 기대도 안하니 상처는 덜 받기나 하지.”

 

 “ 거 봐요 어머니, 제가 딸이나 아들이나 다 같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리고 아들하고 사시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도 않아요. 다른 아들하고 살아도 트러블은 있을 거에요. 가족들이 같이 산다는 것은 서로 고통을 감내하고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

 

 이렇게 말씀드리면서도 마음은 아팠다. 내 삶을 지탱한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소홀한 것이 사실이다. 마음은 잘해드리고 싶은데 현실이 따라주지 못한다. 강 건너 불 구경하듯이 바라보고만 있다. 이런 어머니의 심정을 그동안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더 컸다.

 

 이제야 어머니가 아들과 딸이 똑같다는 것을 깨달으신 것 같다. 요즘은 그렇다. 아들이나 딸이나 똑 같이 느껴진다. 아니 딸들이 오히려 부모님에게 더 잘하는 것 같이 보여진다. 나도 아들이지만, 부모님께 잘하지 못한다. 어머니 말씀대로 아들이나 딸이나 똑같은 것이다.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 좋은 것이다. 아들 딸을 구별하기 보다는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는 것이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