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촌놈으로 돌아가고 싶다.

행복한 까시 2009. 9. 4. 13:02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나는 촌놈 콤플렉스가 있을 만큼 촌놈이란 소리를 싫어했다. 촌놈이란 소리는 곧 못난 놈이란 등식이 성립되어 있었다. 도회지에 나와서도 촌놈이란 소리를 들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싸움하고 싶어 몸살이라도 나는 싸움닭처럼 달려들어 촌놈이라고 말한 사람을 제압시켜야 속이 후련했었다.

 

  시골에 산다고 다 촌놈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것은 어느 정도 성장 한 후였다. 이제는 그런 것도 다 초월해 버릴 만큼 성숙한 나이가 되어 버렸다. 요즘은 촌놈이란 소리를 들으면 시비를 걸고 싸움을 할 수 있는 그런 나이로 돌아가고 싶다. 지금은 오히려 촌놈을 사랑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대화 중에 자신감 있게 내 입에서 촌놈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실 시골에 산다고 해서 무조건 촌놈은 아니다. 촌에도 세상 물정에 밝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촌놈이란 뜻은 세상물정에 어둡고, 순박한 사람이다. 그래서 주위사람들의 생각을 맞추지 못하고 행동하면 촌놈이라고 놀리는 것이다. 시골에서 처음 수도권으로 고등학교를 갔을 때 친구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아 고생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시골과 도시간의 문화차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읍내에서도 먼 시골에서 자랐다. 강원도 두메산골 보다는 덜 하지만 그래도 생활 형편은 순박한 시골이었다. 내 나이 또래에 비해 옛것을 많이 경험하고 살았다. 우선 먹는 것만 보아도 보리밥은 기본이고, 조밥, 감자, 죽 정도가 주식이었고, 집도 초가집에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하게 아궁이에다 불 때고 도배지도 신문 같은 것을 쓰고, 장판도 없어 돗자리를 깔고 살았던 기억이 난다. 옷은 어떠한가? 우리는 합섬섬유로 된 옷을 입었지만 어른들 특히 우리 할머니는 손수 옷을 지어 입었다. 매번 세탁할 때마다 분해하여 세탁하고, 방망이질, 다림질하여 옷을 지어 입었다. 지금 생각하면 완전히 조선시대이다. 거기다가 모든 생활 물자는 거의 자급자족이었다. 가마니도 손수 만들고, 바구니, 삼태기, 심지어는 바가지까지도 완전히 천연으로 된 웰빙 제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오랜 일인 것 같지만 불과 30~40년 전 이야기다. 오늘날의 화려한 문명과 비교해 보면 꼭 타임머신을 타고 온 느낌이다. 그래서 이 소중한 경험을 지금은 고맙게 생각한다. 어쩌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의 삶에서부터 현재의 삶까지 경험했으니까 말이다. 40년을 조금 넘게 살았지만, 100년을 압축해서 산 것이다.

 

 요즘은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다. 1980년대, 1990년대도 복잡했다고 하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 시기는 단순했던 시기였다. 기업간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유통경쟁도 치열하고, 생산,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열심히 연구해서 신제품을 내 놓으면 그 신제품이 벌써 시장에 나와 있다. 운이 좋아서 타사보다 먼저 신제품을 출시해도 1개월 이내에 타사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다. 정보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하나의 정보가 지구 구석구석까지 전파가 된다. 갈수록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요즈음은 타임머신을 거꾸로 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다시 촌놈으로 회귀하고 싶은 것이다. 이 화려한 문명들이 너무 복잡하고 머리가 아프고, 변화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천천히 변화하면서 순수한 인간미가 있던 옛날의 촌놈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아무리 애원해도 돌아갈 수 없지만 가고 싶다. 이 화려한 문명 속에서 순수한 인간미를 자꾸 잃어간다는 아쉬움이 마음 한 구석을 허전하게 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서 컴퓨터로 글을 쓰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내 자신을 바라본다. 현대 문명 속에 빠진 모습이다. 현대의 문명이 싫다고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문명의 바다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의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하고 되새겨 본다.